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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럽 Oct 02. 2024

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36. 진짜 부자

 프랑스에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우리도 어렸을 때 그림책으로 많이 읽은 얘기예요.     

 

 소박하게 살던 나무꾼 부부에게 천사가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고민하던 부부는 배가 고프니까 우선 밥을 먹고 소원을 결정하기로 하지요. 그러다 아내가 무심코 소시지를 구워 먹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아뿔싸, 그게 첫 번째 소원으로 이뤄집니다. 참 허망하게 소원 한 가지를 써버리게 되니까 남편이 화가 나서, 홧김에 그 소시지가 아내 코에 딱 붙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을 해버렸는데, 아이코 저런, 정말 또 그렇게 두 번째 소원이 이뤄집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 남은 마지막 소원은 아내 코에서 소시지를 떼어내는 데 쓰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얘기를 읽고 어떤 교훈을 얻으셨나요? 전 어렸을 때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소원을 말할 때는 정말 주의해야겠구나’라는 우습기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만약 이처럼 어느 날 내 앞에 천사가 나타나서 “딱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라고 한다면 무슨 소원을 말씀하시겠어요? 아마도 딱히 건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대개 로또 1등이나 연금복권 1등, 아파트 청약 당첨 등,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신 분들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이른바 횡재(橫材)를 바라는 거지요. 사전에 횡재(橫材)는 ‘뜻밖에 재물을 얻음. 또는 그 재물’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횡재(橫材)는 내가 열심히 일궈낸 부(富)가 아니라 하루아침에 소위 ‘뚝 떨어지는’ 부(富)를 말합니다.      


 그런데 발음은 횡재(橫材)와 같지만 '뜻밖에 재난을 당하다'라는 뜻의 '횡재(橫災)'라는 말도 있습니다. '뜻밖에'라는 뜻의 '횡'자는 같고 ‘재물 재(材)’자가 아니라 '재앙 재(災)'자를 썼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뜻밖에 얻는 재물이 나의 관리 능력 밖에 있으면, 얼마든지 나에게 해가 될 수 있다고 여기고, 뜻밖에 얻는 재물인 횡재(橫材)를 횡재(橫災)라고 경계했습니다. 말하자면 부(富)를 원하더라도, 부(富)에 대한 인식을 바로 갖추도록 했던 거지요.     


 실제 부(富)는 내가 관리할 수 있을 때 축복이고, 내가 관리하지 못할 때는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부(富)를 잘 관리한다는 건, 돈을 무한정 계속 불리는 게 아닙니다. 돈은 돌고 돌아야 하기 때문에 ‘돈’이고, ‘부자는 돌고 도는 돈이 많이 머물다 가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요. 부(富)를 잘 관리하는 것은 돈이 막힘없이 부족한 사람에게까지 잘 돌게 하는 능력입니다. 말하자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고나 할까요. 높은 사회적 신분이나 부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나가야 하는 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전에 우리나라 경주 최 씨 부자처럼요.


 실제 작은 거라도 혼자 먹지 않고 사람들과 나눠 먹고, 또 작은 거라도 혼자 쓰지 않고 나눠 쓰고, 어딜 갔다 오면 꼭 선물을 챙겨주는 분들이 계시지요.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참 감사하고 복이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그런데 간혹 그렇게 베풀며 사는 사람들에 대해 오해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돈이 많으니까 그럴 수 있겠지’, ‘여유가 있으니까 베풀 수 있는 거겠지’ 하고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글쎄요, 3초만 생각해 봐도 아실 거예요. 돈이 많다고 해서, 또 물질적인 여유가 생겼다고 해서 누구나 다 베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내 형편이 좋아서, 여유가 생겨서 베푸는 게 아니라, 베푸니까 잘 된다는 걸, 세상을 좀 살아보면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진짜 부자’인 거예요. 나는 어떤 부자인지 한번 살펴보시지요. 마음이 가난하면 아무리 ‘통장 부자’, ‘부동산 부자’, ‘주식 부자’여도 행복하지 못한 가짜 부자고, 내가 가진 것을 주변과 나누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진짜 부자입니다.  아울러 ‘부자가 된 다음에 나눔을 실천해야지’라는 생각은 ‘나눔을 실천하고 싶지 않다’는 말과 같은 색깔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부에 대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지금 주변과 나눌 수 있는 ‘마음 부자’가 아닌 사람은 계속 더 돈을 모아야 부자라고 생각하거든요.

     

 한편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야’라는 말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스스로를 위안하고 희망을 품게 하는 말이지만, 언젠가는 올 수 있는 좋은 날을 위해 현재를 희생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이 말보다 ‘지금 이 순간이 좋다’라는 말이 더 좋습니다. 만족감과 행복감은 나중으로 유예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느껴야 하는 거니까요. 그러니 진짜 부자인 ‘마음 부자’가 돼서 주변과 서로 나누며 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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