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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사과나무

「사치 권장 프로젝트」 마음의 장바구니 - 07

by 율하



아주 오래전, 빠알간 사과 하나가 달린 나무를 일기장에 그려 넣을 때가 있었다.

내 안에서 더도 덜도 말고 단 하나의 열매가 잘 익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기한 사과나무』를 처음 본 순간, 그때가 생각났다.

그로부터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흘렀고,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시간에 시간이 더해져 흐르고 흘렀는데 과연, 내 안에는 빠알간 열매가 잘 자리하고 있을까?

스스로 물어본다.


'나'라는 나무에 열매가 맺힌 건 분명한데, 탐스러울 만큼 빠알갛게 익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여전히 나는 어리숙하고 어설프고 어정쩡하다.

세상에나, 사람이 익는데 이리도 오래 걸리다니..!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으로부터 또다시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때는 빨갛지는 못하더라도 발갛게 익어 있으려나?

부디, 익기도 전에 시들어버리는 일이 없기를..






꼬불꼬불 일곱 고개 너머, 칠성골을 아세요?


이렇게 시작하는 『신기한 사과나무』는 전형적인 옛날이야기 구조를 취하고 있다.

거기에 한 폭의 한국화를 보는 듯한 배경은 이 책의 감상을 풍요롭게 만든다.

(우리 정서가 물씬 풍겨 나는 작품을 만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런데 인물을 다루는 느낌은 좀 묘하다.

사실적이면서도 과장되고, 예스러우면서도 현대적 터치가 스며있다. 이렇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지점들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재미있는 건, 그림을 잘 들여다보면 문자로 담아내지 않은 서사까지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서로 다른 일곱 성씨가 살고 있다는 '칠성골' 사람들의 면면을 잘 살펴보면, 가족 관계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세 명의 중심인물인 센돌이, 칠복이, 까망쇠의 표정을 통해 그들이 어떤 캐릭터인지가 충분히 드러난다. 특히 이름과 달리 붉은 옷을 입고 있는 '까망쇠'에게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는데, 악동 기질이 다분한 그의 얼굴을 보며 사건/사고를 담당할 인물임을 점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년의 시간이 흘러 세 인물의 before & after를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멧돼지 사냥신을 떠올리게 하는 칠성골의 노루 사냥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눈밭에서 마을 사람들이 노루를 몰아가고 까망쇠가 나서서 노루를 덮치는데, 그 자리엔 노루가 아닌 한 사내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자신을 '능금동자'라 소개한 아이는 떠나기 전, 씨앗 한 알을 심어 마을 사람들에게 선물하며 말했다.

"이건 아주 특별한 사과 씨야. 욕심만 안 부리면 모두가 맛난 사과실컷 먹을 수 있거든."


『신기한 사과나무』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나무에 달린 빠알간 사과 한 알이다.

주렁주렁 과실이 맺히는 나무가 아니라 가장 좋은 자리에 단 하나의 열매를 내는 나무라니..

언젠가 내가 일기장에 그려 넣었던 사과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책 겉표지에는 잘 익은 사과가, 속표지에는 풋사과가 그려져 있다.

안쪽 표지(inner cover) 역시 앞쪽에는 풋사과 색이, 뒤쪽에는 잘 익은 사과 색이 덧대어져 있다.

센스 넘치는 구성이다.



『신기한 사과나무』는 공동체 내에서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의 문제로 치환시켜서 이해해도 괜찮은 것 같다.

욕심부리지 말고 내 안의 열매 하나를 잘 키워갈 것! 그 향내가 내 안 가득히 풍겨나도록..





Book. 『신기한 사과나무』 박윤규 글 / 박해남 그림, 시공주니어, 2011.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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