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 권장 프로젝트」 마음의 장바구니 - 17
어느 날 문득, 브런치북의 두 세계관을 결합시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치 권장 프로젝트」 '마음의 장바구니'에 실릴 도서를 「삶의 레시피」 '쓸데없지만 쓸모 있는'의 글과 짝을 이뤄 선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책은 「삶의 레시피」 여섯 번째 글, 당연하지 않은 일과의 만남과 연결됩니다.
올여름, 또는 지난달,
당연하지 않은 어떤 일과 만남을 이루었는지?
내가 미처 몰랐던 나를, 내가 미처 몰랐던 세상을 발견했는지?
사람들을 붙잡고 한 번씩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내 대답을 풀어보자면,
조금 엉뚱한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했고, 작지만 새로운 경험을 앞두고 있다.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생겨 기회를 노리고 있기도 하다.
하나같이 소소한 일들이지만, 분명 또 다른 나를 향해 가는 발걸음인 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더디더라도 찬찬히..
내가 좋아하는 슬로건이다.
『우주 호텔』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폐지 줍는 일을 한다.
할머니는 이리저리 땅을 살펴야 했기에 등을 더 납작하게 구부렸고, 하늘을 쳐다보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하늘에 대한 건 까맣게 잊고 살아가게 되고 만다.
이 책은 시작부터 남다르다.
주인공 캐릭터며, 그림체며, 이야기 소재며 보통의 그림책들과는 결이 다르다.
제목과 표지를 보고 자연스레 형성된 기대치를 이 작품은 보기 좋게 비껴간다. 일종의 변칙 공격이랄까.
그 점이 내가 이 책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이유이자 이 책을 좋게 보는 이유다.
사실 『우주 호텔』은 표지와 제목에 확, 끌려서 구입한 케이스다.
내가 품었던 환상은 책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책의 표지를 볼 때면, 마음 어딘가가 몽글몽글하니 기분이 좋아지면서 환해진다.
『우주 호텔』이 그리는 세상은 차갑고 거칠다.
힘겨운 현실을 버티고 섰는 인물들은 투박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진정 따스하다. 이야기의 기둥을 삶에 탄탄히 박아놓고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아이답게 등장하는 것도 좋았다. 말과 행동, 그리고 아이의 그림까지 현실감이 넘쳤다.
이 책의 장점은 예쁜 것, 착한 것, 멋진 것 등에 목매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내키지 않는 부분들도 있기는 하다.
그래서 이 책을 사치 권장 리스트에 올려야 하나 약간의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그렇지만 분명 장점이 더 많은, 그래서 다음이 기대되는 글과 그림이기에 솔직하게 느낀 점들을 남겨보려 한다.
우선 이 책의 화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물론 숨은 화자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설정이 효과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읽는 내내 '당신은~ 누군십니까?'라는 질문이 입가를 맴돈다. 대화체로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의 포지션이 이야기의 사실성을 방해한다.
또한 과한 의미 전달이 살짝 아쉽다. 조금만 더 담백했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의 캐릭터가 일관성을 잃고 흔들리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정말 궁금한 점이 있는데, 같은 그림인데 줌인 됐을 때와 줌아웃 됐을 때가 다른 그림인 건 왜인지 모르겠다. 이런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았다면 분명 더 멋진 그림책이 되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이 책이 「삶의 레시피」 여섯 번째 글, 당연하지 않은 일과의 만남과 왜 연결이 되는지 설명이 필요할 거 같다.
주인공 '종이 할머니'는 맞은편 집으로 이사 온 아이가 건네는 다 쓴 공책을 보게 되면서 조금씩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게 되고, 그 너머의 우주까지 생각하게 된다.
당연하지 않은 사소한 일과의 만남이 삶의 톤을 바꿔놓은 것이다.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난 변화를 이끈다.
첫 만남을 싸움으로 시작했던 '눈에 혹이 난 할머니'와 사이좋게 폐지를 모으고, 함께 식사를 하며 어느새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된다. 책의 마지막 줄이자, 종이 할머니의 마지막 대사는 이렇다.
여기가 우주 호텔이 아닌가? 여행을 하다가 잠시 이렇게 쉬어 가는 곳이니.....
여기가 바로 우주의 한가운데지.
『우주 호텔』에 대한 느낌을
이탈리아 사진작가 프랑코 폰타나의 '색은 우리가 말을 걸 때 존재한다.'는 말에서 변주해 보면 어떨까 싶다.
'삶은 우리가 말을 걸 때 빛난다.'
Book. 『우주 호텔』, 유순희 글 / 오승민 그림, 해와나무, 2012.
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