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13. 기(氣)가 통하는 사랑의 마사지
예전에 어렸을 때 특히 막내인 분들은 부모님께 안마해 드리고 용돈 받은 기억이 있을 거예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분들도 할머니 할아버지께 안마를 많이 해드렸을 겁니다. 고사리손으로 어깨를 조물조물하면 시원치 않아서 차라리 주먹을 쥐고 두드리라고 하든지, 또 다리의 경우는 차라리 발로 밟으라고 하셨지요. 심지어 엎드리신 후에 등과 허리도 밟으라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1,2인 가구가 늘면서 그런 모습을 마사지 기기나 안마의자가 대신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자녀가 있어도 무거운 가방을 메고 저녁 늦게까지 학원에 다녀오느라 녹초가 돼서 들어왔는데, 그런 아이에게 부모가 오히려 어깨를 주물러주면 주물러줬지, "엄마아빠 어깨 좀 주물러달라"는 말을 차마 꺼낼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요즘은 컴퓨터와 휴대폰 사용이 일상화되다 보니까 아이부터 어른까지 거의 자세가 좋지 않아 일자목, 거북목이 된 분들이 많지요. 일자목, 거북목이 되면 늘 몸이 찌뿌드드하고 근육통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에 시중에는 그런 분들을 위한 가정용 마사지 기기가 참 많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가정용 마사지 기기 시장이 블루 오션으로 대접받는 시대가 됐다고나 할까요. 손을 마사지하는 마사지 기기부터 발 마사지 기기, 목과 어깨를 마사지하는 기기, 전신을 마사지하는 안마의자, 심지어 안마 의료기기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구나 가전제품 들여놓듯이 안마의자를 들여놓는 집들이 많아졌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층간 소음 분쟁을 막기 위해 저녁 시간에는 될 수 있으면 사용하지 말라는 안내 방송을 하기도 합니다.
마사지 기기가 이렇게 전성시대를 맞게 된 것은 정말 어떨 때는 사람이 손으로 하는 것처럼 조물조물 주물러주고 눌러주고 두들기기도 해서 신통방통하게도 뭉쳤던 근육을 시원하게 풀어주기도 하기 때문인데요. 그래도 그렇게 기계로 하는 마사지는 일방통행이라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기계는 입력된 프로그램으로만 마사지를 하지, 내가 원하는 부분만 더 세게 한다든지, 아니면 어떤 부분은 좀 약하게 한다든지, 이런 변화를 바로바로 주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사람이 손으로 마사지를 해주는 마사지샵을 찾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마사지샵에서 지불하는 비싼 비용만큼 제대로 마사지를 받으려면 마사지에 대한 리액션(reaction), 반응을 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마사지를 받으면서 시원한 느낌이 들면 “어, 시원하다”라고 해야 마사지사가 계속 그 강도로 마사지를 하고, 좀 아플 땐 “아야”하고 아픈 내색을 해야 마사지 강도를 바로 낮추게 되거든요. 또 똑같이 양쪽을 마사지하는데 “왼쪽이 더 뻐근하네요” 하면 왼쪽을 좀 더 집중적으로 마사지를 해주는 등, 마사지를 받으면서 의사표현을 하면 좀 더 확실하게 마사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간혹 마사지샵에 처음 간 분들은 지압을 받을 때 저절로 입에서 “으으”하는 소리가 나와도, 왠지 소리 내는 게 창피해서 일부러 꾹 참고 소리가 입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마사지나 지압을 해주시는 분이 계속 묻지요. "아프지 않으세요?" "괜찮으세요?" "아프면 말씀하세요." 반면에 마사지나 지압을 많이 받아 본 분들은 자신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더 크게 소리를 내서 리액션을 합니다. 결국 마사지사나 지압사가 해주는 마사지나 지압이 비싼 건, 상호소통과 그로 인한 맞춤 마사지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비싼 안마의자나 의료기기는, 사람이 하는 마사지와 비슷한 여러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다른 마사지 기기와 마찬가지로 일방통행 마사지만 가능하기 때문에, 근골격계에 이상이 있는 분들은 증상이 악화될 우려가 있어서 오히려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는 거지요.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점은 마사지사가 단지 지압하고 주무르고 하는 물리적인 동작으로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기(氣)도 주고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사지사가 마사지를 계속하려면 본인의 건강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해요. 이는 마사지를 하고 나면 마사지 노동으로 인한 피로뿐 아니라 기(氣)도 빠져나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서양의학에서는 기(氣)의 실체를 현대과학으로 똑 부러지게 설명하기 어려워서 중시하지 않지만, 동양철학이나 한의학에서는 기(氣)가 생태계 전체를 관통하는 우주의 생명력으로 보고 상당히 중시하지요. 일단 기가 통해야 건강하다고 하잖아요. 예전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들이 해드리는 마사지를 좋아하셨던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손주들이 해드리는 마사지가 어설퍼도 좋다고 하신 게 단지 예의상 차린 인사치레가 아니라, 어린 손주들로부터 실제 어떤 활기찬 기운의 영향을 받아서 기(氣)의 흐름이 좋아질 수 있었던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혼자 사는 경우라면 어쩔 수 없이 마사지 기기의 도움을 받아야겠지만, 최소 부부가 함께 사는 경우에는 귀찮아하거나 힘들다고 하지 말고, 서로 상대에게 사랑의 마사지를 좀 해주면 좋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젊었을 때 신혼 때는 틈만 나면 서로를 '터치'했는데, 중년 이후에는 이런 지극히 필요에 의한 '터치'도 귀찮아하게 된 것 같지 않으세요? 혹시 배우자가 "잠을 잘 못 잤나? 목과 어깨가 아파"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잠자리가 불편해서 그런가? 우리 각방 쓸까?" 이러면 흔히 말하는 '졸혼(卒婚)'에 가까워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럴 때 "우리도 안마의자 들여놓을까? 요즘은 렌트도 하는데." 이런 대답도 백년해로해야 할 사이에서는 마땅치 않습니다. 그럴 때 비록 별 효과가 없더라도 "이리 앉아봐. 내가 주물러줄게" 이러면 벌써 배우자의 마음에는 사랑의 기(氣)가 통하면서 몸 스스로가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됩니다. 똑같이 스트레칭을 하거나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아도 사랑의 기(氣)가 통한 사람은 효과가 훨씬 좋고 빠르게 나타납니다. 우리 몸은 우리 마음과 연결돼 있고, 마음 상태에 많이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랑의 마사지는 사랑을 표현하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배우자가 목이 뻐근하다며 목운동을 계속하거나 어깨가 아프다고 어깨를 돌리면 그냥 무심코 지나치지 마시고 "목 하고 어깨가 뻐근해? 내가 주물러줄까?" 하고 말이라도 먼저 건네보세요. 아마 내 몸처럼 상대의 건강을 염려하면, 어쩌면 말보다 먼저 손부터 나가 사랑의 마사지를 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사랑의 마사지를 주고받으면 상대의 어디가 아픈지, 어디 근육이 뭉쳤는지뿐 아니라, '아 이 사람이 요즘 힘들고 긴장하는 일이 많은가 보다', 이렇게 상대의 현재 마음 상태도 짐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아울러 자연스레 서로의 건강에 대한 체크도 하게 되고, 또 기(氣)와 함께 사랑도 주고받으면서, 부부간의 정이 더 돈독해지게 됩니다.
사랑의 마사지, 얼마나 일거다득 (一擧多得)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