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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 책 대출과 반납을 위해 국립도서관에 온다.
이날은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도서관 2층 노트북 좌석이 아닌 1층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1인용 책상에서 노트북을 꺼내 브런치북 글을 쓰고 있었다.
20여분이 지났을까 어떤 엄마와 아이가 내 앞으로 걸어간다. 곧바로 엄마 손을 꼭 잡은 귀여운 아이가 눈에 탁 들어왔다. 언뜻 보기에 4~5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아이. 엄마 손을 꼭 잡고 총총총 걸어간다.
긴 생머리로 양갈래 머리를 하고 목엔 살짝 하얀색 프릴이 잡혀있는 반팔 티셔츠를 입고 발목엔 귀엽게 셔링이 잡혀있는 아주 편해 보이는 면소재의 잔 꽃무늬 9부 바지를 입고 있었다.
도서관의 책꽂이는 가로 4칸에 높이는 6단으로 되어있다.
찰나였지만 내 바로 앞으로 지나가는 이 아이의 시선에 내 시선이 옮겨갔다.
작고 귀여운 그 아이는 책장의 밑에서 두 번째 칸의 위치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엄마가 이끄는 손에 의해 도서관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아이의 시선 쪽으로 고개를 돌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맨 아래칸과 그 바로 위칸은 책 옆면의 띠지가 천장으로 향하게 진열되어있는 것이다.
아…, 만약 책들이 정면으로 세워져 있다면 키가 큰 어른들은 맨 아래쪽 책들을 쭈그리고 앉아서 봐야 하니 앉지 않아도 옆 표지의 제목을 확인할 수 있게 천장을 바라보게 해 놓은 거였던 것이다. 이제 알았다!
(그 아이는 도서관의 이 많은 책들은 왜 다 하얀색일까?라고 생각을 할까??ㅎㅎ)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이런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고 약간의 희열을 느끼던 중...
가만히 바로 내 앞에 꽂혀있는 책장으로 눈을 돌려 정면을 바라봤다.
어! 그런데 바로 어제, 지인의 소셜미디어 피드에서 접했던 사피엔스가 (언젠가는 꼭 읽어보리라.. 하고 다짐했던 책) 빨간 글씨로 나란히 두 권이 꽂혀있는 게 아닌가. 난 잠시 3초간 굳어있었다. 아, 그래 이런 거였어.. 우연의 희열은…. 이것은 현실 속 알고리즘?
이젠 온라인에서 섬뜩하게도 자주 겪는 일이 되었지만 현실에서 이런 상황을 만나니 왜 인지 참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현실 속에서 마주친 직접적인 우연, 이런 우연은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다음 주 여행계획이 있어 대여한 책을 몽땅 반납하고 홀가분하게 가려고 했던 내게 아쉬운 마음에 또 한 손에 쥐어준 행운 같은 책. 앞으로 사피엔스는 나에게 우연한 행운으로 기억되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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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오늘은 오후 4시까지 나만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날.
어제 잠들기 전, 둘째 재운 후에 하려고 했던 일을 못해서 그런지 새벽 5:30분에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찾고 있던 책이 책장에 없어서 책상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책꽂이에 꽂혀만 있던 노트를 무심코 꺼내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미도리 MD노트, 좋아해서 그런지 너무 아끼고 있었다. 일기를 쓰던 노트인데 날짜가 24년 12월에 멈춰있었다. 다시 써야지.. 하고 펜을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언제 썼는지 모를 낙서처럼 적은 메모장이 덧붙여 있었고 난 그 메모 옆에 화살표를 그려 부가설명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글쓰기가 이어졌다. 다음장부터는 오늘처럼 아침에 모닝 글쓰기를 해야겠다며 한 페이지를 금방 꽉 채웠다. 막상 쓰고 보니 내일도 또 그다음 날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눈뜨자마자 머릿속의 조각들을 이 노트에 남겨보기로 다짐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오늘은 조금 오래 머무르기 위해 커피와 곁들일 빵이 있는 뚜레쥬르에 갔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가는 길에(걸어갔으면 안 들어갔을)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 그건 바로 빈티지 샵 윈도에 걸려있는 챔피언 티셔츠!
빈티지 옷을 좋아해서 가끔 들러보는 곳인데 오늘은 이쁜 아이가 오랜만이라고 반기고 있어 안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멀리서 보는 것보다 지금 입기에 조금 두꺼웠고 보풀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아이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는데 아니, 더 이쁜 아이가 나이키와 뉴발란스 사이에 숨바꼭질하듯 살포시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흰색 면티에 약간 빛바랜 카키색의 캥거루가 귀엽게 프린팅 되어있는 'KANGOL' 반팔 티셔츠! 여름엔 정말 100장 정도 쟁여놓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면 반팔 티셔츠. 상태 좋은 옷을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득템 할 수 있는 빈티지 샵의 매력은 정말.., 무한도전 정형돈 님이 동묘에서 싹쓸이하는 것과 같은, 이것은 나만의 진주를 찾는 설렘과 즐거움이다. 덤으로 일반 매장에서 봤다면 절대 구매하지 않았을 여름 라탄 숄더백까지! 저렴하게 쇼핑해서 기분이 너무 좋다.
늘 하던 대로 행동했으면 어쩜 모를 뻔했을 일들,
하지 않을 법한 행동을 한다고 나쁠 것도, 오히려 얻어지는 것도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알아가고 탐색하는 과정이 이처럼 즐겁고 얼마나 나를 풍요롭게 해 주는지.. 하루하루가 경험과 기회, 그리고 나만의 즐거운 여정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