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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럽 Sep 17. 2024

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8. 행복한 제2의 인생

 지금 우리 사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가장 큰 인구집단은 베이비붐세대(1955년-1974년생)입니다. 이분들은 인구 규모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다른 세대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산업화시대를 살아오면서 성공과 소유를 인생의 목표로 삼아 앞만 보고 달려온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베이비 부머들은 제2의 인생을 설계할 때도, ‘이제는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말은 은퇴 전까지의 인생이 바쁘고 힘겨웠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우선으로 삼고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것, 즐길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자꾸 내몬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잠시도 가만있지 않으려는 거지요. 가만있으면 왠지 '루저(looser)'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조바심이 나고, '이렇게 가만있어도 되나?' 스스로에게 자꾸 되묻게 된다는 거예요. 특히 어려서부터 ‘바지런한 게 미덕’이라고 배우고 자란 분들은 멍하니 시간을 보내면 시간을 낭비했다는 죄책감마저 느끼곤 하십니다. 


 아마 지금 50+ 중에는 학창 시절에 교실 칠판 위에 '시간은 금이다'라는 급훈이 붙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그런데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 행복하지, 그렇지 않으면 금 같은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히게 되고, 그 강박은 마음에 무거운 짐이 될 수 있습니다. '모모'라는 소설에서도 행복했던 마을 사람들이 시간을 아끼고 저축하면 나중에 이자까지 붙은 그 시간을 잘 쓸 수 있다는 ‘시간 도둑’에게 속아, 시간을 저축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행복을 잃어버리는 내용이 나오지요. 시간은 현재만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주인이 돼서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은 현재뿐이니까요. 과거의 시간은 이미 내 손을 떠났고, 미래의 시간은 아직 내 소관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많은 50+들이 내 소관이 아닌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면서, 하고 싶은 일, 즐길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자꾸 채찍질을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50+세대는 스스로를 칭찬하기보다, 좋은 말로 해서 반성이고 격려이지, 스스로를 다그치고 채찍질하는 데 익숙한데요. 지금까지와 다른 제2의 인생, 지금보다 행복한 제2의 인생을 꿈꾸고 계획하면서도, 버릇처럼 시간을 절약해 가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걸 최선으로 여기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 이 같은 '난센스'가 없습니다. 실제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은 그냥 신나서 재미있게 노는 거지, ‘나는 이제부터 재미있게 놀아야겠다!’ 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작정해서 놀지 않잖아요? 아마 그렇게 딱딱하게 틀에 잡혀서 놀기 시작하면 노는 느낌도 제대로 나지 않을 걸요? 제2의 인생을 멋있고 행복하게 보내려고 계획하는 분들이 이것저것 해보다 대부분 쉽게 중단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놀다 보니까 재밌어서 계속 놀게 되는 건데, 이런 분들은 의식적으로 즐거움과 재미를 찾으려고 하다 보니까 오히려 재미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목표인 재미를 찾지 못하면 목표 달성을 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되고, 그로 인해 관심마저 잃게 돼서 더 이상 계속하기가 어려워지는 거지요.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도 그런 분들 때문에 생겨난 말입니다. 정년퇴직 후 나이 들어 느긋하게 시간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필요한데, 내가 진정 뭘 좋아하는지, 또 뭘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 채, 이젠 시간 많다고 하면서 마치 출근할 때처럼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겉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들을 모두 다 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렇게 어쩌면 현역으로 일할 때보다 더 바쁘게 많은 활동을 하면서, 또다시 버거운 삶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니까, 하고 싶은 것을 한다 해도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기는커녕, 힘들어서 과로사를 할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행복은 성공이나 소유처럼 상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아파트가 몇십 채 되어도 정작 내가 집으로 누리는 공간은 그리 크지 않지요. 심지어 내 집에 있는 자녀 방에도 내 맘대로 잘 들어가지 못하잖아요. 행복한 제2의 인생을 생각할 때는 마음에 여유부터 채우는 게 우선입니다. 그러니 정년퇴직 후 제2의 인생을 계획할 때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세요. 그저 하루 중 한 시간이든 30분이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있으면 됩니다. 많은 하루 일과 중 딱 하나라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되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학창 시절 비록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점심시간이었어도, 그 점심시간 때문에 학교 가는 게 즐거웠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 어디가 예뻐?” 하고 물었을 때 듣는 대답도 그렇습니다. 보통 그럴 때 하는 대답은 두 가지 유형인데요. “다 예뻐” 아니면 “넌 눈이 정말 예뻐”이런 식이지요. 이 두 가지 대답 가운데 어떤 유형의 대답이 듣는 사람에게 더 만족스러움을 줄까요? ‘다 예쁘다’는 말은 물론 듣기 좋은 말이긴 하지만, 왠지 뭔가 실체가 느껴지진 않습니다. 심지어 성의 있는 대답으로도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반면에 “넌 눈이 정말 예뻐” 이러면, 그다음부터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의 눈을 살펴보게 되지요. 연인이 콕 집어서 예쁘다고 한 눈이니까요.


 제2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하면서 제2의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려고 진을 빼는 건, 결코 효율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하루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을 찾아보세요. 그래도 못 찾겠다면 만들어 보세요. 또 하루 일과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세요. 그것도 못 찾겠다면 만들어 보세요. '창의적인 나'는 그런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대개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쥐어짜서 생각해 내기보다 그런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곤 하거든요. 그렇게 좋아하는 시간에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그것 때문에 하루하루가 즐거워지고, 그것 때문에 내일이 기다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나날들이 쌓여서 제2의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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