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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럽 Sep 14. 2024

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11. 그 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세요" 이런 인사는 20-30년 전만 해도 소위 ‘립서비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이 들어도 누구나 ‘예쁘다’, ‘멋있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그래서 ‘예쁘다’, ‘멋있다’는 말을 인사치레로라도 해야겠는데, 그냥 ‘예쁘다’, ‘멋있다’ 하기는 너무 입에 발린 말 같지만,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고 하면 상대적으로 아주 좋은 인사가 됐던 거지요.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40+, 50+의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늙고, 노쇠한 모습이었습니다. 우선 옷차림부터가 달랐습니다. 백화점에는 '부인복 코너'라는 이름으로 이미 40+를 위한 옷을 따로 팔았고, 청춘 때와 달라진 체형을 위해 '마담 사이즈'라는 미화된 말을 쓰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지금은 어떤가요? 엄마와 딸이, 아빠와 아들이 같은 브랜드의 옷을 사서 입고, 한 옷을 같이 입기도 합니다. 요즘은 나이 들어도 체형이 그리 달라지지 않을뿐더러 패션 취향도 여전히 젊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나이 들어도 건강을 챙기고 자기 관리를 하는 분들이 많아졌다는 거지요. 이렇게 건강을 챙기고 자기 관리와 운동을 꾸준히 하면 아마 80대, 90대가 되어도 지금의 체형과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1970-1980년대에는 나이 들어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동요 중에도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꼬부랑 넘어가고 있네'라는 가사의 '꼬부랑 할머니'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당연히 허리를 굽히고 지팡이를 짚은 '꼬부랑 할머니', '꼬부랑 할아버지'를 그렸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쩌면 '꼬부랑 할머니', '꼬부랑 할아버지'라는 말의 뜻도 잘 모를 거예요.     


 실제 요즘은 나이보다 젊고 건강하게 살면서 중년들의 롤모델이 되는 시니어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 가운데 대표적인 한 분이 바로 가천대 이길여 총장이십니다. 이길여 총장은 2023년 봄, 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열린 축제를 즐기는 학생들 앞에서 연설을 하던 중, 91세의 나이에 초대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을 춰서, 그 모습이 숏폼 영상으로 제작돼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주치의들조차 90대의 이길여 총장에게 4,50대 같다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1920년생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2024년 현재 104세의 나이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활발한 강연과 집필활동을 해서 백세인의 표상으로 꼽히십니다.      


 송해 선생님도 2022년에 95세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최고령 MC로 전국 각 지역을 돌면서 ‘전국 노래자랑’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셨지요.      


 1944년생인 임종소 님은 2023 WNC(World Natural Championship) 시그니처 보디피트니스대회 시니어부(50세 이상) 비키니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른바 '몸짱 할머니'이세요. 그 후 시니어 모델로도 활동해서 시니어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 놓으셨습니다.     


 내친김에 시니어모델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요즘은 패션뿐 아니라 각 분야에서 시니어모델들의 활동이 참 활발하지요. 1980년대만 해도 모델의 나이가 30세만 넘으면 모델로 잘 쓰지 않아서 모델 일을 그만둬야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각 대학들이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시니어모델 학과를 개설할 정도이고, 시니어모델을 꿈꾸는 많은 시니어들이 백발을 휘날리면서,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도 하이힐을 신고 모델처럼 워킹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분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더 근사하게 워킹을 하십니다. 예전의 시각으로 보면 어떻게 이분들을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할 수 있겠어요?     


 게다가 소위 이런 유명인사들만 나이보다 젊고 활기차게, 꼿꼿하게 사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생체 나이보다 족히 열 살은 어려 보이고 건강하게 활기차게 사는 분들을 쉽게 많이 볼 수 있습니다. 1980년대만 해도 나이 60이 되면 환갑잔치를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환갑잔치 안 하는 건 당연하고, 칠순 생일을 맞이해도 ‘뭐 대단한 나이라고 잔치를 하느냐’고 하면서, 잔치보다 여행을 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만큼 나이에 대한 생각, 노인에 대한 이미지가 예전에 비하면 크게 달라졌습니다. 요즘은 나이보다 젊어 보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고, 나이 들어 자세가 좋지 않으면, 그만큼 자기 관리를 안 하고, 못한 게 되는 시대입니다. 그야말로 생물학적 나이 곱하기 0.7을 한 나이가, 내가 마음속으로만 꿈꾸는 나이가 아니라, 실제 우리가 느끼고 생활하는 나이가 되고 있다고나 할까요.      


 그러니 ‘나이 보다 젊어 보여요’라는 말은 예전에는 듣기 좋은 인사말이었지만, 요즘은 ‘나이 보다 젊어 보여요’ 그러면, ‘당연한 말을 왜 하는 거지?’ 이렇게 되는 겁니다. 게다가 요즘은 거의 생체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사는데, 새삼 그런 식으로라도 나이 얘기를 꺼내면 불편한 분위기가 되기도 하는 거지요. 말하자면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나이보다 젊게 산다는 건 나이를 잊은 채 무조건 젊음을 흉내 내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주책없어 보일 때가 많습니다. 나이보다 젊게 산다는 건 현재의 내 생체 나이에 맞춰 건강하고 활기차게 사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히 생체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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