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갈비뼈가 으스러지게 안아주세요
우리나라 고유의 인사 방식은 ‘절’이지요. 예전에는 평소에 인사할 때도 ‘절’을 했습니다. 특히 어르신들께 인사드릴 때는 당연히 ‘절’을 올려야 했습니다. 남북이산가족들이 만날 때도 소원 풀었다며 반갑고 기뻐서 부둥켜안고 손을 잡고 울다가도, 문득 생각난 듯이 “절 받으세요” 이러면, 부둥켜안고 있던 팔을 풀고 꼭 잡았던 손을 놓고선, 거리를 두고 ‘절’을 올렸습니다. 물론 어르신들도 절을 받으실 때는 ‘맞절’로 예의를 차리셨습니다. 예전에는 군에 갔던 아들이 제대해서 왔을 때도 그랬습니다. “어머니!”하는 아들의 목소리에 댓돌에서 신발을 챙겨 신을 새도 없이 그냥 안방에서 마당까지 버선발로 달려 나가, 아들을 붙잡고 끌어안아 마루에 오르고 나면, 아들은 의젓해진 모습으로 “어머니 절 받으세요.”라고 하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떨어져 앉아 ‘절’을 받았습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KBS 2 TV에서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 1을 진행하던 강호동 씨의 경우도, 뉴밀레니엄이 시작된 지 훌쩍 지난 그때까지만 해도 지역에 가서 어르신들을 만나 뵐 때나 무대에 오르면, 예의 그 큰 목소리로 시끄럽게 ‘호동이 왔다’고 재롱을 떨다가도, 곧 절 받으시라면서 절을 올렸는데요. 그 모습을 통해 우리 전통스포츠인 씨름선수 출신다운 차별성을 꾀했고, 결과적으로 더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절’을 올리고 절은 받는 것은, 반가움과 기쁨에 빠져있던 감정에서 헤어 나와 인사라는 예의를 갖추는 순간이었던 거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적 전통에 따라 ‘감정 표현’보다 ‘예의 지키기’를 더 중히 여겼던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아니, 반가우면 반가운 감정 그대로 그냥 끌어안고 쓰다듬고 손잡고 그러고 있을 일이지, 갑자기 떨어 앉아 왜 ‘절’을 하는 것일까?’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신체 접촉을 할 수 있는 가까운 사이여도, 또 그런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려고 하신 겁니다. 감정을 감정으로만 나누지 않고 예의로 마무리한 지혜라고나 할까요? 실제 현대인들은 가깝다는 이유로 서로가 서로에게 참 많은 상처를 주고받곤 하잖아요.
이렇게 훌륭한 의미를 갖고 있는 우리 전통 인사법이 있는데도 요즘은 인사할 때 절하는 분들은 거의 없지요. 예전처럼 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좌식생활 방식이 아니라 의자와 침대를 선호하는 입식생활을 하게 되니까 사실 절을 하기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웬만하면 목례와 악수를 하고, 좀 더 친근감을 표현할 때는 포옹을 더하게 되는데,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악수가 서양식 인사법, 신식 인사법으로 불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처럼 악수가 당연한 인사법이 되기까지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걸린 셈입니다.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 때는 감염의 우려 때문에 가까운 사이에서도 포옹 같은 신체 접촉형 인사방식을 꺼리게 되고, 악수도 주먹을 맞대는 ‘주먹 인사’나, 팔꿈치를 맞대는 ‘팔꿈치 인사’ 등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눈인사나 목례만으로는 반가운 감정을 해소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새로운 인사법이 필요해 의해 생겨나게 된 건데요. 그래도 그런 인사는 왠지 제대로 인사한 기분이 안 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긴 이런 인사법은 ‘절’처럼 일부러 예의를 갖추기 위래 거리를 두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감염 예방을 위해 신체 접촉을 최소화하는 인사법이니까 당연히 그런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렇다면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후 지금은 어떤 방법의 인사를 선호하시나요? 요즘처럼 갑작스러운 변화가 잦은 불확실성의 시대에서는, 인사로서의 포옹보다 건강을 위해서 더욱 포옹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포옹은 면역력을 향상하는 등 건강에 아주 좋다고 합니다. 포옹을 하면 몸에서 옥시토신 호르몬이 나오면서 기억력을 높이고, 스트레스와 불안, 혈압을 낮춰주고, 잠도 잘 오게 해서 면역력도 높여준다고 해요. 또 포옹은 혈류를 촉진시켜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기 때문에 통증을 덜어주고 혈액 순환을 개선시킨다고 합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포옹할 때는 이런 옥시토신 호르몬뿐 아니라, 소위 행복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 도파민, 엔도르핀도 분비되면서 기쁨과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가족치료 전문가인 심리학자 ‘버지니아 사티어’는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서는 하루 4번, 그럭저럭 삶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하루 8번, 풍요로운 삶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루 12번의 포옹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아마 평소에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이든, 가족이든, 심지어, 반려견이나 반려묘든 포옹을 많이 하시는 분들은 경험으로 아실 거예요. 사랑하는 대상을 꼭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금세 안정감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고 하거든요.
문득 서지오라는 가수가 2004년에 발표한 ‘하이하이하이’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특히 그 노래 후렴 가사가 재밌어서 기억하는데요. 이렇습니다. "♬ Hi Hi Hi 안아주세요.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혹시 그렇게 갈비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꼭 안아보고 안겨본 적이 있으신가요?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그럼 오늘 여태까지 포옹을 몇 번쯤 하셨나요?
다시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또는 버스 정류장에서 연인들이 꼭 부둥켜안고 있는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좋을 때다’하고 왠지 부러운 감정이 드시나요?
그럼 오늘 지금부터라도 배우자, 자식, 친구들, 심지어 반려견이나 반려묘와도 그렇게 포옹의 기회를 좀 많이 만드셔서, 갈비뼈가 으스러질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가볍게 안고 서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포옹을 좀 많이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여의치 않은 분들은 지금 당장 팔짱을 껴서 스스로라도 좀 꼭 껴안아서 토닥토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