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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럽 Sep 17. 2024

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9. 노후준비

 얼마 전 혼자 사는 선배가 이제 우리도 노후준비를 잘해야 한다며, 자신은 나이 들었을 때 시니어타운 같은 데서 살려고 계획 중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곳에 들어가면 식사 같은 기본 생활에 대한 지원은 물론, 응급의료시스템도 갖춰져 있고, 잘 짜인 프로그램으로 일상을 다 챙겨줄 거라는 기대감이 대단했습니다. 

     

 하긴 각종 가전제품이 아무리 발달해도 나이 들면 식사준비를 비롯해서 집안 살림하는 게 귀찮아지고 버겁다고 합니다. 실제 벌써 4,50대만 되어도 식사 준비하고 집안일하는 게 귀찮고 싫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혼자 사시는 분들은 더욱 그러시지요. “누가 나 대신 밥해주고 청소해 주고 그러면 좋겠다.” 이러면서 밥은 잘 안 먹고 비타민이나 기능성 식품은 꼬박꼬박 그야말로 밥먹듯이 드시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방식이 편하게 사는 삶의 방식일 수는 있지만, 정작 나 스스로  나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게 되곤 합니다. 그런 경우 대개 몸만 편하다고 느끼는 거지, 나를 편하게 만든 그 시간을 더 활기차고 유용하게 쓰지 않기 때문에, 자극 없는 삶을 살게 되기 쉽습니다. 쉽게 말해 무료한 삶이 되기 쉬운 겁니다.       


 단백질 음료만 해도 그렇습니다. 요즘은 좀 더 쉽고 빠르게 근육을 키우고 싶어서 단백질 음료를 많이 드시지요. 하지만 맛이 없으니까 좀 더 수월하게 먹을 수 있도록 딸기맛, 쵸코맛 등이 나게 만들어 팔고 있는데, 아마 드셔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마지막에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린 계란 프라이처럼 구미가 확 당기진 않잖아요? 모름지기 단백질 식품이라고 하면 불고기, 갈비, 스테이크, 생선 구이, 생선조림, 계란찜, 치즈 등등 우리가 기억하는 맛있고 훌륭한 음식들부터 떠올리게 되는데요. 그런 것들을 다 제쳐놓고 단지 편하다는 이유로 단백질 음료를 먹기에는 왠지 인생이 슬퍼집니다. 그래도 젊었을 때는 각종 관심거리가 많아서 그나마 그런 슬픔이 덜할 수 있지만, 나이 들수록 먹는 즐거움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기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한다면 삶의 만족도가 많이 떨어지게 됩니다 


 실제 1969년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가 최초로 달을 밟은 이후, 과학자들은 앞으로 사람들이 우주식량을 넘어, 에너지와 영양소가 모두 들어있는 알약을, 식사처럼 간편하게 먹는 시대가 될 거라는 전망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5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인류는 여전히 음식을 선호하고, 더 음식의 맛을 따지는 시대를 살고 있지요. 그 이유가 뭘까요? 물론 현재의 과학기술로도 그런 ‘알약 식사시대’의 구현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인간의 기본 욕망 중 가장 큰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또 나 자신을 위한 식사 준비를 즐거워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기뻐하는 것은, 우리 몸에 각인돼 있는 생물학적 본능이거든요. 식사준비와 설거지에서 자유로워진 삶이 처음에는 편하고 좋다고 느껴져도, 계속되면 일상을 무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을 하기 위해 장을 봐와서 음식을 만들고, 맛있게 먹은 후 치우기까지 그 일련의 과정은 생각하기에 따라 상당히 일상을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던 때를 기억해 보세요. 그러니 내가 직접 식사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편안할 거라고 생각하는 일상이, 행복하기까지 할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는 겁니다.      


 더욱이 그 선배는 나이 들어 낯선 환경에서 삶을 시작할 때 염두에 둬야 할 것을 간과한 듯했습니다. 아무리 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어도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그 프로그램의 가치가 있는 건데요. 일단 나이 들면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지요. 경도인지장애가 온 분들은 주거 환경이 바뀌면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질 정도라고도 하잖아요. 게다가 프로그램은 같이 하는 사람들이 참 중요한데, 친구 사귀기도 젊었을 때 같지 않습니다. 실제 프로그램이 많아도 스스로 용기를 내지 못해서, 또는 다른 분들과 잘 어울려 지내지 못해서, 심지어 누구 보기 싫어서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신다고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시니어타운에 사는 분들도 고령화가 되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수영을 비롯해서 신체활동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분들은 점점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유럽의 경우, 예전에는 우리처럼 노인들끼리 모여 사는 시니어타운 형태의 주거방식을 선호했지만, 요즘은 자기가 살던 동네, 자기가 살던 집에서 다양한 세대의 동네주민들과 함께 늙어가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유럽 각국의 정부도 노인들이 자기가 살던 동네, 자기 집에서 늙어갈 수 있도록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주거비용이 비싼 호텔식 시니어타운이 많이 건설되고 있는데요. 나이 들어 시니어타운에 들어가서 친구도 잘 사귀고, 잘 어울릴 수 있는 이웃을 쉽게 만들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요? 부부는 그나마 둘이니까 같이 활동할 수 있어서 외로움이 덜하겠지만, 혼자이면 오히려 낯선 곳에서 더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지자체들이 내가 살던 집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노인맞춤 돌봄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아마 저도 시니어 프로그램을 하지 않았으면 관심을 두지 않아서 우리나라에 이런 서비스가 있는 줄 몰랐을 텐데요. 부모님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지자체에서 노년층을 위해 시행하는 각종 서비스와 여러 가지 사업들을 미리 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노후준비라는 거창한 타이틀 아래, 노년기를 유난히 특별한 생애주기라고 생각하거나, 노후준비를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2010년대 초기만 해도 '노후준비'하면, 경제적인 준비를 우선으로 생각하곤 했었습니다. 그때의 돈 가치로 은퇴 전에 최소 6억 원 이상을 마련해 놔야 노후준비를 제대로 하는 거란 얘기도 하곤 했었지요. 그런데 몇 년 후 그건 증권사나 보험사의 ‘공포 마케팅’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지금은 심지어 은퇴 후 줄어든 수입에 맞춰서 규모 있게 사는 습관을 경제적인 노후준비의 기본으로 꼽기도 합니다.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가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를 코앞에 둔 지금, 그 어떤 것보다도 정말 중요한 노후 준비는 ‘내 손으로 밥 먹을 수 있고, 내 두 발로 화장실을 갈 수 있는 것’, 즉 기초 생활이 가능하도록 건강관리를 잘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살던 집에서 사는 날까지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면서 밥 챙겨 먹고 집안일하다가, 연명치료 없이 깨끗하게 생을 마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러는 건 타고난 복이 아니라 나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거예요. 나를 정말로 위하는 건, 스스로 밥 하지 않아도 되고 설거지 안 해도 되고 빨래하지 않아도 되는 이런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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