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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색깔일까?

사진을 보니 '답정너'인 것 같다

by 윤 log

내 노트북은 사과회사에서 만든 제품이다.

나의 모든 문서 작업을 엑셀로 한다. 예를 들면 가계부, 운동기록, 여행일정 짜기 등등

그중 영어공부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듣는 인터넷 강의와 영어 원서 공부 그리고 유튜브에서

빨모선생님으로 유명한 ‘라이브 아카데미’의 동영상 강의를 보면서 영어 공부 자료들을 모두 엑셀에 정리한다.


오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카페에 내 지정 자리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과 원서, 그리고 뚱뚱이 필통에서

마우스와 마우스패드 그리고 이어폰을 꺼냈다.

요즘은 클레어 키건의 ‘Small things like these’으로 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원서의 공부란 원본을 읽다가 모르는 표현이라던지 낯선 문장구조를 만나면 오디오북인 스토리텔로 이 책의 번역본을 듣고 원서와 비교하며 뉘앙스를 익히는 것이다.

(이 책은 영어를 원서로 공부하기에 110 페이지의 많이 두껍지 않으면서도 평소에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을

아일랜드의 영어표현도 만날 수 있는 잔잔한 원서인 것 같다.)



이렇게 공부하면서 몰랐던 표현들을 엑셀에 나름 깔끔하고 한눈에 들어오게 정리를 해 본다.

우선 글씨의 폰트를 정하고 그다음 글자색을 변경한다. 블랙을 선호하지만 괜히 원서공부 자료는

조금 티 낼 수 있게 색으로 포인트를 준다.

이 책 표지를 보면 윗부분이 연한 초록색이다. 그래서 이와 비슷한 색을 고르려고 색상툴을 클릭했다.

맥의 엑셀인 numbers에서 상단 메뉴 오른쪽에 페인트 그림의 아이콘을 선택-텍스트를 클릭하면

서체에서 색을 고를 수 있다. 여기 기본으로 제공되는 29개의 색이 있다. 하지만 더 다양한 색이 주어지는

색연필 모양의 색상 카테고리를 선택하면 48개의 색연필들이 자기 나름의 빛으로 내 눈을 유혹하고 있다.

그 색들 위에 마우스를 대고 있자니 각각 고유의 이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맨 윗줄은, 왼쪽부터 감초 납 텅스텐 철 강철 주석 니켈 알루미늄 마그네슘 은색 수은 눈

두 번째 줄, 카옌 모카 아스파라거스 고비 클로버 이끼 검둥오리 바다 암흑 진보라 자주 고동

세 번째 줄, 체리 진한 등색 레몬 라임 새싹 바다 거품 청녹 아쿠아 블루베리 포도 마젠타 딸기

그리고 마지막 제일 아랫 줄에는 연어 멜론 바나나 꿀 식물 물보라 얼음 하늘 연자주 라벤더 풍선껌 카네이션


아니, 이렇게나 다양한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니, 이름만 봐도 너무 재미있었다.

이들 중에 난 ‘Small things like these’의 공부흔적은 표지색과 닮은 이쁜 이끼색으로 덮어 주었다.

책의 제목과도 뭔가 연관이 있을 것 같은... 이토록 작은 이끼들,

이제 이 책을 볼 때면 이끼들이 떠올라질 것도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색으로 표현될까?

그리고 나를 어떤 색으로 바라봐 줄까?

이 글의 제목인데 이제야 언급한다. 하지만 다시 색깔로 좀 더 파고 들어가 보면



위에서 언급한 이름들을 보면 당연히 알고 있지만 자주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 즉,

감초... 감초는 거의 검정에 가까운 아주 진한 색.

무뚝뚝한 것 같지만 언제나 옆에서 든든히 지켜줄 것 만 같은 묵직함이 느껴진다.

마그네슘은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 중 하나로 특히 뼈 건강에 도움을 준다. 그래서인지 뼈 색깔이 마그네슘의 알약색과 일맥 상통한 색인 것 같아 신기했다.

붉은색 계열 중에서도 가장 왼쪽에 진한 색인 카옌은… 가만, 근데 카옌이 뭘까?

검색해 보니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고추의 한 종류로 카옌페퍼(Cayenne Peppers)에서 따온 이름이다. 외국에선 칠리나 레드페퍼라고 불리는 이 고추는 매운맛의 대명사인 청양고추보다도 몇 배나 더 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기본색 중에 가장 진한 빨간색보다도 카옌색의 색깔이 더 깊고 진한 걸 볼 수 있다.

이젠 강렬하게 기억하고 싶을 땐 캅사이신의 매운맛으로 카옌색을 골라야겠다.



초록색 계열 중에서 '고비'라는 이름이 아스파라거스와 클로버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고비? 고비는 또 뭘까??

이 또한 찾아보니 고사리과에 속하는 줄기 식물로 숲 속의 소고기라고 할 만큼 효능 좋은 나물이라고 한다.

아.. 나물이름이었구나. 몸에도 좋은 나물은 역시 초록, 초록이라면 상쾌하고 싱그럽고 또한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음 장 보러 갈 때는 우리 ‘고비’ 친구가 있는지 꼭 살펴봐야겠다.


위 고사리, 아래 고비


그리고 평소에도 자주 만나는 친근한 이름들도 있다.

좋아하는 과일인 바나나는 그 모습 그대로 노란색을 띠고 있고 멜론은 약간 초록색이 섞여 있을 줄 알았는데 주황과 노랑이 합쳐진 색 같다. 여기에서 지정해 준 멜론 색은 겉껍질이 연둣빛이 아닌 주황의 빛이었다. 모두가 똑같이 인식하는 색이 아닌, 예상외의 야생의 색.


이처럼 색으로 표현되는 여러 사물이나 식물, 과일, 자연의 빛 들에서도 자기만의 개성이 드러나는데

과연 나를 표현해 주는 색깔은 어떤 색과 가장 가까울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확실한 건 그다지 밝은 느낌은 아니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색도 좋아하는 옷도 모두 기본의 색으로 채워져 있다. 이른바 검회흰! 언제나 이 사이에서 내 기분도 생각도 머무르는 것 같다.

이 중에서 굳이 한 가지만 뽑으라고 한다면 회색을 고를 것이다. 회색을 정리한 단어들을 모아보면 중립적이며 차갑고 우울감을 지닌 느낌. 하지만 난 이 명확하지 않은 시야 안에서 검정과 흰색, 둘 모두를 담고 있는 색이어서 좋다.

회색=검은색+흰색

검은색에서 느껴지는 결단의 단호함과 어떤 색이든 만나면 다양한 색으로 바로 바뀌는 흰색도 품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이지만 그중에서 나만의 기준으로 단단함을 지키고픈 마음이 담겨있다고 하고 싶고 또 그렇게 보이고 싶기도 하다.

무덤덤해 보이지만 내심 불꽃같은 열정도 가끔은 드러내는 그런 사람으로

구름 낀 회색하늘을 더 좋아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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