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똥입
예전에는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할 때, 지인들에게 많이 물어봤습니다. 특히 데이트 약속을 잡은 친구들이 많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런 정보에 훤한 분들은 주변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TV 프로그램들이 맛집이나 명소들을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소개된 곳들이 맛집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요. 어쩌다 한번 TV에 소개돼도 본의 아니게 홍보효과가 크다 보니, 홍보 차원에서 TV에 나오기 위해 애쓰기도 하고, ‘TV에 나온 집’이라는 걸 증명하는 사진이나 기사가 아주 대단한 홍보 장치가 되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그런 맛집 소개 프로그램들이 방송국마다 많아지면서 ‘TV에 나온 집’들이 너무 흔해졌고, 심지어 한 골목에 있는 음식점들이 죄 ‘TV에 나온 집’이라는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적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뭐 먹을까?’, ‘어디 갈까?’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인터넷 검색, 모바일 검색이지요. 지자체에서 올린 공식 홍보물은 물론이고, 요즘은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 분들이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직접 경험하고 올린 내용을 많이 참고하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TV에 소개되거나 인터넷 혹은 모바일 검색에서 상위에 랭크된 곳들 중에, 잔뜩 기대하고 갔다가 기대에 못 미쳐 실망하고 돌아온 경험이 있지 않으세요? TV에 소개될 때는 좋은 재료도 엄청 많이 들어가고 깨끗하고 맛있어 보였는데, 직접 가서 먹어 보니까 그에 미치지 못하다고 느낀 경우 말이에요. 또 요즘은 대가를 받고 홍보성 글로 위장한 리뷰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인터넷시대인 요즘도 ‘어디가 좋다’는 정보를 접하면, 친한 지인들한테 “거기 좋다던데, 가봤어?”, “가보니까 어때?”하고 한 번 더 확인하게 되고, 가봤다는 지인이 정말 좋다고 하면, 그제야 ‘정말로 가봐야 할 곳’ 0순위로 꼽게 됩니다.
최근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어디가 좋다, 거기 어떤 음식이 맛있더라’ 하는 다른 친구의 말을 믿고. 똑같은 곳에 가서 똑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그냥 ‘별로였다’고 합니다. 그 후 그 친구를 만나서, “세상에 믿을 인간 없네, 네가 저번에 좋다고 한 데 가봤거든. 근데 맛있긴 뭐가 맛있냐?” 하고 따졌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왜? 난 맛있기만 하던데! 맛있지 않았어?” 하면서 맛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맛없다고 느꼈던 친구가 급기야 “아이고, 너 한 사흘 굶고 거기 갔냐?” 그랬답니다. 결국 이 일은 그 집 음식이 맛있다고 했던 친구가 “그래그래, 내 입이 똥입인가 보다”라고 스스로의 입맛 수준을 격하시키는 걸로 일단락됐습니다.
똑같은 음식인데 누군 좋고, 누군 별로고,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요? 정말 한 친구가 가진 입맛의 품격이 ‘똥입’ 수준일까요? 실제 소문난 맛집들은 그동안 수많은 노력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복합적인 맛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평균 입맛을 공략하기 때문에 ‘호불호(好不好)’가 그리 갈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두 친구 사이의 호불호(好不好)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물론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고 취향이 달라서, 음식이라는 게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짜다, 시다, 달다, 쓰다, 맵다, 이런 기본적인 오미(五味)의 기준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잖아요. 게다가 아름다움과 좋다는 감정은 어차피 주관적인 거라서, 똑같은 현상과 사물도 내가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느냐에 따라, 받게 되는 느낌이 다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음식점의 음식이 좋다고 느낀 친구는 그날따라 기분이 좋아서 뭘 먹어도 좋게 느낄 만한 상황이었고, 그 음식점의 음식이 별로라고 느낀 친구는 입맛이 좀 까탈스러운 데다, 그날따라 기분도 그리 썩 좋지 않았던 상황이었던 게 아닐까 하는 거지요. 어쩌면 두 친구 다 맛에 대해선 괜찮다고 느꼈다 해도, 기분이 좋았던 친구는 가격과 모든 상황까지 좋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반면에 ‘별로’라로 느낀 친구는 이 정도 맛에 이 가격은 아니라고 평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 아시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간 곳이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은 음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신혼 때 살이 찌는 분들이 많습니다. 엄마보다 음식 솜씨가 부족한 아내가 서툴게 해 준 음식이라고 해도, 서로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눈길로 마주 보고 앉아서 함께 먹는데, 뭔들 맛이 없겠어요? 그러니 먹으면 먹는 대로 살이 찌는 거지요.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눈치 있는 남성은 이런 야무진 말도 한다더군요. ‘엄마가 해다 주신 음식을 아내와 함께 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그러니 한 친구는 별로 맛없다고 느꼈지만, 자신은 맛있다고 한 자칭 ‘똥입’ 친구는, 맛없는 것도 맛있다고 느낄 만큼 객관적인 입맛이 아주 형편없는 게 아니라, 긍정적이고 사랑이 가득한 마음이 만들어낸 특별한 입맛을 가졌다고 해석해도 되겠습니다. 실제 우리의 오감은 마음의 작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도 내가 어떻게 보고, 또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긍정적이고 사랑이 가득한 '똥입'같은 마음으로, 이 세상에 '천국'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천사처럼 행복하게 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