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놀이가 있습니다. 가까운 주변 인물에게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질문한 뒤 반응을 살피는 겁니다. 이미 이런 질문을 받아보신 분들도 많이 계실 것 같아요. 그리고 뜬금없이 유행하는 바퀴벌레 변신 타령에, 문득 학창 시절에 읽었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소설을 떠올리신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카프카의 ‘변신’은 발표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명작이지요.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미 100년 전 그때에 지금 청춘들이 겪고 불안해하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세상의 반응을 간파하고 있어서 참 놀랍습니다. 줄거리를 잠깐 말씀드리면, 어느 날 아침 거대한 벌레로 변해서 잠에서 깨어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든든한 입장에서 졸지에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면서, 식구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고, 결국 쓸쓸히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라는 질문은, 우선 MZ 세대의 학업과 취업, 사회에서의 도태에 대한 불안감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소외감이나 부적응을 겪을 때, 혹은 벌레처럼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부모님을 비롯해서 가까운 사람들은 과연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지,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거라고 할 수 있지요. 또한 그만큼 지금 세상이 감동과 위로가 필요한 세상이라는 걸 상징한다고도 하겠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신 분들은 어떤 대답을 하셨나요? 아직 받아보지 못하셨다면 어떤 대답을 하실 건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단 이런 질문에 대다수의 부모님은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했다고 해요. 징그러운 모습으로 변해도 자식이라면 그 모습까지 사랑한다는 거지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떠올리면 정말 그런 상황에서 얼마나 언제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순 없지만, 기본적으로 내 자식이니까 '그래도 사랑한다'는 대답부터 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내가 바퀴벌레가 돼도 우리 엄마, 우리 아빠는 직감으로 나인지 바로 알아볼 것 같다”는 말을 한 MZ세대도 있었다는데, 평소에 부모와 유대관계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하게 해 줍니다. 그런가 하면 "유튜브로 '바퀴벌레가 행복해지는 법'을 검색한다"는 답변을 하신 분도 있었다는데, 현실적인 고민 해소 방법도 엿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뭐든 궁금하거나 고민이 될 때 인터넷 검색창을 찾아 검색부터 하잖아요. 심지어 어떤 분들은 챗GPT의 말을 사람 말보다 더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하니까 현대인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 다른 현실적인 답변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바퀴벌레라고 방송에 소개하고 출연료를 받겠다"도 있었다고 합니다.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감동적이든 유머스럽든 간에, 새삼 관계에 대해 점검해 보게 됩니다. 혹시 그동안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라고 비난하거나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라고 닦달하진 않았는지, 이미 정말 바퀴벌레가 된 듯이 툭하면 험하고 심한 말과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지, 그러면서도 새삼 "네가 바퀴벌레가 돼도 사랑할 거야"는 공허한 메아리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우리 가족들은 나를 어떻게 할까 상상해 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뭐 MZ세대처럼 굳이 꼭 바퀴벌레가 된다고 상상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상황들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가령 하루아침에 명퇴를 당해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될까?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세끼 밥을 꼬박꼬박 챙기는 소위 '삼식이' 신세가 돼도 가족들이 나를 좋아할까? 가령 노후에 내가 신체적으로 건강이 안 좋아져서 거동이 불편해지면 어떻게 될까? 일단 경제적으로 나의 병원비, 약제비, 간병비 등을 감당할 수 있을까? 가족들한테 짐이 되는 건 아닐까? 특히 내가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그럴 때 내 배우자는, 내 자식들은 나를 어떻게 할까?
어떠세요? 상상만 해도 내가 바퀴벌레가 된 것처럼 섬뜩하고 무섭지 않으세요? 그런데 자고 일어났더니 바퀴벌레가 됐다는 상상은 현실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지만,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들은 누구에게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어서 현실적으로 더 무섭습니다.
가족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고 기꺼이 내편이 되어주는 존재지요. 그래서 예로부터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고 했는데요. 복잡한 현대시대에서는 가족도 서로의 노력이 없으면 남과 다름없는 관계가 되기 쉽습니다. 사실 유대관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단지 한솥밥을 먹고 한 지붕 아래에서 잠잔다고 저절로 돈독해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돈 버는 기계처럼만 살다가 퇴직해서 '마음이 헛헛하다'라고 하면, 가족 사이에서도 공감을 받지 못합니다. 서로 바빠 얼굴 마주칠 때도 많지 않은데 얼굴 마주칠 때마다 "공부해라" 그러지 말고, 같이 나가 공을 차고, 산책을 하고 그러면서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진정한 대화를 해보세요. 이제 애들이 다 커서 나와 얘기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불만부터 갖지 마시고, '그동안 그 정도로 아이와 대화시간이 부족했구나' 하고 반성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평소 이 얘기, 저 얘기 많이 나눈 사이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이에 비해 힘든 얘기도 상대적으로 쉽게 꺼낼 수 있습니다.
물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아서 집에 오면 손도 까딱하기 싫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직장에서는 재미없는 부장님 유머도 재미있는 척 웃으면서 들어주고 물개박수 리액션을 하잖아요? 그러면서 집에서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대화도 한 마디 잘 안 한다는 건, 내 마음속에 가족들이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게 마음에 달려있다고 하지요. 고승열전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만경스님이 스승이신 경허스님과 탁발을 마치고 절로 돌아가는 길에 바랑이 너무 무겁다고 쉬지 않고 투덜거렸습니다. 그러자 경허스님은 길가에 있는 우물로 가더니 한 아낙네에게 입을 맞췄고, 그 모습을 본 동네 남자들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두 스님은 사력을 다해서 뛰기 시작했고, 어느새 절 앞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경허스님은 만공스님에게 “죽기 살기로 도망칠 때도 걸망이 무겁더냐?”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는 일화입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이 피곤하다고 생각해서 피곤한 거예요. 내 마음에 사랑하는 가족이 우선순위에 있다면, 집에 와서 피곤해 하기보다 가족들 얼굴 보면 없던 기운도 나서 같이 맛있는 음식을 해서 먹게 되고, 하하 호호 얘기 나누면서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힐링이 되는 걸 느끼게 테니까요. 비록 가장이 돈은 벌어와서 생활했지만 가족도 자신들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퇴직한 남편, 아버지의 헛헛함에 공감하지 못하는 겁니다. 퇴근하고 오면 몸도 마음도 지쳐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냐는 분들은, 나도 가족도 아닌 회사를 제일 우선순위에 두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세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사랑받는 존재가 되려면 나부터 먼저 나를 그리고 가족을 우선순위에 두고 생각하고 행동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