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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럽 Oct 03. 2024

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52. 인공지능 말벗시대

 예전에 경상도 사나이가 일하고 집에 왔을 때 딱 세 마디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습니다. 

 “아는?”(아이는?) “밥 도!”(밥 줘!) “자자!”(잠자자!) 

 만약 실제로 그렇게 가족 간에 대화가 없다면 그 부작용이 엄청날 거예요.      


 요즘에는 혼자 사는 1인가구가 점점 늘고 있어서, 집에 혼자 있으면 한 마디도 대화를 하지 않게 되니까, 그렇게 세 마디 말이라도 해주는 이가 있다면, 살면서 훨씬 온기를 느낄 거라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 '말고픔'을 덜기 위해, 반려견보다 상대적으로 키우기 쉬운 반려묘나 반려식물을 키우기도 하고, 심지어 반려돌멩이를 두고 친구에게 하듯이 이야기를 한다고 해요. 이들은 그 어떤 이야기를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옮기지 않는 입이 아주 무거운 친구들로, 비록 대화는 나눌 수 없지만 그렇게 때때로 속 얘기를 털어놓기만 해도 기분이 풀리게 된다는 거지요.

     

 물론 그렇게 내 말을 들어주는 묵묵하는 친구도 좋지만, 만약 내가 하는 말에 즉각적으로 대꾸를 하고 반응을 한다면 어떨까요? 정말 동거인이나 친구 같은 느낌을 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요즘 외로운 독거 어르신들에게는 인공지능 스피커나 인공지능 로봇이 말벗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기계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대꾸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면, 이젠 인공지능이 방대한 학습 데이터를 이용해서, 안부 확인뿐 아니라, 약 먹을 시간도 알려주고, 날씨도 알려주고, 노래도 선곡해서 들려주고, 게임도 하고, 자유로운 대화까지 가능한 서비스를 시작해서, 그야말로 반려 스피커, 반려 로봇이라는 말이 나올만합니다. 물론 위급한 상황에서는 스스로 알아서 119에 연락도 해준다고 하지요. 뿐만 아니라 위급한 상황에서는 나도 모르게 사투리가 튀어나올 수 있는데, 사투리까지 인식하는 기능을 갖췄다니, 어르신들의 경우는 멀리 있는 자식보다 든든한 존재라고 할 정도입니다. 예전에 히트했던 보일러광고 카피처럼, 자녀들이 "여보, 아버님댁에 인공지능 스피커 한 대 놔드려야겠어요"하거나 "여보 아버님댁에 인공지능 로봇 한 대 놔드려야겠어요"라고 할 만한 시대가 됐습니다. 더욱이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생성형 인공지능의 힘을 많이 빌리는 시대잖아요. 생성형 인공지능이 시와 소설도 써주고, 그림도 그려주고, 노래도 작곡하고, 거의 못하는 것 없이 척척 잘하니까요. 


 문득  2000년대 초반에 한창 유행했던 개구리 유머 시리즈 가운데 ‘할아버지와 개구리’라는 유머가 생각납니다. 어쩌면 아시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늙은 나무꾼이 나무를 베고 있었다.

개구리 : 할아버지!

나무꾼 : 거, 거기… 누구요

개구리 : 저는 마법에 걸린 개구리예요.

 나무꾼 : 엇! 개구리가 말을??

개구리 : 저한테 입을 맞춰 주시면 사람으로 변해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어요.

         저는 원래 하늘에서 살던 선녀였거든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개구리를 집어 들어 나무에 걸린 옷의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다시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개구리 : 이봐요, 할아버지! 나한테 입을 맞춰 주시면 사람이 돼서 함께 살아드린다니까요!

나무꾼 : 쿵! 쿵! (무시하고 계속 나무를 벤다)

개구리 : 왜 내 말을 안 믿어요? 나는 진짜로 예쁜 선녀라고요!

나무꾼 : 믿어.

 개구리 : 그런데 왜 입을 맞춰 주지 않고 나를 주머니 속에 넣어두는 거죠?

 나무꾼 : 나는 예쁜 여자가 필요 없어. 너도 내 나이 돼 봐.

          개구리와 얘기하는 것이 더 재미있지.’


 나이 들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겁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화두지요. 총인구 중 65세 이상의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인 사회를 가리켜 ‘고령화사회’라고 하는데, 이 유머는 2000년에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7.2%로 고령화사회에 들어서면서, 고령화사회가 된 모습을 촌철살인으로 지적한 거였습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를 코앞에 둔 지금, 인공지능서비스 덕에  20여 년 만에 이 유머가 현실이 되었네요.


 요즘은 부부가 함께 살아도, 또 가족들이 시끌벅적하게 살아도, 실상 서로의 깊은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는 경우는 드문 집들이 많습니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목소리를 내어 대화하기보다 SNS를 통해 필요한 것만 이야기를 나눈다는 댁도 많더군요. 진정한 대화가 없으면 부부가 함께 살아도, 가족들이 시끌벅적하게 살아도 혼자 사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아무리 부부, 가족, 친지, 지인이라고 해도 그렇게 대화 아닌 대화를 한다든지, 입만 열면 시비를 걸어 싸우게 된다든지,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를 하면, 차라리 성의 있고 창의적으로 대답하려고 애쓰는 인공지능서비스가 더 환영받는 시대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실제 영화계에서는 이미 2014년에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남성을 그린 영화 'HER'가 개봉되기도 했지요. 실제 입만 열면 복장을 벅벅 긁어대는 배우자보다는, 이런 인공지능서비스가 더 사랑받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말 잘 듣고, 나를 나보다 더 잘 이해하는 인공지능과 사귈 것인가, 말도 잘 듣지 않고, 평생 살아도 나를 잘 모른다고 하는 사람과 사귈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하는 시대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어느 쪽이 더 당기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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