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37 댓글 2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들어가는 말-

산골여고생_ 시작.

by 글지은 Mar 27. 2025
아래로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의성 할머니 댁으로 이사한 이후 온전히 우리 집이 되었다. 우리 동네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아랫마을 윗마을로 나뉘지만 20 가구 안팎 정도 되는 아담한 마을이다. 포장되지 않은 비탈길에 경운기나 자동차라도 지나가면 흙먼지가 날리고 여기저기 개울도 많고 빨래터도 따로 있었다. 군것질이라도 하려면 20~30여 분을 걸어가야 구멍가게 두 곳이 있고 옹기종기 마을이 나뉜다. 초등학교 때는 집에 세탁기가 없었기 때문에 수건이나 운동화를 빨려고 빨래터도 많이 왔다 갔다 했다. 산골 소녀에게 빨래터에 가는 일, 농사철 주말이면 일을 거드는 것도 당연한 일과였다.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그때부터 내 아침 루틴은 항상 같았다. 아침 6시면 반짝 눈을 뜨고, 씻고, 밥 먹고 등교 준비를 한다. 중학교도 조용하고 말 없는 아이,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는 열심히 지키면서 수업도 그럭저럭 열심히 들으며 졸업했다. 딱히 제일 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지만, 말을 아예 안 하지는 않아서 말할 친구가 없는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입학 때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귀를 살짝 넘어선 흑갈색 단발머리, 남녀 구분 없는 하얀색 기본 블라우스, 딱 무릎길이에 회색 스커트, 고등학교 문양이 왼쪽 가슴에 새겨진 회색 재킷, 검은색 타이츠, 검은색 단화를 신었다. 집에서 5분 정도 걸어 나오면 아침 첫 버스가 7시 30분. 정확하게 사람을 한가득 태우고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매일 아침 버스를 탈 때면 항상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장터를 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중, 고등학교 학생들이 뒤엉켜서 항상 만원 버스였다. 내가 버스를 탈 때쯤 되면 버스 앞문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릴 정도로 뒤엉켜서 산을 타고 올라갔다. 의성 읍내에 가려면 ‘윗재’라는 높은 산꼭대기를 넘어서 가야 했다. 꼬불꼬불 산길에 버스를 타고 갈 때면 놀이공원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든다. 사람이 꽉 찬 버스 안에서 키가 작은 난 손잡이를 잡을 곳도 없고, 호떡처럼 눌린 채 10여 분의 거리를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짓눌려서 읍내에 도착하면 단발머리도 산발이 되는 경험을 한다. 고등학교는 버스 정류장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는데 등산 못지않게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했다. 따로 운동하지 않아도 종아리에 충분히 알이 배길 수 있는 오르막길이다. 틈틈이 거드는 농사일보다 힘든 일도 아니고 긴 거리도 아니지만 휘어진 종아리가 점점 굵어지는 경험을 매일 한다.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기 때문에 한 반에 남녀 2대 1 비율로 여학생이 조금 더 많았다. 한 학과에 3반까지 있고 30여 명이 한 반을 이룬다. 공업고등학교였기 때문에 전자과, 전기과, 화학과, 토목과로 나누어져 있었고 난 전자과였다. 대학교에 갈 생각이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는 건 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다. 대학 입학의 경우도 공업고등학교나 상업 고등학교가 특별전형으로 더 유리했다. 공업고등학교의 경우 3학년이 되면 실습을 나가게 되는데 그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혹여나 대학교에 가더라도 난 국문과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중학교 때도 그랬지만 내 꿈은 글을 쓰는 사람 ‘작가’였다. 정확히 말하면 시인이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1학년 봄, 다른 건 별다를 것도 없지만 중학교 때는 거리가 멀어서 가보지 못했던 도서관이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다는 점에서 너무 기뻤다. 고등학교 들어가서 내가 제일 처음 한 일이 학교에 관련된 일이 아니라 체험 수기, 소설, 시집을 빌려보려고 도서관 회원증부터 만들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이제 매일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려볼 수 있다는 것이 내심 설레었다.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꿈은 더 확실해졌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 막연하게 생각하던 시집들을 이제 마음껏 빌려볼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보통 친구들이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은 관심사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유행하는 노래가 어떤 건지도 몰랐고 친구한테 “넌 이런 것도 모르냐?” 구박당했다. “내가 연예인 모르는데 보태준 거 있냐?” “내버려 둬~ 그딴 거 몰라도 사는데 지장 하나도 없어.” 반박하면 친구는 어이없어했다. 그냥 도서관이 가깝다는 것과 이제 맘껏 보고 싶은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집안 형편이 좋지는 않았고, 내 욕심껏 책을 사다 볼 수 없기에 도서관 가는 것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노트에다 연필이나 샤프로 글도 끄적거리고 도서관에서는 소설이나 시집, 수필집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어쩌면 그냥 지나쳤을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줄도 몰랐고, 도서관 느티나무 아래 벤치가 그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 설레는 장소가 될 줄도 몰랐다.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 같은 꿈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이 설레었다. 어쩌면 ‘처음 사랑’이라는 것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내 첫사랑은 함께 글쓰기를 좋아했던 동지이면서 골고루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려주었다. 178cm 정도 되는 키, 안경이 잘 어울리고 차분한 말투가 멋있었던 사람. 어느 날엔가 마음속에 쓱 들어오더니 쉼터로 자리 잡았다. 원래도 재밌던 도서관 탐방기를 더 즐겁게 만들어 준 커다란 느티나무 같은 사람이었다. 누가 그러더라.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첫사랑이라고.

누군가에게는 마음 설레는 일이고, 누군가는 함께하는 사랑이 마지막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내게 첫사랑은 꿈을 나누어 가진 ‘단짝’ 같은 사람이었다. 막 고등학생이 된 내가 철부지 어린애 같은 마음으로 처음 사랑을 하게 될 줄도 몰랐다. 내 처음 사랑, 처음 꿈 ‘글을 쓰는 사람’을 누군가와 이야기해 본 건 여고생이 시작이었다. 누구에게나 ‘처음’과 ‘시작’이 존재하듯 내 생에 처음 쓰기였던 ‘처음 사랑’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