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9주 차 접어들 때 그때만 해도 우리 뚜기가 당장이라도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 워낙 안 좋은 상황이라 하니까 예후가 안 좋다고 다들 말했고 뱃속에서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고들 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임신 30주까지 나는 뚜기와 함께 지금 주수까지 끌고 왔다. 다행히도 뚜기는 성장을 멈추지 않고 커주고 있었다.
임신 초기 때 다녔던 국립중앙의료원 그리고 그 사이사이 심난할 때마다 뚜기 보러 찾았던 여러 개인 산부인과 병원들 뚜기의 상태를 알고 급하게 전원 했던 은평 성모병원.
그리고 출산 시기를 고려하고 태어나서 치료를 감안해서 옮겼던 연세 세브란스병원까지 거치며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얼마나 들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눈물들을 흘려야 했을까?
병원에 다녀온 날이면 선생님들이 뚜기는 좀 어떤지 물어보셨다. 어차피 간호 선생님께 전해 들으실 내용이겠지만 안 좋은 상태를 내 입으로 다시 이야기할 때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 이야기를 하고 난 후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어 편안해진다면 모를까 그럴 확률은 극히 드물었다. 심난함이 가중이 되면 모를까...온갖 생각들이 교차하며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세브란스 병원 전원후 그 불안감이 갈수록 더 커져만 가고 있었다. 생명을 지키고자 했던 나의 그런 생각이 순식간에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와 내 마음속을 헤집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더더욱 입 밖으로 꺼내 보일 수도 내색할 수도 없었다.
심난함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들한테 털어논다 한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는 상황 속에 그런 나날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이런 불안함 속에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세브란스 전원후 일주일 뒤쯤 피부과 협진 진료가 있어서 다시 세브란스를 찾았다.
태아한테 얼마나 감염이 되었는지 태아한테 어떤 영향이 가는지 그리고 산모인 내 상태는 어떤지 전반적으로 체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피부과 진료 담당 교수님은 여러 가지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계셨다.
일단 채혈실에서 피검사를 하고 가라고 하셨다. 괜찮아졌길 바라며 나는 그렇게 피를 뽑고 2주 뒤 다시 예약 날을 잡고 병원을 나섰다.
내가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지금은 치료할 수 있는 게 그 아무것도 없는 상황 병원진료 예약된 날 병원 가서 진료 보는 것 그리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하루하루 무탈히 아무 일 없이 지내는 것 그것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뱃속에서 움직여주는 우리 뚜기의 움직임을 느끼는 것 그것만이 내 심란한 마음을 그나마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왜 나한테 이런 시련들을 겪게 하는 건지 나랑 뚜기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운명인지 한 치 앞도 모른 채 임신 30주의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고 있었다. 30주까지 오기까지 정말 쉽지 않은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8월의 끝자락 임신 30주 그리고 임신 8개월 남은 시간 동안.. 뭐가 됐든 더 나빠지지만은 않기를 바라며... 나는 나 자신을 믿지 않는다. 근데 우리 뚜기는 믿는다 그 믿음마저 약해졌다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아이는 나보다도 강한 아기니까 내가 몇 번이고 무너질 위기가 있었지만 그 속에서 우리 뚜기는 굳건히 나를 이 35살 철부지 엄마를 떠나지 않고 지켜주고 있었다. "엄마 무너지지 않게 매 순간 지켜줘서 고마워.. 뚜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