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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과장 Oct 13. 2024

사랑이라 말해요. 원망마저도

이미 어릴적 부터 알고 있던 나의 병과 부정하는 엄마

나는 고명딸에 늦둥이로 태어나 부모님의 보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보물은 뭘까? 때로는 너무 소중해서 방치되기 쉽다.

그래, 나도 그랬다. 바쁜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나를 혼자 두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그게 싫지는 않았다.

엄마는 나를 교육하려고 애쓰셨다. 그러나 그 깡 시골에서, 이 엄청난 장난꾸러기가 얼마나 대단한 공부를 하겠냐고. 엄마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포기하신 것 같았다.

시골을 벗어나 도심으로 이사 오고 사춘기가 오자, 집안에서만 시동이 걸리는 나의 격한 행동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들이 엄마에게 나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상담을 요청했지만, 엄마는 대부분 부정했다.

상담 전문가를 만나야 할 때도, 엄마는 선생님들이 유난스럽다고 생각했고, 내가 이상하지 않다고 믿고 싶어 하셨던 것 같다.


그때라도 제대로 치료를 받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가끔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성인이 되어 내가 스스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을 때도, 엄마는 여전히 부정했다. 엄마가 나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나는 속이 상했고,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나는 결국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마흔에 겨우 얻은 약하고 작은 딸 하나. 맨날 아프던 나의 하나뿐인 딸.

남들이 일회용 기저귀를 쓸 때, 손수 똥기저귀를 갈아가며 나를 키운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런 딸이 이상하다고 하면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까? 아직도 집에 남아있는 천기저귀를 보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본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자신들이 문제였는지 내심 죄책감을 가지셨나 보다.

"엄마가 너 키울 때 뭔가 잘못했나 봐"라는 말 한마디에 가슴이 아렸다.
"아빠한테 얼마나 소중한 딸인데 괜찮아"라는 말에는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을 되려 위로해야 했다.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부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가벼운 감기만 걸려도 부모는 죄책감을 느낀다고들 한다.

언젠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던 사촌언니가 그랬다. "아기가 기침 한 번만 해도, 대학생 때 마셨던 술 한 잔 때문인가 싶어 너무 마음이 힘들어." 그게 부모라고 했다.

나는 부모님을 원망할 자격이 없었다. 그 생각에 뜨거운 죄책감이 목과 머리까지 차오르며, 결국 눈물이 고였다.

사랑이라 말한다. 원망마저도 사랑이라 말한다. 원망해요. 그리고 너무 미안해요. 내가 받은 상처를 수십 배로 돌려줬으니.

엄마, 아빠는 내 산만함을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늦은 나이에 얻은 자식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한 부모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을 테니까.

그리고 이제 나도, 아직 서른이 넘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돌봄이 점점 늘어가고 있음을 느끼며 부모님을 원망하면서도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니야, 원망하자. 시원하게 원망하고, 그만큼 더 사랑하자.'

바쁜 맞벌이 부모였지만, 성적으로 나를 힘들게 한 적 없었고, 나이 많은 부모였지만 어른들처럼 날 힘들게 한 적도 없었다. 개울에 종이배를 띄우듯,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면 손을 내밀어 안아주던 사람들이었다. 솔직하게 말할 줄 알고, 현명하게 나를 인도해주던 스승 같은 분들이었다. 나는 부모복이 참 좋았던 아이였다.

그렇게 몇 년간 나는 천천히 부모님께 내 병에 대한 지식을 스며들게 하고 있다.


말이 빠를 때 혼내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지도해줄 것.

지갑이나 핸드폰을 잃어버린다고 질책하지 말 것.
제일 속상한 사람은 바로 당사자임을 기억해줄 것.

엄마, 아빠는 나를 지도해주고 손을 잡아주는 역할이지만, 나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부모는 아니며, 앞으로도 그런 부모가 아닐 거라고 기대한다.

가장 힘든 건 나이므로, 그대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나를 응원해주기.

필요할 때 손만 내밀어 주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도움임.

충동적이거나 어른스럽지 못한 내 모습을, 나 역시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함께 인지해줄 것.

감정적 기복을 이해하고, 지적할 때는 감정이 아닌 논리적으로 명확히 할 것.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논쟁하려 하지 말 것.

엄마, 아빠 외에는 나를 이만큼 이해해줄 사람이 없을 테니, 그대들이 나에게 잘해주기를 바람.

관련 책을 사서 읽어달라고 부탁하기. (찡찡대기)

솔직한 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우리는 가족이니까.

20년 넘게 함께 살아도 완전히 적응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게 모든 가족의 현실임을 기억하기.


나이가 든 부모에게 억지로 우기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나는 그저 흔한 아이들 중 하나였고, 그대들은 언제나 잘해오셨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부모님을 위로한다.

ADHD와 늙은 부모의 동거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다. 사랑이라 말한다. 원망마저도 사랑이니까 원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미 지나간 일에 묶인 부모를 위해, 나는 더 잘 살아야 한다. 이 악동과 함께.

내 병을 알고 난 후, 부모님은 '그때 그러면 안 되었는데…' 하고 얼마나 후회하셨을까? 자존심과 오래 쌓인 표현 방식 때문에 티를 내지 않았을 뿐, 분명 얼마나 후회하셨을까?

그 안에서 사랑을 느낀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음에 사랑을 느낀다. 잘하지 못할 것 같아서 어정쩡하게 다가오며 어렵게 말을 거는 부모의 모습에 사랑을 느끼고, 내가 먼저 달려가 어렵게 말을 걸며 사랑을 보낸다.

이해하지 못했어도 괜찮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나를 너무 사랑해서 받아들이지 못했어도 괜찮다. 부모님은 신이 아니니까.

지금 이 순간 나의 영웅들은 그대들이다. 나의 위인도 그대들이니까, 나는 사랑할 수 있다. 그 존재만으로도 내게는 희망이니까.


잘 살아오지 않았나, 나름 열심히 살지 않았는가, 나의 부모님.

그 부모님의 삶이 증명하고 있다.

나 비록 정처 없이 떠다니는 매미 같은 존재지만, 미래가 불투명한 것은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부모가 존재한다.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그들은 존재한다. 비록 그들처럼 고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을지라도, 그렇게 살아도 나 같은 존재가 태어나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대들의 증거로서.

원망마저도 사랑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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