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 집안 외갓집에서는 사과 과수원을 하셨다. 해가 지고 나면 길가에 듬성듬성 놓인 가로등 불빛밖에 보이지 않는 시골에서 꽤나 큰 평수의 과수원을 하셨다. 계절이 넘어갈 때 마다 우리는 모두 외갓집에 모여서 과수원 일을 도와주곤 했다. 가끔 가는 외갓집이지만 나는 외갓집에 가는 날을 꽤나 좋아했다.
날씨가 좋은 봄이나 여름에는 외가 친척들이 모인 곳에서 항상 저녁마다 맛있는 고기를 먹었고, 밤이 깊어지면 캠프파이어를 하듯이 아궁이 앞에 모여서 사그라드는 불을 아쉬워하며 나뭇가지를 넣곤 했다. 불이 모두 꺼지는 깊은 밤이 오면 야외에 놓인 평상 마루에 누워서 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보면서 별자리를 찾아보곤 했다. 그러다 아침이 오면 형들과 함께 대나무를 베어서 장난을 치고, 집 앞에 있던 시냇가에서 부터 과수원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면서 우리만의 탐험을 즐겼다.
뜨겁던 여름이 지나 꽤나 시린 겨울이 찾아오면 발목보다 조금 높게 쌓인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고, 두껍게 얼음이 얼어붙은 강가에서 자전거를 끌고 타다가 넘어지곤 했다. 그때쯤에 처음 눈썰매를 타는 방법을 익혔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 시절 아빠의 머리카락은 참 새까맸다.
사과를 수확할 시절이 다가오면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다 같이 모여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과 수확을 도와드렸었다. 한번씩 사과가 먹고싶어진다면 바구니에 따놓은 사과를 하나 집어들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 한번 씻은 다음 한 입 베어물었었다. 붉은 껍질 안에는 달달한 노란 속이 숨어있었다. 어찌나 달던지, 사과 안에 고여있던 꿀들이 생각난다. 그때는 몇 입 베어물고 질리면 그대로 땅에 버리곤 했었는데, 요즘은 언제 마지막으로 사과를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그렇게 달달하던 사과를 베어물때 나는 고민거리 하나 없는 어린 나이였다. 사과 하나 사먹기 귀찮은 나이가 된 나는 그때 먹은 사과의 단맛보다 더 달달한 과일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붉고 단단하던 껍질을 벗기면 달달한 속이 나올 줄 알았지만 모든 사과가 그렇지 못하듯 내가 가진 사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따금 생각난다. 그때 그 장면들, 그때 그 장소의 냄새들, 그때 그 자유롭던 나의 모습이. 아직도 나는 달달한 사과를 찾지만, 이제는 큰 의미가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