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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식이 Dec 15. 2024

인생 여행 행복

소싯적 추억

   너는 오늘 가장 가고 싶은 곳, 고향으로 갔다. 아들이 몇일 후 친구들을 데리고, 고향집에 가고 싶다 하였다. 너는 집 점검 겸 다녀온다고 와이프로 부터 허락을 받았다. 대패 삼겹살 1인분, 막걸리 1통을 샀다. 혼자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준비 한다. 누님들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먹을 반찬은 조금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촌에는 싸늘하였다. 도시 보다 약 3-5도 정도 낮은 기온이었다. 항상 촌에 도착하면 아무도 없는 집에 보일러 부터, 오늘 저녁, 내일 아침 먹을 밥을 준비한다. 그리고 할머니 부모님 산소를 방문한다. 산소 주변을 청소하기 위하여 낮을 하나 들고 올라간다. 그리고 집으로 와서 텃밭 정리, 저녁을 먹고는 집에 누웠다.


   옛날이 그립다. 아니 생각한다. 어릴때 5 형제, 부모님으로 고향에 사는 식구는 일곱이다. 조부모님은 일찍 돌아 가셨다. 형님은 어릴때 부터 도시로 가서 공부를 하였다. 고향 집에는 방 2개 이었다. 물론 짐을 보관하는 사랑채도 있었다. 너는 누님 3분과 함께 지냈다. 아주 어릴때는 부모님과 같은 방에서 생활했지만, 국민학교 때부터 누님과 같이 생활한 것 같다. 좁은 방에, 어쩌다가 뒷집 누님이 놀려와서는 자고 가는 일이 자주 있었다. 좁은 방에 5명이 잠을 잤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때는 아무런 불평이 없었다. 다른 집에도 다 그렇게 살겠지하는 생각만 했었다. 우리 형제는 다들 3살 차이가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도시로 고등학교로 갔다. 일주일에 한번정도 혹은 2주에 한번 정도 왔다. 도시에서 자치를 했다. 너가 고등학교를 갈때 자치방에 4명의 형제들이 생활하였다. 일년 정도는 그렇게 생활하였다. 이후로는 누님들이 한분 한분 씩 결혼을 하였다.


   그 시절에 그방에서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매년 11월 중순 경에 곶감 공장으로 변하여 새벽 3시경 까지 공장이 돌아 갔었다. 소 죽을 끊여서 방을 따뜻하게 하기 때문에 방이 항상 따뜻하였다. 그래서 겨울에는 메주를 걸어 놓는 공간이 있기도 하였다. 그리고 누에를 키웠던 기억도 있다. 요즘은 가게 등에서 구입하여 먹는것이 많지만 그시절에는 먹을 것이 흔치 않았다. 겨울 저녁의 간식을 위하여 고구마를 말려서 먹었고, 곶감을 만들때 나오는 감 껍질을 말려서 먹곤했다. 이런 간식은 지금의 다른 어떤 과자 보다 맛있는 간식이었다. 건강에도 좋을 듯하다.     


   너의 4명 형제들은 싸우는 일이 없었다. 누구나 양보하였다. 그런데 4명이 의견을 나누때 대화를 다른 분들이 듣고는 놀랜다. 모두가 하는 말이 부모님을 이야기 할 때는 어머니, 아버지 라고 부르지 않고, 너거 아버지 혹은 너거 어머니라고 한다. 너거 아버지 혹은 너거 어머니라는 용어는 너의 시골에서 다른 사람 즉 형제가 아분들의 대화에서 나오는 말이다.  여하튼 너의 형제들은 싸우는 일이 없다. 서로 서로 위하는 마음이 먼저 앞선다. 부자로 사는 형제는 없지만 불쌍하게 사는 형제도 없다. 서로를 위하는 형제 우애 만은 모두들 부러워 한다. 멋지다고 자찬한다.


   고향, 한곳에 누워 행복한 소싯절의 추억을 생각해본다. 이러한 추억은 너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동시에 너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너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것을 기대한다.  



- 점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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