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흥 많은 몸치
요즘은 남녀노소 누구나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기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50+들, 특히 정년퇴직한 후 새로운 취미활동을 하시는 분들 가운데는 취미활동도 일을 할 때와 같은 시각으로 접근하시는 분들이 적잖이 계세요. 시작할 때부터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빨리 이루려고 노력하다 못해 조바심을 내는 거지요. 그래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자신보다 먼저 그 취미활동을 오래 해온 분들처럼 잘하고 싶은 마음만 앞서서, 그만큼 잘 따라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화가 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남보다 못하는 게 자꾸 마음에 걸리고 실망스러워서 그 취미활동을 계속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한마디로 취미활동도 실력에만 중점을 두다 보니 제대로 즐기지를 못하는 겁니다. 물론 취미활동도 열심히 해서 빨리 눈에 띄는 좋은 성과를 얻으면 나쁠 리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흔히 가장 잘 된 경우로 꼽는 ‘취미를 업(業)으로 삼게 된 분’들도, 그 일을 취미로 할 때와 직업으로 할 때의 마음 자세와 느낌은 많이 다르다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취미활동은 취미활동이고, 일은 일입니다. 더구나 나이 들어 이제 좀 편한 마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싶어서 택한 취미활동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아마도 베이비부머를 비롯해서 50+들은 어렸을 때부터 치열한 경쟁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취미라 해도 적당히 즐길 줄을 잘 몰라서 그러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취미활동도 일처럼 접근해서, 일처럼 수행하고, 일처럼 결과가 좋아야 만족하는 거지요. 더욱이 돈과 시간을 들여서 시작한 거라면 소위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선다고나 할까요. 말하자면 취미활동의 매력에 빠지기도 전에 ‘잘하고 싶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앞서는 겁니다.
그런데 짐작하셨겠지만 그러면 그건 이미 취미가 아닙니다. 취미활동이 취미활동으로서의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취미활동을 하면서도 남과 비교하면서, 남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서면, 자꾸 스스로를 닦달하게 되고, 또 좌절도 하게 되고, 그리고 그런 게 반복이 되다 보면, 취미활동의 가장 기본인 흥미조차 사라지게 되거든요. 당연한 얘기지만, 취미활동은 일과 달리 결과보다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아니, 결과는 별로 생각지 않아야 진짜 취미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오히려 결과가 좋지 않아도 하는 과정이 즐겁고 신이 나서 계속하게 되는 게 바로 취미활동이고, 그렇게 즐겁고 신이 나서 계속하다 보니, 결과적으로도 실력이 쌓이고 발전하게 되는 게 바른 순서입니다.
가령 등산이 취미라고 하는 분들 가운데, 국내 어떤 유명 산들의 정상을 밟았는지 그 개수가 더 중요하고, 산에 오를 때도 남보다 더 빨리 오르는 걸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분들이 계시지요. 이런 분들은 산의 정상을 밟지 못하고 산을 내려온다든지, 또 어느 날 남보다 뒤처져서 산에 오르게 되면, 두고두고 엄청 스트레스가 될 텐데요. 산을 정말 좋아하는 분들한테는 몇 개의 유명한 산의 정상을 밟았는지, 또 얼마나 빨리 올라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산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어떤 꽃과 풀이 있는지, 그 속에서 내가 지금 얼마나 기분이 좋고 평화로움을 느끼는지가 더 중요하고 좋으니까요. 그래서 꼭 산의 정상을 밟지 않고 산 중턱까지만 올랐다가 내려와도, 아니면 둘레길만 걸어도 상당히 만족스러워합니다.
또 여러 가지 취미활동을 마치 빡빡하게 돌아가는 일정처럼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 시간대별로 짜서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요. 그러면 말만 취미활동이지, 취미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내 마음은 일과 별 다를 바 없는 긴장의 연속일 수 있습니다. 사실 취미활동 하나도 제대로 하려면 쉽지 않잖아요. 우선 건강이 허락해야 하고, 시간, 노력, 열정 등이 필요한데, 취미활동을 그렇게 여러 개 하다 보면 잘하기는커녕 스트레스가 쌓이기 쉽습니다. 일상에 즐거움을 주고 생활에 활력소가 돼야 하는 취미활동을 마치 일정처럼 추구하다 보니, 이름만 취미활동이지 그저 소화해야만 하는 또 다른 일정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벨리댄스를 취미활동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즐기는 마음과는 다르게 워낙 몸치여서 그런지, 시작한 지는 꽤 됐지만 춤 실력이 별로 늘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른 회원들처럼 예쁘고 멋있게 춤을 잘 추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지금처럼 계속 취미활동으로 즐기질 못할 겁니다. 춤을 잘 추는 회원들을 보면 부럽고 질투가 나기보다 오히려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계속 즐겁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몸치라는 열등감보다 아름다운 춤을 배우고 즐긴다는 만족감이 더 크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실제 춤을 추는 즐거움이 훨씬 크니까, 남보다 잘 추지 못한다는 열등감도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논어에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취미활동은 일상에서 오는 긴장을 풀고 일상에 활기를 얻기 위해 하는 건데, 취미활동을 할 때마다 긴장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취미활동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게 되겠지요. 그러니 비록 춤을 잘 추지 못해도. 음악을 들으면 저절로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이게 되고 즐겁고 좋으니까, 춤을 취미활동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렇게 계속 춤을 추다 보면 언젠가 나도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춤을 출 수 있을 거라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도 해봅니다.
오늘도 틈틈이 거울을 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벨리 동작을 연습했습니다. 물론 머리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동작과 내 몸이 그려내는 동작에는 아직도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를 보고 딸이 ‘흥 많은 몸치’라고 놀립니다. 하지만 저는 몸치라도 그냥 몸치가 아니라 흥이 많은 몸치니까, 이렇게 계속 취미활동으로 춤을 즐길 수 있는 거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