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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원도감자 9시간전

상대 나라의 단점에 익숙해지기


어느 날 그와 함께 걷다가 어떤 사람이 담배를 들고 길에 침을 뱉는걸 정면에서 목격했다.

술집이 즐비한 곳이라 그런지 바닥에는 수십 개의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었다. 그것보다 더 더러웠던 건 몇십 명은 뱉었을법한 침자국이었다. 그는 길바닥을 보면서 침이 없는 쪽으로 걸었다.

순간 나는 너무 창피했다.


"한국은 길거리가 너무 지저분하지?" 내가 민망해하며 말하자 그가 대답했다.

"괜찮아~ 나는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길에 침을 뱉는 걸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오잉 왜?"

"그냥... 한국인만의 특별한 더러움이 있으니까."


오잉 지금 돌려서 욕하는 거야?


하지만 그의 말에는 다른 뜻이 있었다.

"대만에서는 사람들이 생리현상을 참지 않잖아. 나는 그게 대만인으로서 감자한테 너무 창피했는데 한국에도 한국만의 단점이 있으니 차라리 나아."


아! 그가 한 얘기는 내가 대만에서 제일 크게 받았던 문화충격에 관한 이야기였다.




처음 대만에 갔을 때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그와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앞에 걸어가던 아저씨가 갑자기 방귀를 빡! 하고 뀌었다. 그냥 좀 큰 소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될 정도로 큰 소리였다.

하지만 놀란 사람은 나뿐이었다.


순간 나는 이게 무슨 일이야...? 하는 표정으로 남자친구를 보았다.

그는 부끄러워하면서 말했다. "방귀.. 뀌고 싶으셨나 봐."


벼락을 맞는 것처럼 방귀를 맞은 그 상황이 너무 웃겨 웃으니 남자친구가 머쓱해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쉽게 겪을 수 없는 일을 겪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형과 누나와 함께 셋이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데 옆자리에 앉은 대학생이 정말 시원하게 트림을 했다.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놀란 토끼눈을 하니 언니와 오빠가 놀란 내 표정이 웃긴지 입을 막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웃었다.

“감자야 미안해... 근데 너 이제 점점 익숙해질 거야."

“어? 대만에선 트림 그냥 해도 돼?"

"응. 생리현상 참는 사람 별로 없어."


알고 보니 대만인들은 남녀노소 방귀나 트림을 참지 않고 표출했다. 학교, 직장, 식당, 길거리 등등 어디에서도 눈치를 보지 않았다.

언니는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는 밀폐된 공간에서 그러는 건 냄새가 나니 싫어하는 사람도 꽤 있다고 했지만 오빠는 트림을 참으면 병이 되고 몸에 안 좋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그래... 하는 건 좋지만... 굳이 저렇게 입을 벌리고 큰소리로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대만인들은 그게 자연스럽다니 그냥 그렇구나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의아해졌다. 남자친구는 그때까지 나를 만나러 한국에 10번 정도 방문했었는데, 난 한 번도 그가 트림을 하거나 방귀를 뀌는 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그러지 않는 게 에티켓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궁금했던 나는 질문을 간직하고 있다가 남자친구를 만났을 때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내가 어릴 때 영국에 가기 전, 엄마가 나와 누나를 불러 앉혀서 말씀하셨어. 남 앞에서 큰소리로 트림하는 것은 '영국식 예절'에 어긋나니 영국에선 절대 그러지 말라고. 그리고 나는 영국에 가서야 깨달았어. 그건 영국식 매너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예절이라는 걸."


그리고 그는 그 영국의 초등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가 방귀를 뀌고 친구들이 키득거리니 그 친구가 얼굴이 빨개지는걸 보고서는

남들 앞에서 방귀를 뀌는 것도 창피한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대만으로 돌아온 뒤로도 생리현상을 참았던 것이었다.




한 번은 남자친구의 친구를 만나서 셋이 밥을 먹었는데 식사 메뉴가 뜨거운 국물요리였다. 먹는 도중 친구가 나와 남자친구를 슬쩍 살피더니 남자친구에게 코를 풀어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왜 그걸 물어보냐고 웃으니 그 친구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감자 만나기 전에 얘가 얼마나 신신당부 했는데! 트림도 하지 말고 방귀도 뀌지 말고 코도 풀지 말라고 그랬어."

"뭐라고?!"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코가 나오면 얼른 코를 풀라고 했다. 그 친구는 그제야 코를 풀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한국에선 그러면 예의가 없다고 간주하냐 물었고

나는 한국은 그렇지만 내가 대만에 있을 때 대만 사람들이 그러는 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근데... 그럼 너는 만약에 여자친구가 네 앞에서 큰소리로 트림해도 괜찮아?"

"음.. 아마 싫어하는 남자도 가끔 있겠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내가 밥을 사주고 나서 그러면 좋을 거 같은데?"

"왜?"

"내가 여자친구한테 밥을 사줬는데 트림하면 잘 먹었다는 뜻이잖아. 만족스러운 식사였구나 생각이 들 거 같아."


그 친구는 대만에서 트림은 딸꾹질이나 재채기처럼 그냥 어쩌다 나오는 거라고 여긴다고 했다. (그리고 딸꾹질과 트림을 뜻하는 단어가 같다.)

그 말을 듣고는 정말 큰 문화차이구나 싶었다.




알고보니 남자친구는  나를 만나게 되는 모든 대만사람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미리 생리현상을 자제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었다.


“굳이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한테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돼. 그럼 그 사람들이 날 만나면서 계속 불편할 거 아니야...!”

그랬더니 그는 멋쩍어했다.

“나는 감자가 밥맛 떨어질까 봐 걱정돼서 그랬지.”

“그런 거 신경 쓰고 있었어?”

”응. 나 식당가서도 자리 고를 때 유심히 고른단 말이야. “


알고 보니 그는 식당에 들어가면 이미 앉아있는 손님들을 스캔하고, 트림을 할 것 같은 사람들을 피해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웃겨서 도대체 트림을 할 것 같은 사람의 기준이 무엇이냐 물어봤는데 그 기준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자신의 직감을 따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감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종종 방귀와 트림 공격을 당했고 그는 밥 먹던 도중 빡빡 소리가 나면 나를 쳐다보고 물었다. "감자 놀랐어?"

내가 웃으면 괜찮다고 하면 마저 밥을 먹었다.


그러다 나는 대만에 방문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이제는 엘리베이터에서 누가 트림을 하든, 택시기사님이 방귀를 뀌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다.



대만에도 예전에는 빈랑이라는 열매를 껌처럼 씹고 그 침을 뱉어 바닥에 빨간 침 자국이 많았지만 크게 역겹다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바닥에 침을 뱉는 행위에 벌금을 부과하며 엄격하게 단속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며 점차 바닥에 침을 뱉는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대만 연예인들은 침을 뱉는 사진이 찍히면 크게 지탄받는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것 역시 시민의식이 낮은 행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남자친구의 형도 담배를 피우고 나서는 꼭 담배꽁초를 휴대용 재떨이에 넣어 집에 와서야 버렸다.  


덕분에 길거리는 항상 쓰레기 하나 없이  깔끔했고 나는 대만의 길거리를 걸을 때마다 쾌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침과 담배꽁초로 범벅이 된 한국의 길거리가 창피했는데, 그는 방귀를 떠올리며 한국도 더러운 점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니... 대만의 생리현상 표출이 꽤나 신경 쓰였었나 보다.

  

국제연애를 하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상대 나라의 단점은 그러려니 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처음에 문화충격을 받는 순간은 어쩔 수 없지만 그후에 온갖 나쁜 단어들을 갖다 붙이기 시작하면 정말 싫어지고,

'여기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사는 게 편하겠거니~' 하고 익숙해지면 단점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대만 아저씨들은 웃통 벗고 다니는 게 편하시구나~ 시원하시겠다...


바퀴벌레가 참 많네~ 귀엽다... 는 아직 잘 안된다.


쓰레기차를 마중 나가 직접 쓰레기를 버리는구나~ 몰려나가는 거 귀엽다. (이건 정말 조금 귀엽다. 동네주민들이 쓰레기를 들고 옹기종기 모여서 쓰레기차를 기다린다.)



그가 만약 한국에서 매번 번화가를 걸을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고 한국 길거리가 더럽다는 말을 한다면 나도 그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아마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단점을 마주할때 그가 속으로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내 앞에서는 무던하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넘겨주는것이 늘 고맙다.





짜장밥, 무생채, 블루베리요거트, 과일


그는 한국식 짜장면도 좋아하지만, 그래도 대만의 짜장면을 더 좋아한다. 한국식은 너무 달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왠지 짜장은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요리하는 걸 보니 생각보다 간단했다.


대만식 짜장면이 한국과 다른 건 대만은 두반장을 넣어 짠맛을 더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진에는 완전히 까맣게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붉은색이 난다.

대만 짜장면엔 항상 채 썬 오이가 많이 올려져 나오고, 소스에는 버섯과 작게 자른 두부도 들어간다.

처음엔 두부가 과연 어울릴까 싶었는데 먹어보면 짜장소스와 잘 어울리고 고소한 게 맛있다.

그는 대만식으로 두부와 버섯도 넣고 한국식으로 춘장을 좀 더 넣는다.


그는 짜장밥은 낯설게 생각했었는데, 내가 한국엔 급식으로도 짜장밥이 나온다고 말해주니 신기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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