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연인은 가까운 각자?

독립성과 일체감, 앞으로 사랑은 어떻게?

by 찡따맨



주우재 씨는 유튜브 채널 <오늘의 주우재> '박진주 초대상 영상'에서 연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그는 "연인은 가까운 각자"라는 표현을 통해 연애 관계에서도 가까운 사이일지언정 서로 독립적인 존재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각자의 개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관계가 이상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에 박진주씨는 "가깝다면 그냥 가까운거지, 왜 '각자'를 강조하느냐?" 라며 반발했습니다. 주우재씨는 "인간은 결국 독립적인 존재이고, 연애에서도 개인의 독립성이 중요하다." 고 주장했지만, 박진주씨는 "사랑하는 사이에 굳이 '각자'라는 표현을 쓸 필요가 있느냐" 라며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영상 링크)



얼핏 보면 주우재 씨는 개인주의적 연애관, 박진주 씨는 집단주의적 연애관에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두 사람의 연애관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박진주 씨는 "가까운 사람이면 충분하지 않냐?, 왜 굳이 각자를 집어넣냐?"라 물었습니다. 고로, 그녀는 '각자'라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꼈을 뿐이지, 이를 집단주의적 연애관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주의적 연애관이 대세?


연애관은 크게 개인주의적 연애관과 집단주의적 연애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우재 씨는 찐 개인주의적 연애관이라면, 박진주 씨는 '각자'라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낀 것으로 보아 개인주의적 연애관과 집단주의적 연애관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개인주의적 연애관은 개인의 감정과 행복을 중심에 놓고, 연애를 통해 자아실현과 감정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만큼 자율성과 독립성을 중시합니다. 집단주의적 연애관은 가족과 사회의 기대 그리고 공동체의 조화와 안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개인의 감정적 교류보다 가족과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는 경향이 크며, 궁극적으로 결혼을 목표로 합니다. 그래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개인의 감정보다 가문이나 배경, 경제적 안정성 등 사회적 요소가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특히 집단주의적 연애관은 개인의 선택보다 부모와 가족의 동의가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개인주의적 연애관은 주로 미국과 캐나다와 같은 서구권 문화에 가깝다면, 집단주의적 연애관은 중국, 인도, 한국, 일본과 같은 동양권 문화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주우재 씨의 발언을 놓고 봤을 때 집단주의적 연애관이 자리잡고 있던 우리나라에서도 개인주의적 연애관이 주유로 퍼져나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얕게 생각을 해보면 세계화와 경제 발전으로 인해 개인의 행복과 자아실현에 무게를 두는 가치관이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가족과 사회를 위한 의무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나가는 게 중요하게 여겨진 것입니다. 이외에도 할리우드 영화, 넷플릭스, 유튜브를 시작으로 SNS를 통한 관계 형성, 온라인 데이트 앱 등으로 연애가 보편화되고 있는 만큼 개인주의적 연애가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다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구권에서의 개인주의적 연애관이 어떻게 형성된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이를 들여다 보기 위해 서구의 로맨스 소설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옛날 서양에서의 연애


로맨스 소설을 들여다보니, 서구권의 개인주의적 연애관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습니다. 중세시대 로맨스 소설을 보면 기사도와 궁정 연애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을 꼽자면,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죄수 마차를 탄 기사>입니다.


용감한 기사와 고귀한 귀부인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주제인데, 당시 유럽은 봉건제와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운영되었기에 로맨스 문학 또한 이러한 사회적 구조를 반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용맹함과 충성심을 갖춘 기사가 자신이 섬기는 왕이나 귀부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야기로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이는 개인주의적 연애관을 내다 버린, 집단주의적 연애관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사인 란슬롯은 귀부인인 귀네비어를 구하기 위해 기사로서의 명예까지 모두 내려놓으며 수레를 타는 굴욕적인 선택을 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으로서의 자존심보다 사랑이라는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사이를 깊게 들여다보면 개인주의적 연애관에 가깝습니다. 란슬롯과 귀네비어의 관계는 단순 의무적인 결혼을 전제로 사랑에 빠진 게 아닌, 연애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한다는 집단주의적 연애관과 배치되는 모습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로맨스 소설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페르디난드 드 로하스의 <라 셀레스티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개인의 사랑이 가문과 사회적 전통에 의해 억압당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둘은 가문의 갈등을 무시하고 오직 개인적인 사랑에 맞춰 결정을 내립니다. 동양권에서의 결혼 관습에 대한 도전이자,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개인주의적 가치관입니다.

라 셀레스티나 또한 개인주의적 연애관을 보여줍니다. 신분과 사회적 계급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을 다루고 있으며, 등장인물은 사랑을 위하여 사회 질서를 거스릅니다. 주인공인 칼릭스토는 귀족, 멜리베아는 상류층 여성입니다. 그런데 칼릭스토는 신분 차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감정에 따라 멜리베아를 사랑하게 됩니다. 전통적인 결혼의 관습을 따르지 않고 개인적인 감정을 중시한 것입니다.


18세기 로맨스 소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공 내면의 심리를 내밀하게 묘사하는 새뮤얼 리처드슨의 <파멜라>는 하녀인 파멜라가 주인의 유혹을 거부하면서 자신의 순결을 지키고, 사랑과 결혼을 모두 쟁취하는 내용입니다. 전통적인 결혼제도와 집안의 이익을 따르는 게 아닌, 개인의 신념에 따른 자율적인 선택을 합니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에어> 또한 개인주의적 연애관을 반영한 작품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제인은 경제적,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음에도 자신의 정체성과 자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랑 또한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 이루어 나갑니다. 특히 그녀는 사랑하는 남성인 로체스터가 있음에도 자신의 자존심가 가치관을 지키기 위하여 떠난 뒤, 경제적 자립과 내면의 성장 후에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어.. 어쩌고 저쩌고... 하게 됩니다.



개인주의적 연애관의 뿌리는 서양철학?



서양에 개인주의적 연애관이 깃든 이유를 더 거슬러 올라가 보니, 서양 철학을 통해 개인주의 전통이 깊게 자리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개인의 이성과 도덕적 판단 능력을 중시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라는 작품을 보면 모험과 개인적인 시련이 중심 서사로 작용합니다. 이외에도 1215년 영국에서 군주의 권력을 제한하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고. 1776년 미국에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생명과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를 갖는다."라는 말이 보편 가치로 등극, 1789년 프랑스에서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가치 하에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민주주의적 가치가 확산되었습니다. 이처럼 서양철학이라는 단단하고 싶은 뿌리를 바탕으로 세워진 서구 사회의 법과 제도는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이는 개인주의적 연애관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오랫동안 잡은 거라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은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이 19세기에 퍼지기 시작했습다. 집단주의적 연애관을 갖고 있던 이 국가에 뒤늦게 개인주의적 연애관이 형성된 계기라 생각합니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식 근대화 개혁이 이루어졌고, 중국은 1919년 5.4 운동을 계기로 서구식 사상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기존의 일본은 장남이 가문을 계승하고 여성은 결혼을 통하여 가문 간 결합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20세기 초반에는 중매결혼이 일상적이었고 연애결혼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원자폭탄을 맞은 이후 대대적인 개혁을 겪습니다. 그중 하나가 1947년의 신민법입니다. 이는 기존의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폐지하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결혼 원칙이 확립됩니다. 물론 문화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지만, 법 개정 이후 일본 사회는 연애결혼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게 됩니다. 중국 또한 공산당이 1949년에 정권을 잡은 후에 1950년 결혼법을 개정하여 강제결혼과 정략결혼을 금지합니다. 그렇게 중국도 자연스럽게 연애결혼이 서서히 피어나게 됩니다.



개인주의적 연애관이 자리 잡은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는 일본과 중국과 다르게 조금 늦게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 가족법이 개정되면서 결혼과 연애에서 개인주의적 가치를 강조합니다. ( 요즘은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옛날 드라마는 부모님이 반대하는 내용이 많은 것으로 보아 1990년대 이후에도 개인주의적 연애관이 자리 잡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한민국의 법률과 제도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서구식 법 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주의적 연애관이 주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집단주의적 연애관이 옳냐, 개인주의적 연애관이 옳냐"라는 논의 자체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대신,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적 연애관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겪게 될 변화에 대해 더욱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미래에는결혼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개념까지도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주의적 연애관이 확산되면 결혼율이 낮아지고 출산율 저하로 이어질 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주의적 연애가 강해지는 사회에서의 결혼은 낭만적인 사랑이 아닌, 실용적인 목적이 더 강해질 수도 있습니다. 결혼을 하면 법적, 정책적인 지원, 주택담보대출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몇몇 기업에서는 결혼한 직원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기업에 재직 중인 상대를 선호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관계를 선택적으로 맺는 하나의 전략처럼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면 미래에는 결혼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개념까지도 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래에 우리가 바라보게 될 사랑은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젊은 날에 짧게 피었다가 저버리는 꽃처럼 되어 버릴 지도 모릅니다.



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우리가 다시 사랑과 연애 그리고 결혼에 대해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님 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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