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12. 오늘은 내일보다 젊은 날
나이 들수록 많아진 나이가 왠지 내 나이라는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누가 나이를 물을 때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되는 것은 나이가 생각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나이가 그 숫자라는 실감이 나지 않아서 무의식 중에 기억하길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언제부턴가 거울에 비친 주름진 내 얼굴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마치 내 얼굴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는 거울을 자주 보던 분들도, 나이 들수록 거울을 자주 보지 않게 된다고 하십니다. 내 마음에 기억되는 나의 예쁜 모습은 젊었을 때 모습이어서, 거울 속에 턱선이 늘어지고 입가에 팔자 주름이 진 내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누구세요?”하고 묻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거울을 보는 건 잠깐이지만, 사진은 꼼짝없는 결과물로 남게 되니까 그런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이 더 큽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사진 찍는 게 별로 즐겁지 않게 됐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사진을 볼 때 그 사진에 담긴 사연 전체를 추억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자글자글한 주름부터 인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아무리 즐거운 추억을 담은 사진 속 주인공이 나라고 해도, 그 주인공더러 “누구세요?”하고 묻고 싶은 심정이니까, 그 사진을 보면서 사진 속에 담긴 추억을 온전히 내 것으로 즐길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나이 들어서는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항상 내일보다 젊은 날’이니까요. 오늘 사진 찍기를 미루고 나중에 사진 찍으려고 할 때는 자연히 지금보다 더 나이 든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사진첩이나 휴대폰 사진 파일들을 들춰보시면 바로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주름살 때문에 찍기 싫다고 하면서 찍었고, 그 후에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겼던 사진인데, 몇 년 지나서 보니까 ‘그땐 그래도 지금보다 예뻤네’하고 생각되는 사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내 모습이 아니라 내 마음, 내 생각의 기준입니다. 나는 지금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도 마음과 생각의 기준은 과거에 있기 때문에, 현재를 제대로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게 계속 흘러갑니다. 오늘이 지나 내일이 다시 오늘이 되면, 오늘은 또 어제라는 과거 속에 파묻히게 됩니다. 그러니 현재를 즐기는 게 최선입니다. 축구 경기만 해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골 하나 넣고 나서 거창하게 세리머니를 하면서 그 기분에 취해 있다간, 상대의 기습 공격을 받아 골을 잃기 십상입니다. 또 실수했어도 얼른 떨쳐내고 현재 전략과 전술을 정비해서 동점을 만들고 역전을 만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경기에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하지요. 이 말은 결국 흘러간 과거는 더 이상 이제 우리 소관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과거는 분명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긴 하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는 우리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습니다. 우리 소관이 아닌 일에 매달리다간 현재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고, 미래도 제대로 준비하기 어렵습니다.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꿈꿀 수는 있어도 그건 아직 이뤄지지 않은 거니까, 우리의 능력 안에 있는 건 '현재'라는 시간뿐입니다.
게다가 흔히 추억은 미화된다고 하잖아요. 아무리 힘들었던 과거도 시간이 지나 떠올리면 힘들었던 기억은 퇴색되기 마련입니다. 아마도 그건 현재를 잘 살아내면서 미래를 잘 준비하라는 조물주의 배려가 아닐까 싶어요. 시간이 지나도 과거의 힘들고 아픈 일들을 그대로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으면 우리는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잘 살지 못할 테니까요. 그런데도 우리는 과거에 사로잡혀 오늘 내 모습이 예전 내 모습보다 못하다고 탓하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 요즘은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주름을 지우기 위해 피부과나 성형외과에서 보톡스나 레이저 시술을 받고 피부 리프팅 수술을 받는 경우도 흔한데, 그런다고 예전 젊었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피부가 팽팽해진 다른 모습의 내가 될 때가 많지요. 아무리 피부가 팽팽해져도 남들은 물론 나조차도 거울을 볼 때 또 다른 의미로 "누구세요?" 하고 묻고 싶은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그건 주름뿐 아니라 주름과 함께 나만의 매력도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만의 매력을 간직한 채 팽팽한 얼굴이면 좋겠지만 그건 아직 현대의학에서는 불가능하지요. 말하자면 나만의 매력이 사라진 팽팽한 얼굴과 나만의 매력을 간직한 주름진 얼굴 중 선택해야 하는데, 이 둘 중 어느 게 마음에 드세요? 아시겠지만 타고난 나만의 매력은 현대의학의 발달한 기술로도 만들지 못하는 대체불가 요소입니다.
오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또는 오늘 사진 렌즈가 포착한 내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나의 아름다운 젊었을 때의 모습보다, 또는 예전의 사진 속 내 모습보다 덜 예뻐도, 현재의 모습을 사랑해 주세요, 나이 들수록 사진 찍기 싫다고 하지 마시고 당당하게 사진을 찍으시기 바랍니다. 거울을 볼 때도 ‘오늘 주름이 늘었네’ 탄식하지 마시고, ‘그래도 오늘 참 예쁘네’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해주세요. "나도 예전에는 예뻤어."라는 말처럼 슬픈 말은 없습니다. 그러면 과거를 붙들고 사는 불쌍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늘 '나는 예쁜 사람'이라고 현재의 나를 후하게 평가하고 스스로 먼저 인정해 주세요. 내가 예쁘다고 하면 예쁜 거예요. 예쁘다고 느끼는 건 주관적인 거니까요. 그게 바로 나를 사랑하는 태도입니다. 누구보다 내가 현재의 나를 인정하고 제일 예뻐하고 예쁘게 봐줘야 합니다. 나조차도 예쁘게 보지 않는 나는 누구도 예쁘게 봐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의 시선, 나의 마음, 나의 생각은 늘 현재를 향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현재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누리면, 이런 행복한 현재가 쌓여 나의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가게 됩니다. 행복한 인생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