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리스트 1. 추석 연휴에 나 홀로 여행 떠나기.
여행을 가기 이전부터도 원래 나는 생각과 고민이 참 많은 인간이었다. 생각해 보면 도대체 생각이라는 걸 어떻게 멈출 수가 있는 거지?라고 생각할 만큼 남들이 보면 생각도 많고 걱정도 많고 도대체 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모르겠는 인간, 그게 바로 나였다.
잠시 저 문장을 쓰는데도 도대체 생각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쓰인 건지 모르겠다. 내 보통의 머릿속이 이렇다. 생각하지 말아야지, 생각하지 말자. 생각 좀 멈춰. 생각, 그거 어떻게 안 할 수 있는 건데?
작년 추석 연휴였다.
우리 집은 모종의 이유로 몇 년 전부터 차례와 성묘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 그 결과 명절이 주는 조금은 무겁고도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 모두 한결 가벼워질 수 있었다.
“엄마, 나 이번 추석 때 혼자 부산 좀 다녀오려고.”
2023년의 봄과 여름을 지나면서부터 내내 고민하고 생각만 했던 것들이 있었다.
이렇게 일만 하고 사는 게 맞나...?
이직과 전직을 통해 여러 번의 회사와 직업군을 바꾸기는 했어도 감히 말하건대 나는 직장에서 매우 열심히 살았다. 문제는 열심히 일만 했다는 것에 있었다. 휴가도 반납한 채 일을 했고 있으나마나한 연차는 머릿속에서 아예 없는 개념으로 치부해 버린지도 오래였다. 하루에 잠자는 몇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직 일이었다. 이동 중에도 밥 먹는 동안에도 어딜 가도 머릿속은 일 생각뿐이었다. 자의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느샌가 나는 자의를 잃어버린 일의 노예가 되어있었다.
시작은 그저 별 거 없는 쉬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하아... 쉬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데서 잠이나 푹 자고 쉬고 싶다.’
평소 같았으면 몇 번 푸념이나 한 끝에 일상에 치여 살아갔을 텐데 그날은 달랐다. 문득 어디론가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 새로운 생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부산행 KTX 기차 편을 알아봤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급하게 계획한 나 홀로 부산 여행의 첫 시작, 기차표 예매 홈페이지를 몇십 번 새로고침한 끝에 나는 운 좋게도 한 자리를 얻게 됐다. 그것을 기점으로 내 인생 첫 부산 여행 계획은 술술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딱히 계획이랄 것도 없었다. 기차표 예약 후엔 바로 숙소를 알아봤다. 뚜벅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최대한 위치 접근성이 편리한 곳으로 알아봤고 누가 그 사이에 예약을 할까 싶어 여러 군데 알아보지도 않고 눈에 띄는 곳 한 두 군데를 둘러보다가 바로 클릭과 함께 결제를 했다. 돈을 지불했으니 무르기는 없다. 이제는 돈이 아까워서라도 취소하지 못하는 일이 된 거다. 그렇다면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즐겁게 여행이라...
인생 뭐 별 거 있어? 어떻게든 되겠지.
대충 옷 몇 벌을 집어넣고 기차 안에서 읽을 책과 에어팟을 챙기고 지갑을 쥔 채로 그렇게 나는 집을 떠났다.
“굶고 다니지 말고. 맛있는 거 많이 사 먹고 잘 놀고 푹 쉬다가 와!”
엄마는 아직도 내가 어린 애인줄 아나보다. KTX안에서 책을 읽으며 좋아하는 음악이 재생된 지 몇 시간, 곧 부산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내 휴대폰도 진동 알람이 울렸다. 잠금화면을 풀어낸 휴대폰 속에는 10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문구와 함께 아빠의 짧은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많이는 못 보낸다. 재밌게 놀다 와라.”
순간 울컥한 마음에 괜히 코가 시큰해졌다. 괜스레 다 마신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쥐었다 펴며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빠에게 전화를 드렸다.
“잘 다녀올게요. 자주 연락드릴게요.”
끝내 사랑한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분명 내 마음은 아실 거라고 생각한다. 아빠의 짧은 메시지를 보자마자 내가 울컥했던 이유랑 똑같을 테니까 말이다.
무작정 나 홀로 떠난 3일간의 부산여행동안 나름대로 이곳저곳을 발 빠르게 쏘다녔다. 매일 보던 버스, 매일 걷던 계단이 아니라 낯선 도시, 낯선 가게, 낯선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며 영화 나 홀로 집에 주인공 케빈이 된 것만 같았다.
발길이 닿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때로는 웨이팅을, 때로는 운 좋게 바로 자리에 앉아 맛있는 음식과 커피 그리고 디저트들을 먹으며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기고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내가 왜 부산에 내려왔을까에 대해 상기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부산 여행 전부터 이번 여정을 함께한 책 속의 어느 문장 하나가 내 마음에 깊이 박혀 다가왔다.
혼자 여행하면 외롭지 않겠냐는 주위의 말에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당당하게 나의 답을 이야기할 수 있다.
’ 혼자라서 외롭지 않다고. 혼자로 온전하며 충분하다고.‘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나와 대화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본 건 그동안의 인생에서 유일했다. 돌아올 때쯤엔 떠나기 전 엉켜있던 많은 생각들을 나름대로의 큰 틀을 쪼개 꺼내기 쉽도록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모든 것을 결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마침내 확실하게 결심한 한 가지는 이제 나는 남들이 하라는 일, 내가 하기 싫은 일, 재미없는 일, 지금 내가 대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는 일을 하며 살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앞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보자.
우선은 내가 좋아하는 일부터 찾아보자.
나에 대해 알아가 보자, 진짜 나에 대해서.
그러한 굳은 결심을 안고 나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는 KTX안에 몸을 실었다.
작년 추석과 비교했을 때 나는 한 살이라는 물리적 나이를 먹었지만, 정신적 나이도 함께 먹었다. 부정적인 마음이 많이 정화되었고 하루하루 소중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매일을 의미 있게 살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경험하며 도전 중이다. 누가 알아봐 주거나 인정해 주지 않아도 나 스스로 즐거운 일. 그런 가슴 뛰는 일을 하자고 또 한 번 다짐하며, 1년 전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해주고 싶다.
용기 내줘서 고맙다.
넌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야.
지금으로부터 또다시 1년 후, 2025년 추석에는 더 많이 성장하고 성숙한 내가 되어있길 바라며,
오늘의 일기 마침.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지병을 앓는 것과 같다.
도저히 안 되는 것을 고쳐보려는 마음도 있고,
그것을 안쓰러워하는 마음도 있다.
그것은 대체로 완치가 어렵다.
태생적인 것.
그래도 서른 해 동안 이를 악물고 있는 마음도 있다.
나의 부산 여행을 함께해 준
- 안리타 작가님의 <이, 별의 사각지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