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 그리고 나의 앤이 하는 말
이런 날,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지 않니?
처음 학교에 가는 길, 앤은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다이애나에게 이렇게 외친다. 앤의 눈가에 스치는 모든 사물 위에는 행복이 방울방울이다. 앤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녀에겐 행복을 ‘그려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백영옥 에세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중에서 p29
이런 날,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지 않니?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두 눈으로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눈에 담고 곧은 두 다리로 땅을 디디고 서 양 팔을 펼쳐 시원한 바람을 껴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한 사람임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정확히 오늘로부터 1년 전, 2023년 11월 9일.
나는 뭘 좋아하는지, 나는 뭘 하고싶은지 찾아보겠다고 난생 처음 여권을 만들고 비행기 타고 홀로 떠났던 미국에서 내가 이렇게 낯선 곳에서도 잘 적응하고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었고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었고 스쳐 지나가는 모든 풍경들에 감동할 수 있는 사람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구체적인 목표까지는 없었어도 멀리 떠나온 이 여행에서 ‘진짜 나’를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1년 전, 낯선 땅 미국에서 홀로 여행하며 보냈던 그 소중한 시간들이 절대 헛되지 않도록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고 또한번 다짐합니다.
그 때는 커피를 주문하며 부탁했던 제 이름을 왜 이렇게 적어줬지? 싶었는데 이 모든 것 역시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놀라워 저 혼자 인연으로 생각해봅니다. 빨강머리 앤은 아니지만 표기상 Ann 앤은 맞으니 그렇게 생각해보렵니다.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고 또 듣고싶었던 말.
넌 아직 늦지 않았어.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늦은 거란 말을 여러 번 썼었다. 하지만 이 책을 쓰며 내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비로소 어린 앤이 내게 들려주고 싶어 했던 가장 희망적인 말 하나를 발견했다.
만약 인생이 딱 한번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면,
당신은 아직 늦지 않았다.
-백영옥 에세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에필로그 중에서
우리들 그 누구도
아무도 늦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