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부러진 발목 하나를 내게 내밀었지
그동안 잘 지냈냐고 묻기도 전에
너무 익숙한 고통이라 반사적으로 품에 안았지
한때 나는 사랑은 베어 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가슴에서 시작된 것은
가슴으로 되돌아온다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사랑은
말이 없었고
입 대신 균열로 대답했으며
팔과 다리를 제멋대로 잘라냈지
그대여
당신은 그때도 말없이 나를 스쳐 지나갔지
나는 어쩌면 발자국 위에
매일 눈을 뿌려 덮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운명이 다녀가고 있었지
당신은 편지를 보냈지
운명은 원래 어둠이었다고
내가 들고 있는 사랑은
타버린 잔해일 뿐이라고
하지만 깨달았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감정의 형체는
사랑이거나
아니면
운명
손가락 하나쯤 없어도
사람을 만들 수 있다고 했지
나는 잘린 부위들을 모아
당신의 얼굴을 빚어보았어
눈두덩엔 슬픔을 콧등엔 망설임을
뺨에는 해묵은 얼룩을 남겼지
그리고 그게 당신이라면
어둠도 빛도 아닌
진정 당신이라면
입을 닫기로 했어
혀는 사람을 잘라버리니까
말은 마음을 멍들게 하니까
오히려 침묵 속에서
운명이 어디쯤 떨어져 있는지를
더듬을 수 있었어
가끔은
한쪽 무릎으로 겨울을 걷는 기분이야
무너진 가슴으로
부러진 발목을 찾아 나섰지
일곱 번
아니 일흔 번도 넘게
용서하며
사랑아
돌아오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손에 들고 있는 어둠만은
버릴 수가 없어
그건 너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한
잊히지 않는
부서진 운명
그래서
부러진 발목을 품에 안고 누워
낡아버려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지만
비로소
사랑은 베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아무것도 약속되지 않은 채
다시 걸어보는 꿈을
다시 부러지는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