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인생 여행 동반자와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사랑하는 와이프와 결혼 1년 뒤 너의 후계자, 아들이 태어났다. 누구나 하는 병원에서 와이프의 고통스러운 출산을 함께 하였다. 그리고 3년 뒤, 사랑스러운 딸도 태어났다. 너는 성격 탓인지, 원래 그렇게 되어 먹었는지 특별한 감명 혹은 평소와 색다른 느낌이 없이 무덤덤하였다. 물론 일반 사람들과 비슷한 감명과 감사함은 있었지만, 그 당시의 조선 남자들의 무덤덤함, 경상도 남자의 표현 서투름은 있었다. 와이프는 병원에서 자연 분만을 하였고, 태어난 아이는 아주 완벽한 작품이었다. 건강하게 태어나 주어서 너무나 감사하였다. 와이프는 출산 요양을 1주일 단기 요양만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기쁨 마음과 와이프의 건강을 챙기는 등의 남편으로서 마음 표현을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기는 한다.
아이들은 별 탈없이 무럭무럭 자라 주었다. 네가 느끼기는 그랬다. 와이프는 다른 느낌일 것이다. 아이들의 기저귀 한번 갈아주지 않고 얘들을 키웠으니까, 무럭무럭 자랐다고 표현하는 것이 합당할지 모르겠다. 아들놈은 너무 순하게 자라 주었다. 단지 겁이 많아서 걷는 것이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늦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말은 다른 얘기들보다 많이 빨랐다. 한편 딸은 너무 많이 울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이 아침에 만나면 인사가 어제는 안 울고 잘 자는지 물어보는 게 인사였다. 물론 인사를 나누는 중에도 계속 울고 있었다. 한 번은 너무 심하여 장롱 이불 위에 올려놓고 문을 닫을 생각을 했었다. 지금 자기 이야기를 하면은 거짓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이제는 아들, 딸 둘다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모두들 자기들이 만족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모든 가족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그러나 국립 대학을 다니고 있어서 등록금 부담이 조금 덜한 것 같다. 물론 국립대를 가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바람에 흩어져 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가족 4인에 3세대가 되었다. 아니 할머니 까지 모두 5인에 4세대가 되었네.
부담되지만 조금만 참고 지내자라고 서로를 위안하면서 살고 있다.
나만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행복하다.
가진것 만큼, 사용하고, 가진것 만큼 행복하자, 조금 남으면 나누어 주자. 함께 행복 한 삶을 나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