일상의 소중함을 잊은 당신에게
To. A에게
안녕.
오늘 아침은 조금 늦게 일어날 예정인가 보다.
내가 보낸 메시지에 유독 답장이 늦어서 잠시동안이지만 걱정 많이 했어.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잠든 네가 혹시나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
밤새 나쁜 꿈을 꾼 건 아닐까.
피곤에 지친 건지 어제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밥도 거르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잠든 네가 걱정됐어.
집에 돌아오면 너에게 해줄 말이 많았는데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해.
이미 눈을 감고 먼저 꿈나라에 가버린 너를 보며 조용히 네 옆에 누워 혼잣말을 해봤어.
너의 오늘 하루는 어땠니.
누군가 너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니.
그렇다면 그 사람은 누굴까.
나에게 그 사람 이름이라도 알려줄 수 있을까.
내가 그 사람을 혼내줄 수는 없겠지만 그 이름을 기억했다가
다음에 네가 먼저 그 사람 말을 꺼낸다면 네 말에 맞장구를 쳐줄게.
오늘 점심은 누구와 뭘 먹었어?
맛있는 거 먹었니? 혹시 너는 좋아하지 않는 음식인데
남들이 먹자고 하니까 따라먹은 건 아니고?
나는 네가 사주는 음식은 뭐든 맛있게 잘 먹잖아.
그런데 너의 또 다른 친구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문득 궁금해지네.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있을 때 너는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들을 할까.
나한테 웃어주는 것보다 그 사람들에게 더 많이 웃어줄까.
아니면 나랑 보내는 시간보다 혹시 그 사람들이랑 있는 게 더 즐겁고 행복하지는 않을까.
오해하지는 말아줘.
혹시 그럴까 봐 미리부터 걱정하는 건 아니야.
그리고 그 사람들이 부럽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야.
네가 날 많이 예뻐해 주고 사랑해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나는 언제나 네가 1순위야.
너의 커리어와 너의 인간관계를 존중해, 단지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아! 그러고 보니 우리가 벌써 만난 지 몇 년이나 됐지? 10년 정도 된 것 같네.
아, 넘었다고? 미안 미안.
내가 숫자에 조금 약하잖아. 뭐 1년이나 2년이나 그게 그거 아닐까?
아니라고? 그럼 그런 걸로 하자. 네 말이 다 맞아.
아무튼! 우리 처음 만났던 그때말이야, 우리 둘 다 지금보다 참 어렸었는데.
지금보다 우리 둘 다 앳된 모습으로 만났는데 지금은... 조금 그렇지?
세월이 참 야속하다 야속해.
시간 참 빨라. 사람들이 왜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간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아.
나는 요즘 들어 더 자주 그런 생각을 해.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게 간다고 말이야.
붙잡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고,
너와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데... 괜히 지금부터 미리 아쉽고 그래.
이런 내 마음이 나만의 욕심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너는 어때?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해할게.
내가 더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다 이해할 수 있어!
원래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래.
그런 말은 어떻게 아냐고?
음...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어디선가 들어봤어.
어때? 나 기억력 진짜 좋지?
가만히 누워서 잠을 자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잠이 잘 안 온다.
계속 혼자 떠들어서 그런가? 이제는 잠이 깨버린 것 같아.
다 네 탓이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네가 먼저 잠들어버렸잖아.
하루종일 기다렸는데.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아니야, 방금 한 말은 취소할게. 네 탓 아니야.
사실은 나 많이는 아니고 아주 조금! 약간 서운한 마음도 있기는 한데... 뭐 그래도 다 이해해.
네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건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알아.
나 아니면 누가 또 널 이해하겠어. 그렇지?
직장 생활이 원래 다 그렇다고, 많이 힘들다고 들었어.
그래도 내 앞에서 티 내지 않으려고 말을 아끼는 너를 보면서 어른은 이런 거구나를 느껴.
나는 지친 얼굴의 너에게 웃어주는 것밖엔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그래서 미안.
내가 너의 힘든 일을 대신해줄 수만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바깥일도 집안일도 전부 도맡아 하는 너에게는 언제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이야.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면서 피곤함이 늘어가고,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예전처럼 너와 내 체력이 20대 청춘처럼 팔팔한 것도 아니라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핫플이니 맛집이니 먼 거리에서 데이트는 이제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너랑 손잡고 공원을 산책하면서
얼굴을 마주 보고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데이트 중의 최고의 데이트는 원래 홈데이트라잖아.
맞지? 이것도 어떻게 들었냐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가 기억해 뒀지. 이럴 때 써먹으려고.
내가 말했잖아. 나 기억력 정말 좋지?
그래서 네가 나 좋아했었잖아.
기억력도 좋고 똑똑하다고. 그런 내 모습에 반했다고.
물론 처음에는 내 예쁘고 멋진 얼굴과 몸매에 먼저 반했겠지만 알고 보니 내 말 맞지?
성격은 더 좋고 엄청나게 매력적이지?
거기에 너밖에 모르는 일편단심 사랑꾼이잖아.
이런 나를 놓치지 않은 건 너의 행운이야! 명심하라고!
장난이야, 장난.
피곤할 텐데 매일 바쁜 와중에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물어봐주고,
매일매일 맛있는 밥이랑 디저트도 사주고,
내 주머니 사정을 뻔히 아는 네가, 바깥에서 우리가 데이트를 할 때면
나 민망하지 않도록 먼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서 계산도 척척 해주고,
비탈길에 내가 넘어지지는 않을까 느린 내 걸음에 맞춰 천천히 같이 걸어주고,
찬 바람이 부는 계절이 오기 전에,
올 가을에도 어김없이 옷장에 따뜻한 겨울 옷을 미리부터 준비해 줘서 정말 고마워.
나 앞으로도 정말 너에게 잘할게.
네 말도 잘 들어주고, 사랑한다는 표현도 더 많이 자주 해줄게.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도 오래오래 함께하자.
알겠지?
내가 너한테 부족한 게 많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때로는 나 때문에 네가 속상하고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나에게 꼭 말해줘.
내가 고치고 또 더 너한테 잘하려고 노력할게.
내 소원은 단지 그것뿐이야.
우리가 오래오래 지금처럼, 함께 지나왔던 10년이라는 시간처럼
늘 변하지 않고 언제나 여기에서 지금처럼 함께하는 것. 그게 다야.
맛집 안 가도 되고 핫플도 안 가도 돼.
나는 정말 너만 있으면 돼.
집밥도 하나도 안 질리고 매일 가는 공원 산책도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너랑 함께 있는 시간이, 너랑 함께하는 공간 모두가 나에겐 지상 최대의 놀이공원이고 천국이거든.
그러니까 잊지 마.
너는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야.
진짜 진짜 고마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
아... 이제 슬슬 졸리다.
너무 늦게까지 눈을 뜨고 있었던 것 같아.
나도 이만 자야겠다.
우리 내일 또 보자 알겠지?
좋은 꿈 꿔.
“... 아”
“...탄아”
어... 뭐지?
분명 너는 자고 있었는데.
”탄이, 누나랑 산책 갈까? “
아... 새로운 아침이 왔나봐!
날이 또 밝았나 봐.
오늘도 너랑 함께할 수 있나 봐.
“탄아, 우리 탄이. 바깥 공원에 산책 갈까? 아이구 벌써 신나?”
그런가 봐. 나도 모르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나 봐.
오늘도 너와 함께 데이트할 수 있다니!
이 세상은 정말 멋지고 오늘도 역시 기분 좋은 하루야.
있잖아, 우리 오늘 하루도 풀냄새 잔뜩 맡고, 상쾌한 바람도 쐬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자!
알겠지?
주인, 나랑 만나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탄아, 목줄 챙겨야 돼. 잠시만! 이거하고 나가자! 잠깐만!!! “
응!!! 나도 이제 준비 다 했어.
마저 못 쓴 편지는 이따가 다시 밤에 써야지.
성질은 좀 급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 주인이랑 산책 가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2024.09.29. 18:04
미처 못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써서 주인 보여줄게.
그때까지 기다려주기, 약속!
왜냐하면 나 지금 행복한 꿈을 꾸고 있거든.
주인이랑 바스락거리는 낙엽들을 밟으면서 공원 데이트하던 꿈인데...
매일 똑같은 길을 걷지만 매일의 풍경은 다 다르거든.
주인, 오늘은 내가 먼저 자고 일어날게.
우리 이따가 그리고 내일 또 만나. 알겠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