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하라. 꿈꾸라. 발견하라.
제목을 이집트 여행기 그 마지막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5라고 붙여본다. 별 것 아니지만 그 언젠가 다시 이집트에 갈 그 날을 기다리며. 그리고 그런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 믿기에 마지막이라는 말 대신 숫자 5를 붙여본다.
누구든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하나, 바로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이다. 그 자아가 시인인지 미치광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기 운명을 찾은 다음은 평생 그것을 지키며 살아라. 그 외의 다른 길은 모두 도피의 다른 이름이다.
- 페이융 <반야심경 마음공부> 중에서
3일간의 후르가다 일정을 마치고 다시 카이로로 떠나는 날이었다.
푸른 애매랄드빛의 바다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물결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유럽 그 어디도 가본 적은 없지만 내가 지금 이집트가 아니라 유럽 어느 도시에 와있나싶은 착각이 일었다. 따뜻하고 건조한 기후 또한 여행하기에 최적의 날씨였다.
해산물 모둠을 기다리며 먼저 나온 구아바 주스 한 잔과 함께 아이시빵을 맛있게 씹어먹고 있었다. 에피타이저로 해산물 스프가 먼저 나왔는데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스프 안에 내용물이 가득차서 정말 맛있고 고소했다. 크림파스타와 스프의 중간정도 되는 맛에 아낌없이 넣은 해산물이 일품이었다. 다음에 해산물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꼭 이곳에 들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개인적으로 모든 음식을 대부분 잘 먹는 나이지만 후르가다 수산시장 근처 씨푸드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이 해산물 모둠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너무도 푸짐한 양과 한입 먹으면 감동할수밖에 없는 맛까지 더해 싱싱함까지. 음식을 맛있게 먹어치우며 감동과 감탄을 연발했다.
종교는 없지만 운명은 믿는다.
모시는 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고는 믿는다.
알 미나 모스크에서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나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건강을 빌었다. 한국에서 자주 듣던 명상 채널인데 부처님의 말씀과 인생 조언 영상에서 흘러나왔던 문장들이 떠올랐다.
이슬람 문화권에 와서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기는 것이 맞는가에 대해 순간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내가 신을 모욕했다거나 종교를 비하했다거나 한 것이 아닌 순수한 어떠한 믿음과 철학으로 굳어지며 전해 내려오는 문장들을 곱씹어보는 것이니 괜찮지않을까 생각했다.
너는 영혼을 가진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이 바로 영혼이다.
우리가 희망에 가장 집중해야 할 때는
우리가 가장 어두운 시기에 있을 때이다.
내려놓아라.
헤어지기 마련이고
변하기 마련이며
사라지기 마련이다.
있던 것은 지나가고
없던 것은 돌아온다.
후르가다에서 카이로로 이동하는데만 5시간 가까이가 소요되기 때문에 수산시장과 알 미나 모스크 방문 후 곧바로 카이로로 이동했지만 다시 첫날 머물렀던 호텔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캄캄한 저녁이었다. 버스를 타고 긴 시간 이동하면서 중간에 한번 휴게소에 들렀는데 생각보다 꽤 큰 휴게소여서 마트를 잠시 구경하기도 했다.
아이스커피를 찾아보기 힘든 이집트에서 마트 안에 진열된 내가 아는 커피 브랜드, 네스카페. 그것도 시원한 냉장 커피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반갑던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두 캔을 구매했다. 하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원샷을 때렸다. 나머지 한 캔은 소중히 가방 안에 넣었다. 이따가 호텔에 도착해서 마셔야지. 커피 한 캔에도 무척 신이났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는 호텔에 도착하기 전, 카이로 시내의 한 골목이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이동중이었는데 버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광경들은 이제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첫날 이집트에 도착하고 카이로에 왔을 때 놀랐던 것은 신호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과 함께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도로를 왕복으로 걸어다닌다는 부분이었다. 차도 예외는 없었다. 다닥다닥 붙어 가는 수많은 자동차들. 마치 놀이공원에서 타던 범퍼카같았다.
그러나 무질서 안에서도 질서가 있다고 했다.
생각보다 차 사고가 흔하지 않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직접 카이로에서 차를 몰고 다니지는 않았기 때문에 겪어보지 않은 운전생활이지만 누군가 나에게 차키와 자동차를 주면서 직접 운전해서 여행하라고 했었어도 나는 결코 사양했을 것이다.
나는 이 무질서 속의 질서로 이루어진 카이로 시내도로에서 중간에 꽉 끼어 앞뒤로 오갈데없는 범퍼카신세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혼돈의 질주가 멈췄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 한인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당 이름은 일본이름(미나식당?) 비슷했던 것 같은데 결론적으로는 한식당이었다. 꼬부랑글씨와 그림같은 아랍어만 쳐다보다가 메뉴판에 쓰인 한글을 보는데 무척이나 반가웠다.
저녁 식사 후에는 첫날 이집트에 도착해서 머물렀던 소피텔 카이로 엘 제지라 호텔에 다시한번 체크인을 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창문 밖으로 펼쳐진 빛에 반사된 나일강의 모습이 아름다웠는데 사진으로는 담기지가 않아서 아쉬웠다.
이집트 기후 특성상 호텔도 그렇고 나일크루즈도 그렇고 난방 자체가 되지 않는다. 난방 히터를 아무리 눌러도 송풍바람이나 에어컨이 나오기 때문에 나는 1월에 여행을 했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라면 겨울 옷을 챙겨서 들고 가는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이집트 여행 성수기에 방문했는데도 워낙 추위를 타는 편이기도 하고 근육통이 있을까봐 혹시 몰라 챙겨갔던 핫팩들을 잠을 잘 때 요긴하게 사용했다. 허리와 목 뒤에 핫팩을 대고 뜨뜻하게 열로 지지면서 잠을 취하니 근육통도 완화되고 무엇보다도 밤에는 살짝 쌀쌀하다 느껴지는 기온이었지만 핫팩이 있어 따뜻한 새벽을 보냈다.
그리고 대망의 이집트 여행의 마지막날이 밝았다.
카이로의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조식을 포기하고 마지막 아침을 호텔 방안에서 나홀로 여유롭게 캔커피 한잔으로 시작하고 싶어서 어제 휴게소 마트에서 미리 사두고 밤새 냉장고안에서 열을 식힌 네스카페와 비스킷을 주워먹으며 창밖 풍경의 나일강과 함께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감상했다.
잘 있어라, 카이로 소피텔.
다음에 꼭 다시 올게.
그땐 혼자 말고 누군가랑 같이 올게. 맘속으로 외쳐보며 아쉬운 발걸음을 뗐다. 편안했고 웅장하고도 아름다웠던 호텔이지만 그보다 더 멋진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서, 내가 이집트에 오게 된 제일 큰 이유를 드디어 이루어내기 위해 일찍부터 길을 떠났다.
이후 버스를 타고 짧게 이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했다.
내가 이집트를 오겠다고 마음먹었던 첫번째 이유.
피라미드 관람만을 위한 입장권이 있고,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가장 큰 피라미드 쿠푸왕 피라미드 내부를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은 또 따로 있다. 금액이 다르다. 여기까지 온 이상 내부를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쿠푸왕 피라미드 내부가 어떤지는 대충 어느정도 후기를 찾아보고 온 상태였다.
생각보다 별 거는 없었다는둥, 돈이 아까웠다는둥의 의견도 있었고 또 어떤 이들은 이집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멋진 추억이었다,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던 일을 이루어냈다는 만족감 가득한 후기도 있었다.
걸어가는 도중에 길에서 만난 이집트 강아지들. 얘네는 진짜 순딩이들이다. 어쩜 저렇게 모래바닥에 누워 잠을 잘자는지... 사람을 보면 짖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거나 잠시 일어나서 쳐다보다가 다시 누워 잠을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마나 거대한건지 생각보다 매표소부터 피라미드까지의 거리가 꽤 되었다. 저멀리서부터 보이는 웅장하고 거대한 피라미드와 수많은 사람들. 가슴이 뛰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점점 더 대피라미드에 가까워졌다. 마침내 눈앞에서 마주하게 된 압도적인 광경.
크다라는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됐다. 이걸 뭐라고 하지? 어떤 말로 표현해야하지? 실제로 만난 피라미드는 정말이지 어마무시한 크기였고 웅장했고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있었다. 돌기둥 하나가 거의 1미터정도 되는 높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그 돌계단을 얼마나 쌓아올린걸까 가늠도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부터 미리 온갖 영상과 책으로 공부를 하고 관련 자료를 접하고 이 곳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론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고 와, 미쳤구나. 라는 말만 계속해서 터져나왔다. 그 옛날에 정말 어떻게 만든걸까. 이건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돌계단도 아니다. 피라미드를 외계인이 건축했다는 이야기가 왜 떠도는지 알 것만 같은 미스테리였다. 빛바랜 색으로 뒤덮여 흙빛의 돌로 쌓은 이 거대한 탑이 사람의 손에서 태어났다니. 정말 이 세상과 우주만물, 특히 인간에 대한 경외감이 일었다.
아래에서 볼 때는 몇 칸 안되는것처럼 보였어도 실제로 돌계단을 몇 칸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마무시한 높이가 느껴졌다. 사람들이 개미만하게 작아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했고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다리가 후들거리는것도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입장이다. 세워진 안내판을 훑어보며 티켓을 확인 후에 차례대로 한줄씩 내부를 향해 걸어갔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원칙적으로는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제외하고 쿠푸피라미드 내부(쿠푸왕의 방으로 알려진 곳)에서는 촬영이 안된다고 들었는데 때마다 다른 건지 아니면 원칙까지는 아닌건지는 몰라도 대부분 사람들이 사진들을 찍고 있었고 내부 관리자에게 1달러 정도의 팁을 지불하면 촬영하는데 그 어떤 제지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또 바깥에서 관광객들이 하는 이야기와 후기로 듣기로는 휴대폰으로 본인 사진 몇 장 정도는 촬영이 가능하지만 비디오카메라로 내부 영상을 자세하게 촬영하는 것은 안 된다고도 한다. 일단 이 점을 유의하면서 조심스럽게 내부 안으로 입장했다.
동굴 탐험인것도 같았던 내부 초입. 그러나 동굴과 다른 점은 기온이 상당히 높다는 거였다. 동굴은 쌀쌀하고 춥게 느껴지지만 피라미드 내부는 아니었다. 고온다습한 환경이었다. 내 옷에 내가 발을 밟고 넘어지지 않게 조심히 걸었다. 여행 당시에는 블로그라던지 브런치스토리라던지 할 생각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는데 중간중간 기록용으로 사진을 찍어두었던 것이 이렇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줄이야. 세상은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엄마에게 보내기 위해서,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 후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찍어놨던 사진들 덕분에 오히려 지금 내가 그 때의 추억을 생생하게 돌아보고 있다.
이 글을 읽게되시는 독자님들중에 이 계단이 대충이라도 상상이 되실지 모르겠다. 이전 왕가의 계곡에서 무덤 내부를 입장하면서 익히 연습했던 계단 입장이었는데 역시 쿠푸피라미드 내부는 가는길마저 쉽지 않았고 그 몇 배의 고통과 위험을 수반했다. 당연했다. 관람을 위해 만들어진 입구가 아니라 도굴꾼들이 파놓았던 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좁은 길을 드나들었을 도굴꾼들을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다가도 그 후에 이렇게 관광객들의 관람을 위해 정비된 길이 유지되고 있는것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아마도 추측하건대 키 180이상의 남성분들은 입장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허리를 굉장히 많이 숙여야하고 특히나 길도 좁은데다가 계단 폭도 좁아서 발이 큰 사람들도 드나들기에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실제로 나도 목디스크가 있는 환자이기때문에 내부 입장을 잠시 고민했던 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이 쿠푸 피라미드 내부 입장을 했던 것이 이집트 여행 중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여길 들어가보겠나.
그리고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좁은 통로를 드나들때 마주쳤던 외국인들을 보고나서였다. 아마도 60대? 70대 이상으로 보이는 그분들은 구부정한 허리와 지팡이를 짚고도 이 쿠푸피라미드 내부를 관람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저분들도 하는데, 난 그들보다도 아직 젊어. 생애 다신 없을 경험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길을 오르고 내려오는데 나야말로 못할게 뭐있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발걸음에 다시 힘이 실렸다. 조금만 더 가자. 할 수 있어. 이까짓 거 아무 것도 아니야. 가보자고.
조금만 더 가자.
그래, 이제 거의 다 왔다.
아휴 그런데 너무 덥네. 목도 뻐근하고 허리도 아프고.
한국 가면 근육통 장난아니겠구만.
하지만 다시 돌아나가기엔 생각보다 더 멀리 왔다.
그리고 나갈 곳도 없었다.
가야만 한다. 앞으로, 앞으로.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방이 보였다.
방...? 칸...? 이런 장면 영화에서 봤던 것 같은데.
이게 바로 개구멍이라고 불리던 그런 통로가 아닌가?
찾았다! 개구멍!
아니, 쿠푸왕의 방!
내부는 워낙 관람객도 많았고 환경 또한 사진을 많이 촬영할 수 없었기에 몇 장으로 대체해본다. 사람들이 얼마나 만져댄건지, 쿠푸왕이 강력한 권력을 가지던 그 시절의 기운을 느껴보기 위해 나 역시도 손을 뻗어 벽을 만져본다. 손바닥으로 몇천년 전의 기운을 느껴보려 눈을 감아본다.
사람들이 하도 만져대서 벽이 반질반질했다.
나도 손을 뻗어 그 기운을 느껴보았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느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 말을 떠올리며 신성한 기운과 긍정의 힘을 느껴보려했다.
내부 관리자 한분이 서계셨는데, 허락을 맡은 것인지 여러 관광객들이 돌아가며 한사람씩 쿠푸왕의 무덤이 있던 석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서양인들 사이에서 나도 어느틈 그 줄에 끼어 한 장의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현재 석상 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는 않지만 피라미드 내부에서 쿠푸왕의 기운 자체를 느껴보려는 사람들과 함께 잠시 돌바닥에 앉아 손을 모으고 눈을 감으며 10초정도 되는 시간동안 짧은 명상을 한 후에 바깥으로 퇴장했다.
돌아나가는 길 역시 입장하던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내려가는 길은 특히 더 미끄러워서 우당탕탕 넘어지지 않게 온신경을 집중하며 걸었다. 굽혀진 허리를 펴지 못하고 얼마나 총총걸음으로 내려왔을까. 드디어 저멀리 한줄기 빛이 보이더니 마침내 커다란 통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또 한번 해냈구나. 내가 결국 또 한번 해냈어.
바깥으로 나오니 확트인 시야와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잠시동안 내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생각해보다가 사방을 둘러보니 여전히 많은 관광객과 여행자들이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들, 바깥 풍경을 즐기며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 모두 하나같이 손에는 휴대폰과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저마다 피라미드의 웅장함에 압도당해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열정적인 모습들을 보며 나는 선뜻 그들에게 다가가 나의 사진을 부탁하기가 꺼려졌다. 혼자 여행 온 사람의 아쉬운 점은 이럴 때다. 내가 아무리 공손하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한다고해도 그들의 즐거운 여행 시간을 빼앗는건 아닐까싶은 마음이 들때다.
결국 나는 셀카를 찍다가 도저히 피라미드가 잘 담기지 않아 포기하고 멋진 풍경을 눈에 담아가기로 했다. 죽지도 않고 또 온 이집트 여행 스틱(아직도 이름을 모른다)을 꺼내 마지막으로 피라미드 앞에서 손을 높게 뻗었다. 뒤에는 여전히 대일밴드로 급하게 응급처치를 한 탓에 언제 떨어질지몰라 달랑거리는 스틱이었지만 오늘이 마지막이니 제발 좀 버텨줘를 외치며 빠르게 사진을 촬영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혼자 사진을 찍고 있는데 저멀리 현지인이 다가왔다. 첫날 카이로 시장에서도 그랬고 익히 들어 알고있던 현지인들의 문화랄까 습관이랄까.
많은 곳을 여행하지는 않았지만 전세계에서 사진을 공짜로 찍어주고 또 타인의 사진을 찍어주는데 진심인 나라는 우리나라가 제일 유명하지 않을까. 이집트 여행객들의 사진을 촬영해주고 팁을 받는 현지인들이 꽤 많이 있었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운 나쁜 경우에는 소위 덤탱이를 쓰는 경우도 많다고 해서 주의하라고 인터넷후기를 많이 듣고 왔는데 현지인이 다가오니 살짝 긴장이 됐다.
잘나오든 못나오든 피라미드와 함께 내 사진을 남기고 싶기는 했지만 아니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사실 처음에는 괜찮다며 현지인의 촬영 의사를 거부했는데 계속되는 실랑이 끝에, 그리고 좋은 협상 끝에 나는 1달러의 가격으로 사진 10장 가까이를 얻을 수 있었다. (보통은 1-2달러로 사진 한장을 찍어준다고 하는데 운 나쁜 경우에는 휴대폰을 가지고가 사진을 여러장 찍어주고 그 장수 만큼 돈을 요구하는 현지인도 있다고 들었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닐테지만! 여러 후기들을 통해 확인한 이야기라서 혹시나싶어 남겨본다)
하지만 난 럭키비키! 운이 정말 좋았다!
혹시 나, 전생에 선업을 많이 쌓았던 게 아닐까?
그동안 살면서 많은 힘든일들을 겪었던 건 오늘 내가 이렇게 행운을 쥐려고 잠시 시련의 시간을 겪었던건 아닐까? 나는 1달러로 열장이 넘는 정성 가득한 사진, 소위 말하는 피라미드와 함께 인생샷을 건졌다. 사실 피라미드를 눈앞에서 본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 그런데 내 카메라와 두눈에 쿠푸피라미드와 함께 내 모습까지 남길 수 있다니. 그 자체만으로 인생샷이었다.
눈으로 담고 카메라로도 담고. 줌을 당기고 늘려가며 아주 찍을 수 있을만한 사진은 다 찍은 것 같다. 그래도 눈으로 직접 보았던 것만 못하지만. 그 날의 감동을 잊을수가 없다.
아직 끝나지 않은 피라미드의 기적과 웅장함에 감동하며 스핑크스 또한 만나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만난 스핑크스.
이거 실화냐. 미쳤다. 소리가 또 절로 나왔다.
티비에서만 보던 그 스핑크스가 내 눈앞에 실존했다.
뭐야, 뭐야. 진짜 미친거 아니야? 와... 대박... 대박... 멋있다... 와...
저 말밖에 모르는 바보마냥 계속 감탄만 연발했다.
원래는 스핑크스 얼굴에 채색이 되어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하고 벗겨지고 또 깎여나갔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멋지고 늠름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스핑크스. 피라미드를 지키는 무사처럼 사방으로 내뿜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이집트, 이 나라는 뭐 하나 만들면 대충 만드는 법이 없는 나라 같았다. 미국의 텍사스도 물건이나 음식 사이즈가 크다고하는데 이집트에서 만든 건축물들은 웅장함의 끝판왕이었다.
스핑크스와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온갖 후기들을 보고 왔는데 아무래도 혼자다보니 사진을 남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나는 스핑크스에게 선글라스를 씌워주고 싶었는데 어떻게해도 각도가 나오지 않았고 손이 모자란 관계로 어설픈 셀카를 찍어대고 있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또 이곳, 이집트는 인류애가 넘쳐났다. 먼저 내가 사진을 부탁하기도 전에 혼자인 내가 안쓰러워보였는지 어쨌는지 다른 여행객분이 나에게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너무도 감사한분이다. 그리하여 남긴 사진이다.
신성한 마음가짐으로 신성한 손길이라 생각하며 손을 뻗어 외쳐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까지 보고나니 이집트에 와있는게 더 실감났고 여전히 가슴이 뛰고 설렜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쉬운 것이 오늘이 마지막 이집트 여행날이라는 점과 언제 또다시 이 멋진 광경을 보러 올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었다. 너무 멀지 않은 때에 다시 한번 꼭 오겠다 다짐하며 눈으로 담고 손으로 기억하며 마지막 일정을 위해 이동했다.
점심 식사 후 이집트, 카이로에서 마지막 일정은 박물관 투어였다.
첫날에 고고학 박물관을 관람하긴 했지만 또 다른 국립 박물관이었다. 현대식으로 되어 있어 첫날 구경했던 박물관과는 입구부터 느낌이 달랐고 확실히 더 세련된 느낌이었다.
미라가 전시된 곳은 사진 촬영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박물관 곳곳을 둘러보며 고대 이집트의 문화를 느껴보기도하고 내가 이 시대에 살았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국립 박물관이라서 그런지 내부에 카페도 있었고 기념품을 파는 상점도 많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이 곳에서도 몇가지 기념품을 구매했다.
사람들이 많이 사간다는 대추야자 초콜릿을 제일 먼저 구매했다.(선입견이 있었어서 별로일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굉장히 특별한 생김새였고 독특한데도 맛있었다! 주위에 많이 가지고와 지인에게 선물했는데 받은 분들이 좋아하셨다.) 그리고 구매한 피스타치오, 이집트 상징의 그림들이 그려진 에코백(두 개를 구매했는데 이건 너무 아쉽다. 한국에서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 몇 개 더 사서 선물할걸! 하나는 나, 하나는 엄마가 들고다닌다.)
이집트산 초콜릿, 필기구, 메모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이로 공항 면세점에서는 생명의 열쇠를 상징하는 앙크 기념품을 추가로 구매했다. 이 역시 주위에 선물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라는 의미에서였다.
부디 모두 행복하시길!
그리고 나는 카이로 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 후 대략 16시간,
몇 번의 기내식을 먹은 끝에 마침내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실망할 것이다. 닻줄을 풀어라. 안전한 항구를 떠나 항해하라.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아라. 탐험하라. 꿈꾸라. 발견하라.
-마크 트웨인 <좋아하는 거장의 문장 하나쯤> 중에서
이집트 여행을 다녀온 후로 9개월 가까이가 흘렀다. 그동안 내 삶은 많은 변화가 있었고 현재도 변화중이다. 때로는 하루하루가 불안정하게 느껴지기도 하며 여지껏 살아왔던 삶의 패턴과 전혀 다른 일상들로 걱정하는 시간 역시 여전하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점은 그럼에도 내가 전보다 많이 긍정적이고 밝아졌다는 사실이다. 불평 불만이 아닌 매일 감사와 감동을 이야기한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내 안의 인류애를 회복했고, 사라졌다고 여겼던 나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나를 존중하고 아껴주며 사랑하고 있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은 자기사랑과 자기확신에 여전히 어떤 날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우울감에 빠질 때도 있지만 모든 것은 그때 뿐이다. 일시적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나는 이제 남겨진 내 삶에서 절망이 아닌 희망을 본다. 내 지나간 삶에서 아픔과 고통이 아닌 성장과 배움을 느낀다.
고여 있는 물이 아닌 흐르는 물이 되어 자유롭게 움직이되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고 또 포용하고 나또한 언제든 누군가와 함께 자연스럽게 섞여들어 융화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래본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
-오노레 드 발자크
서두를 필요는 없다. 반짝일 필요도 없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될 필요가 없다.
-버지니아 울프
오, 구름이여, 아름다운 구름이여, 쉴 새 없이 떠다니는 존재여!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구름을 사랑했다. 구름을 보면서 나 역시 구름처럼 살아가리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여기 저기 낯선 곳을 방랑하면서, 시간과 영원 사이를 부유하면서 살아가리라는 것을.
-헤르만 헤세 <내가 되어가는 순간> 중에서
페터 카멘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