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한 사랑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브런치 북에는 글을 최대 30개만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27개를 작성했으니, 이제 3개가 남은 것입니다. 남은 3개는 그나마 가치 있는 것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소 뜬금없지만 저는 여기서 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사랑은 하나의 정의로 규정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 연인을 떠올리기도 하고, 가족이나 친구, 반려동물을 떠올리기도 하며, 때로는 음악이나 공상 같은 무형의 것에 대해 애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랑의 모양은 각양각색이지만, 한 줄로 요약하면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시키는 힘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랑이 단 하나의 형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고로, 사랑의 다채로운 모양을 들여다본다면 나만의 사랑을 구축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는 사랑을 크게 여덟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습니다. 열정적인 사랑인 에로스(Eros), 깊은 우정인 필리아(Philia), 장난스러운 사랑인 루도스(Ludos), 무조건적인 사랑인 아가페(Agape), 오래 지속되는 사랑인 프라그마(Pragma), 자기애인 필라우티아(Philautia), 가족 간의 사랑인 스토르게(Storge), 그리고 집착적인 사랑인 마니아(Mania)입니다. 이 각각의 사랑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맺는 관계 속에서 여러 유형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에로스는 본능적인 열정을 바탕으로 한 사랑입니다. 첫눈에 반하는 강렬한 감정, 영화 속 로맨틱한 장면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를 잘 그린 문학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게츠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필리아, 즉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우정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필리아를 에로스보다 더 고귀한 사랑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플라토닉 사랑이 필리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한 친근함을 넘어, 서로 인정하고 함께 성장하는 사랑에 가깝습니다.
루도스는 가볍고 즐거운 사랑입니다. 썸을 타거나 유희적인 관계를 맺는 사랑이 이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 사랑은 지속성을 담보하지 않으므로 때로는 프라그마로 발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프라그마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며, 지속적인 노력과 합의가 필요하다"에 가깝습니다. 인간이 성숙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행동과 실천을 통한 사랑이 필요하고 이는 덕(virtue)으로 연결된다고 보았습니다. 고로 진정한 사랑은 감정을 넘어, 두 사람이 함께 삶을 꾸려 나가며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으로 강조합니다. 프라그마는 관계를 기반으로 한 장기적 동반자에 가깝습니다.
아가페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상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설명됩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부모가 자식을 향한 사랑, 타인을 위한 헌신적인 사랑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필라우티아도 중요합니다. 건강한 자기애가 없으면 타인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로, 나 자신을 존중하고 성장시키는 과정을 거쳐야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스토르게는 가족 간의 사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애착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통해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사랑으로 봅니다. 특히 부모는 자식을 본능적으로 사랑하지만, 자식은 성장하면서 부모를 향한 사랑을 배운다고 말합니다. 고로, 스토르게적 사랑은 일방적으로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고받는 관계로 변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플라톤은 <국가>를 통해 스토르게적 사랑이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보았습니다. 그는 가족 간의 사랑이 없으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인간의 도덕성 그리고 공동체 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반대로 마니아는 지나친 소유욕과 집착으로 나타나는 사랑의 형태입니다. 상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통제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지배로 전락하게 됩니다. 고로 모든 사랑을 하되 매니아적 사랑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덟 가지 사랑은 독립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감정적이면서도 본능적이지만 때로는 이성적이면서도 의지할 수 있게 합니다. 사랑은 단순 행복을 주는 것 같지만 때로는 고통과 희생을 동반시키면서 나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됩니다. 고로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달콤한 삶의 동력이자 건강한 사회를 유지시키는 힘이기도 합니다. 사랑을 단 하나의 감정으로 볼 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걸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생각해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랑을 여덟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을 단순 감정적 차원으로 바라본 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과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여덟 가지의 개념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여덟 가지의 사랑 유형은 유효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 의미를 탐구하여 나만의 사랑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계도 사회도, 국가도 더 단단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아~~~ 오늘은 쉬는 날이라서 그런지 참 여유롭다~~~
오늘은 뭘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