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imson Corridor
타원형의 전시관.
고풍스러운 액자 속에서 역사의 인물들이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희미한 조명 아래, 오래된 그림들의 금빛 테두리가 음침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그림자 사이로, 깊고 선명한 붉은색이 스며들고 있었다.
빨간 카펫이 더욱 붉게 물들어 있었다.
피였다.
누군가 그곳에 쓰러져 있었다. 세기의 명작들 사이에서, 마치 그 자신이 또 하나의 그림이 된 듯한 모습으로.
긴장감이 감도는 정적.
그 공간을 메우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소리뿐이었다.
뚝.
뚝.
뚝.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시체에서 흐르는 피가 카펫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바깥의 바람이 문틈을 스치고, 벽에 걸린 그림들이 흔들렸다. 그 안의 얼굴들이 마치 조용히 속삭이는 듯했다.
“이곳에 있던 자는 누구였지?”
“누가, 이 밤의 어둠 속에서 칼을 들었지?”
그림 속 인물들이 서로에게 묻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저 멀리, 전시관 입구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전시관의 불이 꺼졌다.
어둠이 공간을 집어삼켰다.
발소리는 멈췄다.
귀를 기울이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마치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시간조차도, 순간적으로 멎어버린 듯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불이 꺼졌을 뿐인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바닥에 흐르는 피가,
그 피 위로 흔들리는 그림자의 결이,
벽에 걸린 초상화 속 인물들의 희미한 미소까지도.
누군가 이 어둠 속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누구야.”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피가 고인 바닥 위로 무언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치 살점을 가르는 칼끝처럼, 조용하면서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소리.
나는 숨을 삼켰다.
그리고 순간, 전시관 한구석에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명확했다.
누군가 있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림자 속에서 발걸음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불이 다시 켜졌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하얗게 번졌다.
눈을 깜박이며 앞을 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숨이 멎었다.
조금 전까지 바닥에 쓰러져 있던 시체.
그 피로 물든 형체가,
사라져 있었다.
피가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시체가 사라졌다. 하지만 바닥에는 여전히 선명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진득하게 마른 핏자국, 그것을 따라가는 발자국. 누군가 이 시신을 끌고 간 것일까? 아니면 시체가 스스로 움직인 걸까?
공기 속에 불길한 냄새가 스며들어 있었다. 단순한 피 냄새가 아니었다. 낡은 캔버스에서 풍기는 곰팡이 냄새, 그림 속에서 새어나오는 듯한 기묘한 향취. 그 모든 것이 한데 섞여, 전시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방금 전까지 미동도 없이 걸려 있던 초상화들이, 모두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림은 움직일 수 없다.
그런데, 저 그림 속 인물들의 눈동자.
어쩐지 방금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발을 떼는 순간, 부드러운 무언가가 발밑에서 미끄러졌다.
피였다.
나는 피가 번진 자리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숨이 턱 막혔다.
조금 전까지 사라졌던 시신이, 다시 나타나 있었다.
그것도 바로 내 발 밑에서.
그러나 이번에는 이상했다.
시신의 얼굴이,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나였다.
내가, 죽어 있었다.
내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눈을 뜬 채로.
그 순간, 전시관의 조명이 다시 꺼졌다.
“너는 누구지?”
그 목소리는 귓속에서 뱀처럼 꿈틀댔다. 나는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발이 피웅덩이에 깊숙이 잠겨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눈을 감았다 뜨자, 사라졌던 시신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그들은 캔버스 속에 있었다.
벽을 따라 줄지어 걸린 초상화들 속에서, 그들은 나를 보고 있었다. 멍한 눈동자, 벌어진 입, 마지막 숨을 내뱉던 순간 그대로의 얼굴들.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했는지.
전시관 안의 공기가 점점 무거워졌다. 숨이 턱턱 막혔다. 이제는 도망칠 수도 없었다. 저 그림들 속에 갇힌 이들은, 모두 내가 죽였던 사람들이었다.
이곳은 전시관이 아니라, 나의 범죄 기록이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내 얼굴을 만졌다.
그러나 손끝에 닿은 감촉은 따뜻한 살이 아니었다.
거칠고 딱딱한 표면.
마치…
페인트가 덧칠된 캔버스처럼.
나는 곧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이 전시관 속의 하나였다.
나도 하나의 초상화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벽에 걸린 그림 속에서, 나와 똑같은 얼굴이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불이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