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에피소드 ④
<…우리는 우리를 이끄는 지도자와 그 집단에 대해 야박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그들이 힘들어 울어야 국민이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건… 정책이나 전문가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회지도층이 국민보다 힘들지 않고 편하게 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마지막으로, 사고를 당한 공장 주소를 알려주면 내가 수소문해서 확인해보겠다고 제안했다. 현장 목격자는 없더라도 그 정도 사고라면 분명히 직원들 사이에 소문이 안 났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랬더니 그는 “주소는 모르겠는데 위치는 기억하고 있으니 그렇게 못 믿겠다면 함께 (손가락이 잘린) 공장으로 가자. 내가 직접 (현장에서) 그때 상황을 설명해주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인 4월 5일 토요일 오전. 나와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그리고 1년 위 선배 기자, 이렇게 셋이 내 차(1995년 식 흰색 아반떼)를 타고 부평으로 향했다. 약간 헛갈리기는 했지만, 그는 “저 군부대 옆 언덕으로 우회전하세요”라며 비교적 정확하게 길 안내를 했다. 그리고 그가 “이 근처”라며 내린 곳은 넓은 도로(6차선 이상은 된 것 같다)가 뻥 뚫리고 상가가 밀집한 꽤 번화한 동네였다. 큰 상가가 있는 블록 뒤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던 그는 “여기쯤인데… 여기쯤 골목길이 있었고…이 근처인데 동네가 너무 변해 못 찾겠다”라고 했다. 좀 어이는 없었지만 어쩌겠나. 최면 요법을 쓸 수도 없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은 ‘이걸 어떻게 보고해야 하나. 또 한바탕 깨지겠네’하는 생각뿐이었다. 오후 4, 5시쯤. 출발지인 광화문에 도착했는데, 그냥 보내기가 미안했던지 그는 “목이나 축이고 가자”라며 종로소방서 근처의 한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맥주 6병을 마시고 나왔는데, 그는 “증명하고 싶었는데 정말 미안하다. 내가 더 답답하다.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다. 한 달에 한 번은 만나는 좋은 사이가 되자”라고 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해가 떨어지기 전에 카페에서 나온 걸 보면 그리 오래 같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서로 대화도 몇 마디 나누지 않았으니까.
이후에 데스크에 상황 보고를 했더니 그냥 있는 대로 쓰라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지만, 증거가 없었으니까. 정황만으로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시에 반항하다가 좀 많이 깨졌다. 그래도 어쩔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한 달 정도가 지난 것 같다. 함께 부평에 갔던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⑤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