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의 지도

「사치 권장 프로젝트」 마음의 장바구니 - 08

by 율하



지도의 컨셉은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마음의 지도라니..!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주인공 소년은 장소를 통해 친구들을 연결 지으며 자신만의 마음의 지도를 그려낸다. 정교한 도시의 흐름 안에서 아이만의 시각으로 또 다른 지도를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나 근사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디어다.. ♥♥♥









『마음의 지도』는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림책 중 가장 깜찍한 책이다.

그림도, 색감도, 내용도

온통 따뜻하고 귀여워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심지어 안쪽 표지(inner cover)마저도 감동이다.

개인적으로 그림자 영화가 떠올랐는데,

주인공 소년의 '마음의 지도'를 깔끔하게 담아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저작권이나 출판 사항이 기재되는 간기면(또는 판권면)도 예사롭지 않다.

책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언젠가 피아니스트 조성진 님이 음악은 연주되기 이전부터 흐르고 있는 것이며 그 흐름 위에 피아노 연주를 얹는 것이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마음의 지도』 역시 그와 같은 결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간기면이 인상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주인공 소년과 그의 친구들이다.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정보를 놓쳐서는 안 된다. 약간의 스포를 하자면, 그림을 그린 비올레타 로피즈의 말에 힌트가 있다.

"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그렸고 주인공의 친구들을 숨기는 것을 즐겼다."



친구들을 잠깐 소개하자면

모퉁이 집에 살고 있는 루시아와 루시아네 오빠,

엄청 멋진 자전거를 가진 옆집 알베르토,

길 건너에 사는 브루노,

맞은편 빌라 7층의 리카르토,

광장의 카페 사장님네 아들까지..



주인공 소년은 이렇게 말한다.

우린 서로 모르는 게 없어요. 아, 성만 빼고요. 알 게 뭐예요. 이름도 가끔 까먹는걸요.



이 이야기를 하며 소년은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있다.



하지만 뒤집힌 건 소년이 아니라 세상이다.

이런 유쾌하고 발칙한 전개가 곳곳에 자리한다.



재미있는 건

정작 소년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사실 그게 뭐 대수겠는가.

소년의 친구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소년을 이미 알아버린 것을......









곧이어 이 책의 백미가 나온다.

친구들끼리 이름 같은 건 상관없어요.

어디 있는지만 알면 되니까요.



영화 <우리들>의 귀염뽀짝한 남동생의 명대사

"그럼 언제 놀아? 난 놀고 싶은데." 만큼이나

인상적인 문장이다.







일러스트레이터 비올레타 로피즈는 포르투갈어로 쓰인 이 책을 작업하기 위해 리스본으로 이사해 거리를 거닐며 텍스트를 수차례 읽었다고 한다.

그 결과 『마음의 지도』는 동네의 구석구석을 디테일하고 생동감 넘치게 담아낸다.

또한 각각의 장소마다 다 다른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공간이 이렇게 사랑스러운 것은 그 공간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공간을 사랑하는 법을 새삼 환기하며

나만의 마음의 지도에 대한 밑그림을 슬며시 떠올리게 된다.



마음의 지도를 따라 일상의 여행을 끝마친 주인공 소년은 처음의 그 자리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소년의 친구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친구들은 마음을 다해 소년을 환대한다.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섰는 나무까지도 그를 향해 반긴다.

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쏘냐.




Book. 『마음의 지도』 클라우지우 테바스 글 /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 정원정 · 박서영 옮김, 오후의 소묘, 2019.

H-er.

keyword
이전 08화신기한 사과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