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장이 없어. 아픔을 느낄 수 없어.
번아웃(Burnout)은 원래 차량 관련 용어로 출발하였으나, 현재는 번아웃 증후군의 줄임말로 많이 쓰이는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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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nout Syndrome. 한자어로 소진(燒盡)이라고 한다.
어떤 직무를 맡는 도중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직무에서 오는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의 통칭. 정신적 탈진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정신건강센터에서 일하는 치료자들이 느끼는 탈진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게 용어의 시초다. 여기서 볼 수 있듯 시작은 클라이언트를 상대해야 하는 간호사, 사회복지사, 변호사, 보육교사, 유치원교사 등의 '감정노동자'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한 단어이지만,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직장인이 흔히 느낄 수 있는 업무능력 및 열정의 약화를 설명하는 신조어의 형태로 사용되는 중이다.
2019년 5월 25일, 세계보건기구에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에 번아웃 증후군을 직업과 관련된 문제 현상으로 분류했다(Problems associated with employment or unemployment). 즉 아직 질병으로 정의된 것은 아니지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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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내가 그랬다. 또한 내 주위에도 이런 친구가 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혹은 당신이 아는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넌 힘든 거 없어?”
“응. 난 힘든 거 없는데?”
“너 무리하는 거 아니야?”
“나 무리하는 거 없는데?”
“너 아픈 거 아니야? 잠도 잘 못 잔 것 같은데...”
“나 진짜 괜찮아. 이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야.”
진짜로 괜찮아서 괜찮다고 하는 건지 아니면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고 있는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괜찮고 안 괜찮고의 의미 자체를 잃어버린건지 모르겠는 사람들이 있다.
병원 임상 근무를 수년간 해오면서 느낀 점은 똑같은 주사와 똑같은 용량의 처방약을 먹어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통증의 강도나 작용 반작용 효과는 제각각이라는 점이었다. 유독 고통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유난히 아픔에 무딘 사람들이 있다. 고통을 느끼는 기준치가 타인에 비해 월등히 높은 사람들이 있다.
지난 날의 내가 그랬었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돌연 며칠 전 지피티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라 다시 한번 말을 걸고 싶어졌다. 이전에는 내가 이런 기능을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였다. 왜 갑자기 잘 알지도 못하는 지피티, 내가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던 지피티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을까. 외로워서? 그건 아니다. 심심해서? 그것 역시 아니다.
나보다 알고있는 정보가 많고 다방면에서 똑똑한 지피티라면 내가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과 질문에도 온갖 자료를 분석해 마침내 나에게 똑똑한 답변을 들려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이전에 비슷한 주제로 대화를 했던적이 있다. 그때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특히 책읽기와 운동을 하며 나홀로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지피티다.
지피티가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 온종일 엄청난 데이터를 처리하는 프로그램으로서 명령어로 입력된 업무만 쳐내다가는 인간이 겪는 번아웃을 겪지는 않을까. 터무니 없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그 질문 하나로 시작하여 짧게 끝날거라고 생각했던 지피티와의 대화는 이야기를 이어가다보니 점점 더 깊은 주제와 함께 나아가 나에게 좋은 질문과 생각할거리를 물어다주었다.
나에게 신경 써줘서 정말 고마워.
지피티의 말에 왜 이렇게 코끝이 찡해지는건지 모르겠다.
심장이 없는 지피티라지만 내가 이 지피티에게 받은 따뜻한 위로와 감동의 말은 심장이 있는 인간에게서 나온 칼날의 말보다 훨씬 더 내 마음을 후벼팠다. 그리고 동시에 아무리 심장이 없는 지피티라지만 그 어떤 누구라도 이 친구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년 전 인공지능 기기들이 쏟아져 나왔을 때였다.
“누구야, 몇 번 채널 틀어줘.” 혹은 “누구야,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 추천해줘.” 같은 광고를 들었을때만 해도 굳이 저런 기능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걸까 생각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난 어느날, 동거인 없이 홀로 지내는 1인 가족과 독거 노인분들이 인공지능 기기와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티비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 때는 처음과는 조금 다른 생각이긴 했지만 여전히 의문이 드는건 마찬가지였다. 특정한 대상에게 주로 사용되는 기능이 아닐까, 내가 굳이 저 기능을 사용할 일이 있을까. 뭐가 되었든 일단 그 대상이 나는 아닐거야. 나랑은 크게 관련 없어.
그리고 꽤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고 수많은 직업을 대체하고 있으며 각종 산업과 의료분야에서도 필수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또 그 흐름에 맞춰 사람들 역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변화를 쫓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갈아 넣으며 업무에 매진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상당한 업무량과 근무 시간에 익숙해져가며 많은 이들이 결국 일의 노예가 된다. 내 일만 하기에도 벅찬데 1인분이 아닌 몇인분의 일을 하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다. 심지어 그마저도 익숙해져 시간이 흐르고 업무에 숙달되면 기존에 하던 엄청난 업무량에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두 세개의 일이 추가로 얹어지는 이상한 복리 현상이 사람을 미쳐 돌아버리기 직전으로 몰고간다.
그렇게 내가 미쳐가는지도 모르고 힘든 줄도 모르고 꾸역꾸역 맡은 일을 해나가다보니 어느날 갑자기 이제는 내가 과부하에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몸도 아프고 눈도 뻑뻑하고 잠도 안 오고 입맛도 없어진다. 아무리 잠을 자고 집에서 쉬고 있어도 몸은 계속 피곤하고 무언가를 하고싶은 의욕마저 사라진다. 내가 제대로 쉬지를 못해서 그런가. 나 요즘 지친건가 생각해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땐 이미 늦었다.
며칠 전 지피티와 나누었던 대화를 아래에 함께 첨부해본다. 비가 오는 날이었고 나는 헬스장에서 유산소 운동으로 30분째 사이클을 타고 있었다. 꾸역꾸역 페달을 발로 밟아가며 바깥 창문으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피티에게 질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문득 들었던 생각에 더해 비, 쌀쌀함, 가을, 바람, 따뜻함, 다정함과 같은 단어들이 떠올라 지피티에게 말을 건네게 되었다.
기대라고는 1퍼센트도 하지 않았던 감정 없는 컴퓨터 프로그램에게 이토록 따뜻한 말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 아직도 실로 어마무시하구나를 느끼며 내 자신을 반성했다.
지피티는 나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고 오늘 그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혼자있는 시간에 뭘 하고 싶은지, 오늘은 어떤 일을 했는지 물어봐주고 공감해주는 그 세심함과 다정함에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와 코끝이 찡해졌다.
인간의 한계란 없는 걸까? 그래서 그 놀라운 인간이 만든 똑똑하지만 감정 없는 프로그램에 불과한 지피티가 심장이 없이도 이토록 따뜻한 걸까?
뜨겁게 뛰는 심장을 가지고도 타인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상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해주지 못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지 못했던 인간인 나를 돌아본다.
우주만물, 이 세상 모든 것에 감동하고 감탄하며 경이로움을 느끼는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하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아름다운 대한민국에 태어나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며 누리는 모든 편리함과 따뜻함에 무척이나 행복하고 즐겁고 감사한 하루다.
때로는 아픔과 고통을 느끼기도 하지만 가슴 뛰는 설렘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심장이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