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사원과 길바닥을 청소하며 내다버린 슬픔과 번뇌
개인적으로 종교는 없지만 운명이라던지 업(카르마)이라던지 이 세상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기운이나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같은 존재(때로는 나의 조상님)는 있다고는 믿는 사람으로 그 옛날 사람들도 각자가 바라는 걸 기도하며 어떤 마음으로 신을 찾고 이러한 건축물을 지었을까, 그 때는 본인들의 삶이 힘들 때 누구에게 조언을 구했으며 또한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어떠한 지혜를 추구했을까, 그들은 어떤 가치와 삶을 추구하며 살아갔을까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원 내부를 둘러보는동안 화려함과 웅장함에 눈을 떼지 못했는데 누구말대로 흙빛으로 보이는 카이로 시내 바깥의 카이로성채와 다르게 내부는 또 굉장히 색채가 다양해서 눈길이 갔던 것도 있다. 이스탄불의 사원을 모방해 만들었다고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른 기존 이집트의 사원과는 양식이 매우 달랐다.
아스완 지역에서는 아부심벨신전을 관광했던게 아무래도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데 여행을 오기 전에 티비에서도 각종 책에서도 많이 봤고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도 미리 공부하고 갔지만 실제로보니 그 압도적인 크기와 웅장함에 할 말을 잠시 잃어버렸다. 표현력의 한계로 ’와 진짜 미쳤다. 멋있다.‘의 말만 되풀이하며 사진을 몇백장을 찍었는지 모른다. 너무 떨려서 그랬는지 실존하는 아부심벨 신전 앞에서 기가 눌렸는지는 몰라도 엄청 많이 찍었던 사진의 절반 가량은 나중에 확인해보니 흔들렸거나 초점이 나간 상태도 많았는데 그럼에도 건져낸 아부심벨 신전은 오랜 세월을 이겨내고도 여전히 고고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집트의 아부심벨 신전(Abu Simbel)은 아스완 버스 투어를 통해서도 관람이 가능하다. 나일강 서쪽 누비아 지역에 위치해 있고 이 신전은 고대 이집트 제 19왕조의 파라오 람세스 2세(Ramses II)에 의해 기원전 13세기경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아부심벨은 두 개의 주요 신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람세스 2세 본인을 기리기 위한 대신전이며 다른 하나는 그의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한 소신전이다.
대신전은 네 개의 거대한 람세스 2세 석상이 입구에 서 있는데 각각 높이가 약 20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실제로 보면 미쳤다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 이 곳은 그 당시 파라오의 권위와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대신전 내부에는 신왕 라와 아문, 람세스 2세 본인을 숭배하는 신성한 공간이 있다.
소신전은 네페르타리 여왕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으며, 입구에도 네페르타리와 람세스 2세의 석상이 세워져 있는데 소신전은 이집트 신화에서 나오는 하토르 여신을 숭배하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또한 아부심벨 신전은 원래 현재의 위치보다 낮은 곳에 있었는데 아스완 하이댐 건설로 인해 수몰 위기에 처하게 되자 유네스코의 지원 아래 대대적인 이전 작업이 이루어져 기존 위치에서 약 60미터 높이로 옮겨졌고, 이 과정에서 신전의 구조를 보존하기 위한 정밀한 해체 및 재조립 작업이 진행된 결과가 지금의 아부심벨 신전이라고 한다. 문화재와 유적을 지키기 위한 세계각국의 관심과 보호가 참 중요한 것 같다. 가끔보면 여행지에 가서 낙서를 한다거나 쓰레기를 무단투기하는 기사를 접하기도 하는데 그런 뉴스들을 볼때면 마음이 참 무겁다. 관광객들도 국내든 해외든 여행지에서 가는 곳곳마다 소중한 것을 여기는 마음으로, 신성한 태도로 유적지에 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관람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여행의 반은 먹는 즐거움이라고 했던가.
누가 이집트에 가면 먹을 게 없다고 했는지... 실제로 나는 이집트 여행와서 살이 많이 쪘다. 누구를 탓하거나 나라를 탓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내가 이집트 여행에서 살이 쪄 돌아갈줄은 상상도 못했다. 생각보다 음식들이 괜찮았고, 입맛에 맞는 것도 많았다. 에이쉬빵은 끼니때마다 나와도 질리지 않았고(찍어먹는 소스가 다양해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타진? 따진? 외국어 발음이라 뭐가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타진도 맛있게 먹었다.
나는 요리사도 아니고 여행 전문 블로거나 크리에이터도 아니라서 어떻게 글을 써야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나는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보기 위해 원래부터 와보고 싶었던 이집트에 왔을 뿐이고 이 곳에서 새로운 음식에도 도전하는 중이었다. 편식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이 있을 거라고 크게 기대하고 떠났던 여행은 아니었는데 이게 웬 럭키비키한 상황인지는 몰라도 타진 저 음식이 굉장히 맛있었다. 실제로 다른 식당에서도 몇 번 먹어봤는데 가게마다 맛은 조금씩 달랐어도 전반적인 식감과 향, 맛은 훌륭했다.
찾아보니 우리나라 육개장 비슷한 느낌이라고 정보를 듣고 갔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육개장보다는 토마토 파스타 소스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그런 비슷한 느낌인데 죽도 아니고 국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리조또도 아닌 것이... 그 애매한 경계에 있는 음식같았다. 밥에 비벼먹어도 맛있고 빵에 찍어 먹어도, 단품으로 먹어도 괜찮았다. 호박과 토마토 당근 가지 등등 야채 채소가 한데 어울려 양념된 음식이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식당 안에 사람들도 전부 잘 드시는 것 같았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말로 폼 미쳤다는게 아닐까?
이것도 유행이 지났으려나. 모르겠다. 나는 그런 신조어와 밈인지 뭔지에 취약한 사람이다. 아무튼 그런 말을 빌려 표현해보자면 여기 이집트 식당 폼 미쳤다.
오션뷰니 리버뷰니 좋은 뷰를 가진 카페와 맛집들을 줄서서 기다리며 사진 찍어 올리는게 SNS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트렌드라고 하던데 이집트에서 내가 그런 사진을 찍게 될 줄은 몰랐다. 너무 예뻐서 안 찍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식당 옆으로 같은 분이 운영하시는건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숙박이 가능한 호텔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서 이런 멋진 뷰를 가진 식당으로 자리잡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어슬렁어슬렁 혼자 배회하듯이 카메라로 풍경 사진만 잔뜩 찍고 있으니 주위에 계시던 관광객 중 한 분이 사진 찍어줄까요 물어보셔서 냉큼 감사하다고 하며 한 컷 부탁드렸다. 정말 친절하신분이셨다. 물론 나도 그분의 사진을 열심히 열댓장은 찍어드렸다. 어느 하나는 건지지 않으셨을까 싶다. 원래 백 번 찍어서 한 두컷의 사진만 건져도 성공이라고 했다. 남는 건 사진이라고 혼자 여행하면서 조금 아쉬웠던 점은 딱 하나. 혼자서 내 사진을 남기는 데에 제한이 있다는 거였는데 그마저도 친절한 관광객들과 현지인들 덕분에 나름대로 추억할만한 사진들을 왕창 남겨올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다. 앞으로도 착하게 살게요!
날이 금방 어두워졌다. 사막이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이집트는 오후 네다섯시만 되도 금방 주위가 캄캄해진다. 그리고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져 쌀쌀해진다. 워낙 더운 날씨의 기후 탓에 이집트는 자체적으로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추위를 많이 타시는분들은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옷을 준비하시거나 여행 시기를 조절하시면 좋을 것 같다. 나는 한국 기준으로 1월에 여행을 했는데 이집트는 11월부터 2월 정도까지를 제일 여행하기 좋은 시기로 본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평소 추위를 잘 타는 사람이라서 낮에는 괜찮았는데 밤에는 호텔이나 크루즈에서 잘 때 조금 쌀쌀하다고 느꼈다. 2인실 객실을 홀로 써서 이불 두 장을 뒤집어 썼고 다행스럽게도 한국에서 열댓개 챙겨온 핫팩을 등과 목에 깔고 잤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집트에서 3박은 크루즈 여행을 했는데 일단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너무너무 좋았다. 살면서 크루즈는 처음 타보기도 했고 일단 나는 크루즈고 나룻배고 설령 그것이 오리배였어도 그 뭐가 되었든간에 만족스러웠을테다.(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오리배는 좀... 무서울 것 같다)
유럽여행을 해보신 분들, 크루즈 호화 여행? 잘 모른다. 안 해봐서. 아무튼 그분들 중 누군가는 이게 무슨 크루즈야 하실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실제로도 이집트 여행에서의 크루즈도 여러 등급이 있다고 하는데 이 소네스타 문 갓디스 크루즈 역시 5성급 그 이상 크루즈라고 했다. 누가 정한 등급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나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이미 다녀왔기도했고 굉장히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한 몸 뉘일 수 있고 따뜻한 물 나오는 곳이면 된다. 벌레 없고!
떨리는 마음으로 출렁다리를 지나 크루즈 안으로 입성했다. 크루즈가 정박해있을 때도 있고 저속으로 운행되며 관광지를 돌기 때문에 3박을 크루즈에서 머물렀지만 그렇다고 해서 3일 내내 같은 장소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잠을 자는 동안 크루즈가 이동하기도 했고 낮에 관광지에 내려서 한 두시간 유적지 관광을 끝내면 또 다른 위치에 정박해있는 크루즈를 타기 위해 이동하는 식으로 그렇게 3일의 일정이 흘렀다. 다시 한번 이집트를 가게 된다고 하면 크루즈 여행은 꼭 포함할테다. 부모님 모시고 가면 참 좋을 것 같다. 신혼여행으로도 괜찮을 것 같은데, 다만 신혼여행지로는 나중에 쓸 이집트 후르가다편을 추천한다. 실제로 유럽의 많은 신혼부부들이 후르가다로 여행을 많이 온다고 한다. 아무튼!
누가 이집트 먹을 게 없다고 했나요?
이러니 살이 찌지. 살이 쪘다. 그것도 2킬로그램이나 이미 쪘다. 이름이 생소한 음식도 많았고 직원분께서 뭐라고 설명해주시긴 하는데 아랍어는 뭐 알아들을 방법이 없었고 그 중 영어 발음이 알아듣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나 역시도 영어가 유창한 편은 아니어서 못알아 듣는 말도 많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완벽했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의미만 통하면 되는 거 아닐까? 어쨌든 땡큐를 외치며 감사히 음식을 담고 또 맛있게 먹었다. 설령 그 중 몇몇은 내 입맛에 맞지는 않았어도 그저 모든 것을 감사히 먹었다. 어디선가는 굶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편식이나 반찬 투정을 해서는 안된다. 입으로 들어가면 어차피 다 똑같다. 생선가스 비슷한 음식과 볶음밥도 맛있었다. 다만 디저트류는 정말 달아서 평소에 단 걸 꽤 먹는 나조차도 한 두개 이상은 더 먹고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전반적인 음식 자체가 퀄리티도 좋았고 무엇보다 그 때의 여행에서 나는 뭘 먹든간에 행복했을 테다.
이미 접시에 떠왔기 때문에 우걱우걱 너무 달아도 애써 무시하며 끝까지 먹었다. 남기면 안 된다. 절대로! 그리고 대체적으로 맛있었다. 다만 내 입에 너무 달았을뿐이고 먹다보니 배는 불렀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다 먹었다. 사실 여행을 오기 전에 나는 이집트에 가면 매일 빵부스러기나 먹고 견과류 비슷한 음식이나 나물같은 야채 채소만 먹고 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음식이 너무 잘 나오고 다양해서 놀랐다. 물론 가격대가 있는 식당을 찾은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여행하면서, 이집트 식당을 다녀보며 느낀 점은 나 역시도 이집트라는 나라에 대해 어떠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싶어 지난 날을 반성했다는 점이다. 크루즈에서의 식사는 내가 이집트에 와있는 건지 서울의 유명 호텔 뷔페에 와있는건지 착각할 정도였다.(물론 개인적으로 서울 호텔 식당에 가본 적 없어 잘 모른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혼자서도 잘 다니지만, 그리고 혼자 있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지만 쌀쌀한 밤이 되고 야경 불빛이 수놓은 멋진 나일강과 도시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집에 계신 부모님 생각도 나고, 소중한 친구들 얼굴도 떠오르고, 우리집 강아지도 떠오르는 밤이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탁 트인 루프탑에서 칵테일 한 잔 마시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고.
그리고 미리보기로, 다음날 밤에 그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이튿날 저녁, 크루즈에서 칵테일 파티가 있었다. 밤 8시였나 7시였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비슷한 시간대였다. 크루즈 안에서 각종 행사도 했는데 난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하지는 않았었고 등 마사지를 한 번 받은 걸 제외하면 혼자 칵테일을 마셔보겠다고 이곳을 방문한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내향인으로서 혼자 여행부터 심지어 칵테일 파티? 쉽지 않았다.
아... 내가 과연 이 곳에 참여할 수 있을까.
말도 잘 안통하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여기 가서 괜히 쭈뼛거리다가 망신 당하는 건 아닐까. 혹시라도 누가 말이라도 걸면 어떡하지? 별별 생각을 다했는데 이 먼 곳 땅까지 와서 저녁 식사 후 자유시간마저 크루즈 방 안에서 혼자 말도 못알아듣는 아랍방송 티비프로그램을 보다 잠들기는 싫었다. 그래, 안 해본걸 해보자. 여기까지 와서 못할게 뭐람. 속으로는 심장이 엄청 발작을 하며 뛰어댔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하며 혼자 당당하게 계단을 올라 꼭대기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내가 혼자인 걸 아는 직원분들이 엄청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긴장이 풀렸다. 알아들은 말은 많지 않았다. 단어로 유추만 했을뿐이다. 프리 드링크? 오우 리얼리? 예쓰, 언빌리버블. 땡큐!
체리인가. 체리같이 생겼는데, 체리 맞겠지. 아무튼 알콜과 논알콜 중에 잠시 고민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여행이라는 건 사람을 대담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원래 나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못 먹는 건 아니다. 대학 다닐때 학생회를 하며 억지로 술을 배웠었다. 그렇다고 잘 마시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을뿐이다.) 이 먼 곳에서 만에하나 내가 술을 마시고 취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면 누군가 나를 제지할 사람도 없을뿐더러 나 역시도 그런 상황은 만들고 싶지도 않고 그런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무서웠기 때문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과 결과에 대해 잠시 머리를 굴려보느라 고민했을뿐이다. 그러나 내 선택의 결과는 알콜이었다. 그것도 빛깔이 예쁜 오렌지 어쩌고 칵테일.
이름은 모른다. 내가 대충 지은 이름이다.
한국에서도 안 하던 짓을, 이집트에와서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글을 쓰면서도 지난 1월의 크루즈 안에서 내 모습이 떠올라 실실 웃음이 난다. 누가보면 또라이처럼 보일 수도 있을테고, 또 어떤 누가 본다면 참 대단하네 싶기도 할테다(여러 의미로 말이다) 혼자 먼 땅에 와서, 혼자 칵테일 잔 들고, 혼자 마시고, 혼자 사진찍고, 혼자 낄낄대고. 그래도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취했다는 핑계 하나로 지금 이 곳에서 내가 하는 이정도의 일탈은 허용될 수 있지 않을까.
옜다, 기분이다.
원래 한 잔만 프리 드링크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혼자 와서 혼자 (불쌍해보일수도) 놀고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직원 분이 괜찮으시면 한 잔 더 마셔도 좋다고 했다. 아마 칵테일이 여유있게 남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나는 두 잔을 마실 수 있었다. 평소 같았다면 술 자체도 먹지 않았겠지만, 지금 이 곳이 한국이었다면 편의점에서 어쩌다 구매한 이슬톡톡이나 한두모금 털어 마시고 씻고 발 뻗고 잠이 들었겠지만 이 곳은 이집트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와보고 싶던 이집트. 술김에 그리고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평소 안 해보던 행동을 해도 괜찮을지 모른다는 이상한 용기가 생긴 여기는 나 홀로 16시간 가량을 한국에서 떠나온 이집트란말이다.
처음 마셨던 칵테일의 취기가 이제야 올라오는 건지 어쩌면 아까부터 취해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두번 째 칵테일은 조금 더 빠르게 취기가 올라왔고 루프탑의 쌀쌀한 바람은 이제 기억에서 사라져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 밤이 되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의 음악, 흥겨운 멜로디. 반짝거리는 크루즈 조명. 신나보이는 직원분들의 얼굴. 그리고 다양한 국적을 가진 관광객 속에서 나는 분명 혼자인데 혼자가 아닌 느낌을 받았다. 평소같았으면 남 눈치를 그렇게 봤을텐데도 나는 누가 보라면 봐라, 볼테면 실컷 봐봐. 내가 지금 어떤지, 내가 지금 얼마나 신나는지! 하며 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나는 분명히 이집트로 여행을 온 이방인이 맞는데 이방인이 아닌 기분이었다.
취중진담이라고 했던가. 그 날 홀로 두 잔의 칵테일을 마시며 한시간 가량을 보내고 객실로 내려와 씻은뒤 침대에 눕자마자 핸드폰을 들었다. 워낙 이집트 지역 안에서도 데이터가 잘 터지지 않는데 크루즈 안에서, 나일강 한복판에서 와이파이라고 잘 터질까. 그럼에도 휴대폰을 켜서 부모님과 친구에게 평소 못하던 말을 메시지로 남겨놓았다. 끝끝내 사랑한다는 말까지는 못했어도 그래도 맘 속에 늘 간직하고 있던 말 하나는 남겨뒀다.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빨리 보자고.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된 본격 나일 크루즈 투어.
새벽4시부터 시작된 관광 일정은 아침형 인간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매우 피곤하고 끔찍한 힘든 수행의 시간일지 몰라도 수년간의 3교대와 나이트킵 근무 등으로 단련되어 시간 개념을 망각한 나같은 사람에게는 ‘오히려좋아’의 시작이었다.
새벽 4시부터 나와서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도 저 멀리 보이는 심상치 않은 인파. 사진에는 잘려있지만 빙 둘러져 보이지 않는 줄이 두배였다. 족히 내 앞으로 300명 가까이는 있어보이던 그곳은 에드푸 신전을 관광하기 위한 관광객들의 웨이팅 줄이었다. 해가 뜨고 나면 본격적으로 인파가 몰리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 입장을 하고 관광을 한 뒤 빠르게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야 놓치지 않고 내가 예약한 크루즈를 제 시간에 타서 이동할 수 있다. (P유형의 사람들은 이러한 타이트한 관광 일정 부분은 한번 고려를 해보시고 크루즈 투어를 예약하셔야 할 것 같다)
두돌이 지난 조카가 있는데 정확한 사이즈를 잘 몰라서 옷을 구매하지 못했다. 그게 내내 아쉬웠다.큰 옷이라도 사올걸 하고 말이다. 언젠가는 입혀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쉬운대로 유아용 머리 장식 밴드와 다른 악세사리와 장난감을 선물했다. 생각보다 이집트 의상과 소품중에 특이하고 예쁜 물건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자수로 만든 제품이 품질이 괜찮았다. 지금도 현지에서 구매한 의상 두 벌은 집에서 잠옷으로도 활용해 입고있다. 그나저나 이 때가 새벽 4시였으니까 가게 사장님은 도대체 몇 시에 매장을 오픈하신걸까... 아침을 넘어선 새벽형 인간이다.
하늘 빛이 정말 예쁘고 영화에서 보던 장면을 실제로 눈에 담을 수 있어 영광이었던 곳이었다. 에드푸 신전. 하늘 빛이 정말 예뻤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데 붉은 빛도 아니고 보랏빛도 아닌 그 경계의 빛깔들과 해가 떠오르면서 색이 가지각색으로 변하던 하늘까지. 그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 키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스몰 사이즈가 없어 미디움 사이즈로 의상을 구매해서 그런 거였을까. 분명 내가 만난 이집트인들은 서양인들처럼 큰 키를 가진 여성분들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옷을 크게 만드신걸까. 편하게 입고다니라고 그러셨던 걸까. 지저분한 흙바닥을 신성한 마음으로 청소하며 다니라는 뜻이 있으셨던 걸까. 170근처의 내 키가 분명 작은 키는 아닐텐데 현지에서 구매해 입은 옷은 내가 최대한 끌어올려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밑단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덕분에 나는 이집트 신전 바닥을 열심히 쓸고 청소하며 걸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빨래를 해도 지워지지 않는 시꺼먼 원피스 밑단도 그저 하나의 추억이라 생각하며 내버려두기는 했지만 세탁소에 가서 길이를 조금 잘라내야할까 싶기도 하다. 내 방 청소를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청소를 해본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열심히도 신전 바닥을 쓸고 닦은 덕분에 복잡하던 내 머릿속의 잡념을 비워내는데 아주 좋은 추억이 되었던 바닥 쓸기.
청소하라.
머리가 복잡할 땐 방 청소든 화장실 청소든 무언가를 청소해라.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리고 책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강조하던 마음공부의 방법, 성공인의 비결 등에 빠지지 않는 청소 이야기에 그때는 이게 뭐 어쩌라는거지 싶었었는데, 머나먼 타국 땅에 가서 내 옷이 시꺼멓게 변할 정도로 신전 바닥과 이집트 길바닥을 쓸고 다니며 깨달았다.
머릿속의 번뇌와 마음의 짐을 내려두는데는 쓸고 닦는게 최고라는 것을 말이다. 바닥을 청소하며, 가장 밑바닥에 지저분한 것들을 내가 입고 있는 옷으로 쓸어내고, 내가 신고 있는 신발로서 흙먼지들을 먹어가며 타인이 걸어갈 길을 깨끗이 만들어놓음으로 나 역시도 누군가가 먼저 닦아놓은 길을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는 거였다고말이다.
옷이 너무 길면 내가 내 발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길바닥 청소도 좋지만 내가 내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남이 나를 잡고있는 것이 아니라 옷이 나를 잡아당기고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내 발이 내 몸을 앞으로 더 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이다.
필레 신전을 투어하기 위해 선착장을 향하는 길에 풍경이 멋져 찍어보았다.
필레 신전 관광을 마친 후에는 다시 크루즈로 이동해서 잠시 자유시간을 가졌다. 오후에 또 다른 신전과 박물관을 관람하려면 밥을 먹고 휴대폰 충전을 해야했다. 사진을 너무 찍어대서 휴대폰은 이미 뜨겁다 못해 계란후라이를 해도 될 정도였다.
캐리어에 구겨질까 부서질까 얼마나 조심스럽게 포장해서 가지고 왔는데, 안타깝게도 이렇게 보면 성공이다 싶었지만 사실 뒤에 웃지 못할 비하인드가 있다. 막대가 부러져서 테이프를 구할 수 없던 나는 대충 내 무릎에 붙이고 있던 대일밴드를 꺼내 급하게 수습에 나섰다. 어떻게 구매한 스틱인데(여전히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그래서 검색조차 할 수 없다. 애초에 어떻게 이걸 사게 됐는지도 의문이다)
심폐소생술에 성공한 스틱을 가지고 셀카를 찍는데 몰입해보았다. 원래 100장 찍어야 한 두장은 건지는 법이랬다. 그렇다고 100장은 아니어도 50장은 족히 찍은 것 같다. 심폐소생한 스틱이 다시 숨을 잃기 전에 빠르게 임무를 완수해야했다. 남는 건 사진이기에. 빠른 응급처치가 필수다.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만끽하며 사진찍고 음악듣고 세상에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깔깔거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다가 크루즈 안에 보석상이라고 해야할까. 카르투시라고 이집트글자로 내 이니셜을 새겨 만든 팔찌나 반지를 기념품으로 많이 해간다기에 크루즈를 떠나기 하루 전 미리 이 곳을 방문했다.
뭐야, 뭐야. 너무 예쁘잖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팔찌랑 반지라서 더 의미있고 마음에 쏙 든다.
절대 잃어버리지말고 소중하게 아끼며 평생 끼고 다닐테다.
이 글을 쓰는 현재도 착용하고 있다.
내 이니셜과 별명을 새겨 팔찌와 반지로 각각 만들었다.
다음 기회에 이집트를 방문하게 되면 내 필명을 또한번 새겨오도록 해야겠다. 그렇게 다짐하며 두번째 이집트를 방문하는 날을 기다려본다.
이게 웬 뜬금없는 이집트 여행 포스팅에 신라면이냐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컵라면이 트라우마로 작용했던 지난날이 있다. 컵라면의 컵 단어만 들어도, 새빨간 컵라면 통만 봐도 눈물이 질질나던 아픈 과거가 있다.
물론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제는 웃으면서 컵라면을 먹고 이렇게 추억이라며 사진까지 찍을 정도로 삶의 한 챕터는 득도했지만 과거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이마저도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겠지만 그땐 그 흘러가는 시간이라는게 없을 줄 알았다. 멈춰있는 건 줄로만 알았다. 나의 버킷리스트 아닌 버킷리스트였던 여행지에서 컵라면 먹기. 그것도 아주 맛있게 먹기 시도 작전이다.
바쁜 나이트 근무 시간에 짬내서 후루룩 라면 밀어넣기. 환자가 벨을 누를까 보호자가 나를 찾지는 않을까 살짝 열린 문 틈 사이로 힐끔힐끔 복도를 쳐다보며 체할듯 먹는 컵라면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아픈 말을 듣고 불어터진 모습으로 눈물젖은 컵라면을 먹던 내가 아니라, 마침내 즐겁게 그리고 맛있게 컵라면을 먹는 내 모습.
그 모습을 남기기 위해, 그 과정을 극복하고 즐기기 위해 나는 내가 꿈꾸던 이집트라는 나라를 여행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쌀 때 이 곳에 가장 슬픈 기억이 남아있는 컵라면을 들고 왔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무엇이든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다. 이집트 여행하면서 먹었던 수많은 음식들도 참 맛있었지만 결국 내가 제일 맛있게 먹었던 건 이집트 여행 중에, 크루즈 안에서 먹었던 컵라면이었다.
이제는 슬픔과 눈물로 얼룩진 기억이 아닌 즐거웠던 추억으로 평생 남을 컵라면말이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지고있어 당황스럽다. 심지어 글은 썼는데 사진을 너무 많이 첨부한 탓인지 업로드 하는동안 날짜도 수요일로 넘어가버렸다.
무엇보다 이걸 쓰게 된 제일 첫번째 이유, 기자 피라미드 언제나올까...
3탄에 계속>>>
+++
혹시라도 과거 컵라면에 얽힌 일화가 궁금하신분이 계시다면 이 글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 첨부합니다.
https://brunch.co.kr/@nemonaemona/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