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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럽 Oct 18. 2024

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58. 마이 스토리

 학창 시절에 역사과목 공부하기 좋아하셨나요? 예전에는 역사를 단편적인 사건 위주의 무조건 외우는 방식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아서, 외우는 것 싫어하는 학생들은 역사 과목을 참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시험도 소위 당일치기로 억지로 외워서 치를 때가 많았는데, 그렇게 시험을 치르고 나면 설령 시험 성적은 좋게 나와도, 금방 잊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더욱이 그런 식으로 우리가 외워야 할 부분 중에는 어린 마음에도 외우기조차 싫었던 당파 정쟁이나 주변 나라들의 외침의 기록이 많아서, 더욱 역사가 싫었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나이를 좀 먹고 보니 역사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흔히 ‘인류의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지요. 어차피 사람 사는 것,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변해도, 사람 사는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것도 세월이 지나면 낡고 헌 것이 되잖아요. 그래서 역사를 알아야 현재를 더 잘 살 수 있고, 미래를 잘 대비할 수 있습니다. 사자성어에도 이런 가르침을 전해주는 게 있습니다. 바로 옛 것에서 배워 새로운 것을 깨닫는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입니다.     


 역사에 대한 이런 생각은 동서양이 같습니다. 역사를 영어로는 ‘히스토리(History)’라고 하는데요. 히스토리(History)는 그리스어 ‘히스토리아(Historia)’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히스토리아(Historia)’는 ‘탐구를 통해 배우는 행위’라는 뜻을 가졌으니까, 역사의 본질을 제대로 간파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단지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에 머물지 않고, 그 역사가 주는 교훈을 통해 과거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고 만들어 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니까요. 아마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역사를 모른다면, 매번 처음처럼 시행착오를 되풀이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한 치 앞도 못 보는 인생’에서 과거의 명확한 역사는 불명확한 현재를 살아가고 미지의 미래를 향해 가는데 나침반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혹시 정말 한 치 앞이라도 볼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보신 분도 계실 텐데, 2007년에 제작된 '넥스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2분 앞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이 등장합니다. 미래를 보는 능력치고는 '약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인공은 단 2분 후의 미래만을 보는 능력으로도 상당히 큰일을 해냅니다. 핵폭탄이 터지는 걸 막았거든요. 전 그 영화를 보면서 '2분', '120초'라는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구나, 단 2분이라도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실제 우리는 아쉽게도 단 1초 앞이라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없잖아요. 그래서 종종 후회도 하게 되는데, 요즘 특히 많이 하시는 후회들이 혹시 이런 게 아닌가요? ‘그때 좀 무리해서라도 서울 강남에 집을 샀어야 하는데’, ‘그때 이런 주식을 좀 사놨어야 하는데’ 이런 후회들이요. 물론 그건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결과를 전부 다 알고 난 지금에서야 드는 후회일 뿐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지금 확실히 예측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누구나 확실히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뭘까요? 바로 죽음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로지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죽음을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것인 양, 무관심한 척 미뤄놓고 살고 있지요. 우리가 학창 시절에 열심히 외웠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제국시대 왕들도, 어쩌면 자신의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외면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죽은 뒤에 평가될 자신이 통치한 나라와 사회, 그리고 자신의 역사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살아 있을 때 좀 더 잘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이건 현대 일반인에게도 통용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역사, ‘히스토리(History)'라고 하면, 나와 크게 상관없는 일로 여기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커다란 역사 속에서는 내가 마치 영화에서 지나가는 행인 1,2 역을 맡은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더라도, 나의 인생사에서는 내가 주인공입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 유명한 인사들,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아티스트나 연예인들 모두 오히려 나의 인생사에서는 조연이고 엑스트라입니다.


 한편 ‘역사’, ‘히스토리(History)’가 성(性)과는 상관이 없는 말인데도, 그동안 인간의 삶과 역사가 남성 중심으로 기록되고 해석돼 오면서, ‘허스토리(Herstory)’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는데요. ‘허스토리(Herstory)’는 1970년에 로빈 모건이라는 작가가 ‘자매는 강하다’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하지요. 이렇게 ‘히스토리’에 ‘허스토리’도 등장한 지금, 우리는 여기에 더해 각자 나의 역사, '마이스토리(Mystory)'에 방점을 찍었으면 합니다. 실제 정말 중요한 건 각 개인의 삶의 역사잖아요. 우리 개인들의 역사가 모여 사회사를 이루고 사회사가 모여 국사, 역사를 구성하게 되는 거니까요.     


 문득 우리의 후손들은 지금 우리의 삶을 어떤 역사로 생각할지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확실한 미래인 죽음을 생각하면서, 지금의 삶을 좀 더 아름답고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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