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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오리와 생쥐

「사치 권장 프로젝트」 마음의 장바구니 - 06

by 율하



오늘의 주인공은 무려 셋이다.


늑대와 오리와 생쥐.


정말 의외의 조합이다 싶은데, 셋이 함께 있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게 또 은근 조화롭다.









존 클라센과 맥 바넷 콤비의 작품 중 내가 첫 번째로 접한 책이 바로 『늑대와 오리와 생쥐』다.










타원형의 눈, 모노톤의 색감, 화강암이 연상되는 단순하면도 거친 특유의 질감..

처음 보는 순간, 존 클라센 특유의 그림체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단조로운 듯하지만, 눈동자 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존 클라센의 터치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늑대와 마주친 생쥐의 복잡다단함, 자존감이 넘치는 오리, 배탈이 나 녹초가 된 늑대의 심경, 사냥감을 노리는 사냥꾼의 날카로움, 적을 향해 돌진하는 생쥐의 결연함, 사과를 전하는 늑대의 진심..

이 모든 것들을 캐릭터의 눈에 담아낸다.


게다가 보통 모노톤의 그림은 다운된 느낌이 강한데, 존 클라센의 그림은 단조로 만들어졌지만 경쾌한 느낌의 곡처럼 결코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는다.




『늑대와 오리와 생쥐』는 한마디로 늑대와 오리와 생쥐의 기발하고 유쾌한 동거담이다.


늑대 뱃속에서 조우하게 된 오리와 생쥐.

오리는 이제 막 늑대 뱃속으로 들어온 생쥐에게 이렇게 말한다.


"늑대가 날 삼켰을지는 몰라도,

난 잡아먹힐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거든."


이 책에서 한 문장을 꼽으라면 십중팔구 이 문장을 꼽을 것이다.

이 문장을 보고

한 시인을 향해 쓰였던 '절망을 수락하되 절망에 투항하지 않는'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면 너무 거창한가..?

나는 진심으로 이 두 문장이 중첩되어 머릿속을 떠다녔다.






제목에서 이미 다 스포가 됐듯이, 이 책의 주인공은 셋이다.

이들은 기꺼이 공생의 삶을 산다.

여기서 각각의 캐릭터가 빛을 발한다.


오리의 주체적인 태도

생쥐의 조화로움

이 둘의 긍정적 마인드

그리고

늑대의 부끄러움을 알고 뉘우치는 마음


이러한 모습들은 공생을 이뤄가는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어릴 적 익숙하게 보았던 엔딩들,

늑대의 배를 갈라 돌을 넣은 뒤 우물에 빠뜨린다든지

뜨거운 물이 담긴 솥으로 늑대를 유인한다든지

등장인물의 가족을 늑대가 잡아먹어 버린다든지

이런 식의 참혹한 엔딩의 동화가 아니라서 좋았다. 참 좋았다.




이렇게 재기 발랄한 돌격부대를 본 적이 있던가..!!



Book. 『늑대와 오리와 생쥐』 존 클라센 그림 / 맥 바넷 글 / 홍연미 옮김, 시공주니어, 2017.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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