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 힙합, 팝, 재즈 등 장르를 크게 가리지 않고 여러 장르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길을 걸으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으면서 듣는 음악은 잠깐의 여유를 주는 듯하다(물론 장르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끔 재즈를 듣곤 한다. 챗 베이커, 엘라 피츠제럴드를 주로 듣곤 한다. 재즈에 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건 아니고, 집중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거나 마음이 편해지고 싶을 때 재즈를 찾는다. 이어폰에서 재즈가 나올 때 나만의 개인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록 사는 곳은 좁은 원룸방이지만, 분위기만큼은 어느 대형 카페 부럽지 않은 편안함을 주는 듯하다.
고향에 내려갈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서 가족과 함께 간단한 점심을 먹고 다시 집으로 향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온은 25도 정도에 햇빛 밑에 있으면 땀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 나쁘지 않은 정도의 더위였다. 휴일을 제대로 가지지 못해 지쳐있는 내게 날씨는 잠깐의 여유를 가지라는 듯이 푸른 하늘을 내게 보여줬다. 날씨도 좋겠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기차역에 도착해서 승강장으로 향했다.
음악 어플로 재즈 자동재생을 해놓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승강장으로 걸어갔다. 기차가 도착하기까지 잠깐 시간이 남아서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걸었다.
엘라 피츠제럴드의 곡이 재생되면서 그녀가 흥얼거리는 스캣이 이어폰에서 내 마음 안으로 들어와 나를 적셨다.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승강장 덕분에 햇빛이 가려지니까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연하늘색 하늘과 한두 점 떠 있는 하얀 구름들, 푸른빛으로 무성히 자신을 치장한 나무들, 기차를 기다리기 위해 승강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승객들. 눈으로 그것들을 느끼며 귀로는 자유로운 스캣이 들려오니, 마음이 한가해졌다.
어쩌다 보니 마음이 한가해졌다.
자유롭지 못한 기분으로 몇 날 며칠을 살아왔지만 재즈는 잠깐의 자유를 허락해 주었다. 재즈는 그런 것 같다. 세션 간의 양보, 타협을 통해 연주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들을 연주에 녹여내고, 그 연주를 들으러 오는 관객들을 향해 음악적 감상의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여유롭지만 여유롭지 않은 별난 장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마음의 여유에서 오는 조용한 인정이 참 반가웠다. 언제 또 이런 감정이 올진 모르겠다. 하지만 이때까지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살아가다가 한 번씩 재즈를 듣다 보면 이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그때까지 재즈처럼 조용하지만 소란하게, 여유롭지만 타이트하게, 취하되 적당하게 하루를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