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노와 증오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믿었던 배우자의 외도를 알게 된다면, 누구라도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생긴다. 나 또한 그런 생각과 감정을 겪었다.
‘내가 그동안 네게 얼마나 헌신했는데, 어떻게 네가 날 배신해? 너를 위해 희생한 나를 내팽개치고, 감히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내가 아내에게 준 마음은 정말 소중했기에, 그것이 버려지고 배신당했을 때 나는 큰 상실감과 아픔을 느꼈고, 동시에 내게 그런 아픔을 준 당사자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나는 먼저 아내와 바람을 피운 그 사람을 향해 분노했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남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고 남의 가정을 이렇게 파탄 내버릴 수가 있는가.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해 놓고, 너는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피눈물을 흘리게 될 거야."
나는 그가 꼭 피눈물을 흘리게 되기를 바란다. 다만, 내 손으로 직접 그를 응징하진 않았다. 나는 아내를 통해 외도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내가 외도 증거를 발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간남이 누구인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가 누군인지 알아내서 복수를 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탐정을 써서 상간남의 개인정보를 알아내고, 승소를 위한 증거도 확보해야 했다.
참고로 상간소송에서 승소를 위해서는, 상간자가 나의 배우자와 유부녀인 것을 알고도 만났다는 것을 내가 입증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1,0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하고, 소송과정에서 변호사선임비용도 들어가기 때문에 대략 2,000만 원 정도의 돈을 써야했다. 그에 비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상간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2,000만 원 정도의 위자료 밖에 되지 않았다. 사실상 내게는 상간남을 찾아서 괴롭게 해주는 것 외엔 의미가 없었다. 또한 아내 말대로 그와의 관계가 이미 종료된 상태라면, 승소를 위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소송을 하는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나는 그 소송을 통해 내 감정과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아내와 이혼을 결심한 마당에, 다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상간소송을 그만두었다. 그냥 이 지옥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내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아내가 내게 외도를 고백하고, 이혼을 요구했을 때 나는 이혼을 해주지 않고 버티며 아내를 괴롭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라고 생각을 했다.
아내는 아무리 나와 이혼을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이혼할 수 없었다. 아내가 위책배우자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가정법원에서는 위책배우자의 이혼소송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내가 이혼을 협의해주지 않는 한 아내는 나와 법적으로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을 활용하면, 내가 아내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선채로 아내를 사람취급하지 않으며 결혼관계만을 이어나가면서 아내를 최대한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아내를 향한 복수가 아니라 나의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그딴 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하루라도 빨리 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것이지, 아내의 멱살을 붙잡고 지옥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혼하게 된 사연과 아내의 외도에 대해 털어놓았을 때, 사람들은 대체로 분개했다. 너무나도 무책임하고, 지극히도 이기적인 아내의 행동에 나 대신 분노해 주었다.
그렇지만 아내가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 해도, 내게는 다른 사람 앞에서 아내를 미워하는 일이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아내를 향한 증오심과 분노감정을 폭발하듯 쏟아낸다고 해서 속이 후련해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아내가 내 삶에 정말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일거다.
아무도 아내와 결혼하라고 칼 들고 날 협박하지 않았다. 바로 내가 아내를 선택했고, 나 스스로 아내를 위해 희생하며 살아왔기에, 그런 아내를 증오하는 것은 결국 나의 일부를 부정하고 증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증오하고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아내가 나와 이혼한 후에도 자기의 삶을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빌어주자고 생각했다. 그건 아내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결정이었다. 이것이 바로 분노와 증오로부터 벗어나, 나 스스로를 지키고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