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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죽순이가 되다.

여고생 도서관 입성기.

by 글지은 Mar 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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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한가할 것 같은 아침이지만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시골생활도 10년 차 여고생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이후 아침 버스를 타는 것이 전쟁 선포의 시작이다. 아침에 엄마가 일어나라며 기상나팔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는 건 일상이다. 우리 집에서 룰은 아침밥은 무조건 가족들이 함께 먹는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난 매일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는데 항상 북적거리는 버스인 아침 7시 30분 차를 탈 때마다 인상이 찌푸려진다. 버스 안에는 사람도 많고 짐도 많고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교과서가 한가득 들어가 있는 날이 너무 싫었다. 여고생이어도 난 키가 작은 편이라 사람이 꽉 들어차 있는 만원 버스에서 손잡이를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째서 이놈의 버스는 맨날 이렇게 복잡하고 사람이 많은 건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학교에 가려면 험난한 오르막길을 등산 수준으로 걸어 올라가는 게 얼마나 힘들던지. ‘학교를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지은 걸까?’라는 원초적 질문을 떠올리며 오르막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교과서가 많은 날이면 등에 통나무를 가득 올린 지게를 진 거처럼 가방이 무거운데 학교 가는 길조차 언덕진 경사일 때는 차라리 아파서 학교를 땡땡이치고 싶단 말이 절로 나온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게 아닐까 싶을 만큼 힘든 오르막길이다.


겨우 학교에 도착하고 나니 땀이 비 오듯이 쏟아져서 목덜미를 만지니 땀투성이었다. 꽃피는 춘삼월에 얼굴에 왜 빗물까지 쏟아내며 학교를 와야 하는 것인지 아이러니했다.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난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다. 교과서를 앞에 세워놓고 시집이나 체험수기, 소설 읽는 게 더 즐거운 관심사였다. 그렇게 속임수를 쓰다가 선생님께 들켜서 혼난 적도 꽤 많았고 학교 공부는 중간만 가자 정도로 신경 썼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학교 종이 띵동댕동~ 울리기가 무섭게 난 지영이와 민경이랑 같이 도시락을 먹는다. 밥알을 씹으면서 말했다. “난 점심시간이 제일 좋아!”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지영이는 웃음과 함께 내 말에 반박부터 했다. “야! 넌 먹는 건 다 좋아하잖아~!” 지영에 말에 민경이도 박수를 치며 웃었다. 학교에 오는 가장 큰 즐거움은 중학교 때부터 함께 지내온 친구들이 있기에 맞이할 수 있는 평안한 시간이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향한 곳은 학교 뒤에 있는 개구멍을 통해 빠져 나간다. 개구멍에서 딱 5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 옆엔 조그마한 슈퍼가 있는데 그곳에 들어가 또 먹을 것을 골랐다. 중학교 2학년 때였나... 말없고 무뚝뚝하게 지내던 내게도 친구들이 생기고 식성이 좋은 건 이미 그러려니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내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은 게 분명하다. 어떻게 점심을 그렇게 먹고 컵라면을 하나 후루룩 뚝딱 할 수 있는 건지 지영이와 민경이는 맨날 보면서도 신기하게 쳐다봤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가듯 내게는 슈퍼와 컵라면은 때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컵라면을 먹으면서 한참을 떠들다가 친구들은 각자의 볼 일이 있어서 컵라면 뚝딱으로 인사했다.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생긴 내 하루 일과 중 하나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보는 것이다. 학교와 가까운 것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체험 수기나 소설, 시집이 한참 관심사여서 도서관을 가면 빌렸던 책을 반납하고 시집과 소설책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어떤 책을 빌릴지 갈등하는데만 몇십 분을 소모한다. 책을 빌리면 도서관 2층 열람실로 올라간다. 2층과 3층은 공부할 수 있는 열람실이 있는데 한쪽은 남자, 한쪽은 여자로 나누어져 있는 열람실이 있고, 남녀 혼합 입실이 가능한 열람실이 있었다. 주 목적지인 여자 열람실을 가서 책을 읽는다. 중, 고등학교 때 꿈이 ‘작가’였다. 종류를 따지자면 ‘시인’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거다. 주로 시집이나 소설책을 좋아해서 빌리는 책 대부분이 시집이나 소설책이었고 가끔 에세이를 읽곤 했다.


도서관 군데군데 앉아 있는 사람들의 책갈피 넘어가는 익숙한 소리를 귀로 듣고 있으면 마음도 편안해졌다. 어릴 때부터 소설이나 시집을 좋아했는데 가끔 집에서 라디오로 음악 소리까지 깔리면 금상첨화가 다 갖춰진 듯 즐거웠다. 그리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편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책을 내보고 싶다.’라는 꿈에 젖어 읽는 시집과 소설책이 그렇게 재밌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도서관 문이 닫힐 때 즈음 그제야 가방을 챙겨서 집에 가는 막차를 타기 위해 전력 질주를 했다. 우리 마을로 가는 버스 막차 시간은 정확히 저녁 7시 10분. 1분이라도 늦으면 기사 아저씨는 가차 없이 문을 닫고 떠났다. 급한 마음에 가방도 후다닥 대충 둘러매고 뛰었다. 그 와중에도 엄마한테 혼날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버스 못 타면 엄마한테 혼나는데.’ 버스 정류장이 다 와 갈 즈음,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정류장에 서 있는 것을 보고 100미터 달리기로 버스 타기를 성공했다. “감사합니다!” 밥 잘 먹는 고등학생이라 그땐 내 목소리도 은근히 컸다. 버스 기사 아저씨와 다른 승객들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웃으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시골 버스 풍경은 정겨웠다. 그럴 때마다 시골로 이사 온 것이 다행이란 생각을 자주 했다. 그래도 10분만 더 일찍 도서관을 나서도 이렇게 급하게 뛰어오진 않아도 되었을 텐데... 꼭 한 걸음이 지나고 나서야 행동에 반성을 하게 된다. 마음속에 반성문을 쓰다 보니 버스는 마을 앞에 도착했다.


우리 마을은 ‘달밝골’이라는 별명답게 밤이면 달이 엄청 밝고 예쁘게 뜨고 별도 많이 떴다. 집까지 가려면 가로등이 하나뿐인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봄이나 여름엔 개구리도 많이 울고 귀뚜라미 소리도 정겹게 울렸다. 냇물 흐르는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건 덤이다. 시골이 주는 정겨움이 그대로 있어서 마을 입구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 항상 기분이 좋았다. 중학교 때부터 버스를 타기 시작하면서 귀가 시간이 늦어지자 매일 똑같은 말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혼내시는 엄마가 오히려 더 신기하다. 어둡고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내게도 즐거움이 생기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내가 쏟아내는 시집과 소설책에 대한 사랑은 고등학생이 되고 찐사랑이 되었다. 학교만 끝나면 도서관에 가는 죽순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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