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라는 매개체
이후 2년 넘게 불편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남편으로서 나는 가족과 가족 사이에서
어려운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걸 아는 아내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결심했다.
자기가 시어머니와 통화를 하겠다고.
물론 사건 이후 전화번호를 바꾼 상태라
내 전화를 통해서였다.
아내는 죄송하다는 사과 외에는
아무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오히려
미안함과 고마움이 느껴졌다.
어렵게 어렵게 통화를 시작했다.
아내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얼마나 괴로웠을까.
통화 직후, 엄마는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이제는 조금 나아지려나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얼마 가지 못했다.
엄마는 처음엔 “아들하고만 연락해도 괜찮다”더니
아내와 통화가 성공하자
슬슬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보자며
종종 압박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가족끼리 한번 만나면 좋겠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통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을 테니.
아내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혹시 다시 예전처럼 시어머니와 연락을 한다면
일상이 무너질까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항상 장시간 통화를 이어갔다.
술까지 곁들인 날이면,
통화가 여러 차례 반복되기도 했다.
질리고 지친 아내의 한두 마디 실수를
계속 물고 늘어지는 날도 있었다.
그런날은 결국 내 전화기도 함께 불이 났다.
나는 직관적으로,
엄마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답을 하고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요구와 거절이 반복되며 갈등도 있었지만,
결국 엄마 스스로 포기하곤 했다.
그럼에도 아내는 또 결심했다.
곧 다가오는 명절에 직접 찾아뵙겠다고.
나는 무리하지 말자고 했지만,
아내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했다.
사건 이후 2년 동안 우리 가족은 본가를 방문하지 않았었다.
아내도 그렇지만, 아이들이 따라가야 한다는 점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겠다는 아이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엄마도 오랜만에 우리 가족이 온다는 소식에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명절 며칠을 앞두고
결국 일이 생겼다.
아내의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