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기맘 Nov 03. 2024

18장. 산모가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태아한테 좋아요



산부인과 진료를 무슨 정신으로 본 건지 모르겠다. 산부인과만 진료받고 나오면 핀 이 반쯤 나가버린다. 산부인과 진료를 마치고 일주일 뒤 검진을 예약하고 신생아 과로 이동했다. 중간에 시간 텀이 좀 남을 줄 알아서 점심을 먹으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진료 시간까지 시간이 애매해서 바로 신생아 과로 갔다.


산부인과 진료보다 신생아과 교수님 만나서 들을 이야기들이 더 긴장되고 더 떨렸다. 며칠 전 세브란스 병원 앱으로 신생아과 담당 교수님은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검색해 봤다. 푸근하게 생기신 분이셨다. 과연 어떤 또 안 좋은 소릴 들을는지... 걱정과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신생아과 담당 교수님 진료실 앞에서 멀뚱멀뚱 히 앉아 기다렸다.


거진 어림잡아 50분 가까이 기다린 것 같다. 진료실 앞 복도에는 나랑 같은 임산부들도 한 둘 있었고 아기랑 같이 진료를 보러 병원을 찾은 엄마와 아기들도 보였다. 문득 머릿속에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저 아기들은 어디가 아파서 여기 엄마랑 같이 와 있는 걸까? 저 엄마는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뚜기가 세상에 나와서 장기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머지않아 내가 겪게 될 일인 거 같아 기다리는 내내 마음이 심란해졌다. 한숨이 어찌나 푹푹 쉬어지던지...


12시 40분 진료였는데 시간이 한창 지났는데도 내 이름은 부르는 소리는 들리지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도 참 초조한데 예약시간을 넘기니까 왠지 모를 불안감이 가중되어만 갔다. 그렇게 불안감 속에 몇 분을 더 기다렸을까.. 이윽고 나를 부르는 이름이 들렸다.


신생아과 교수님과의 첫 대면이었다. 내가 어떤 일로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교수님은 이미 초음파 상태로 그리고 전날 산부인과 교수님과 컨펌이 오가셨던 모양인지 우리 뚜기 상태에 대해 알고 계셨다. 교수님은 태어나서 뚜기가 겪을 합병증이라든지 치료 방향에 대해 보다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정상적으로 출산을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아기의 상태를 다 살펴야 하고 그 시간이 한 달이 아니라 장기적인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어떤 상태냐에 따라 치료가 완전히 다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산모에게 감염이 되어 타격을 받아 기형이 생길 수도 있고. 그 이유가 아니라면 유전적인 영향 이 두 가지 요인으로 볼 수 있는데 태어나 봐야 정확한 치료 방향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산부인과 교수님과 별반 크게 다를 내용이 없었다. 다만 조금 더 현실적으로 이야기해 주시는 거 같았다. 앞으로 아기가 치료를 하면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들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엄마가 옆에 계속 있을 수는 있는지 앞으로 발생하는 치료비는 감당이 가능한지.. 등등


전반적으로 지금은 너무 좋지 않은 우리 뚜기 상태 초음파로 보이는 뚜기의 상태가 그러했다. 확률적으로나 뭐로나 초음파에서 좋지 않았던 아기가 멀쩡히 태어날 확률은 거의 드물다고 하셨다.


앞에서 잠깐 빠뜨린 이야기가 있는데 산부인과 교수님은 수술 전 산모와 교수님들이 같이 만나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정확한 상태와 진료방향에 대해 나도 알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근데 신생아과 교수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뭐가 됐든 산모의 안정이 제일 중요한데 산모도 지금 많이 힘들 텐데 그 자리에서 힘든 이야기를 앉아서 듣고 있는게 과연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산모가 최대한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지금 태아한테 가장 좋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산모는 더 궁금한 거 없어요?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요."라는 교수님 질문에.. 나는 뚜기 상태가 정말 많이 안 좋은 거냐고 여쭤봤다. 늘 같은 이야기인 거 같다... 듣고 있어도 또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이 되는 것. 믿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애써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 현실을 지금의 상태를 받아들이는 건 내 입장에서는 정말 힘든 일임에는 분명하니까.


"지금 상태로는 확률적으로나 그래요. 그리고 지금 주수에 시기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병원에서는 심장이 뛰는 아기는 무조건 살립니다. 최선을 다할 거고요." 교수님의 대답이었다. 주수가 31주가 되었으니 안 좋다는 아기를 지금 와서 어떻게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궁금한 게 있거나 상담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뒤로한 채 신생아과를 나왔다.


힘들었던 산부인과와 신생아과 협진 진료가 끝이 났다. 출산 이후가 더 힘든 과정이 될 거라니.. 내가 이 모든 걸 인내하고 감당할 수 있을까? 엄마로서 내가 뚜기한테 과연 책임감을 가지고 이 아일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내가 엄마가 될 자격이 있긴 할까?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복잡한 마음속 그렇게 택시를 타고 돌아오면서 생각을 비우려고 연신 숨을 내쉬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 어디에도 아무것도 없어. 의사 선생님들이 해줄 몫이야...

이전 17화 17장. 몸 보다 마음이 더 힘든 나날들이 지속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