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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위로

그가 나를 위로해 주었을 때, 나는 비로소 슬퍼할 수 있었다.

by 나의해방일지

나는 아내의 외도와 이혼을 겪으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어떤 날은 출근 버스에서 혼자 흐르는 눈물을 닦기도 했고, 어느 날은 퇴근길에 혼자 걸으며 눈물이 흐르도록 그냥 내버려 두기도 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땐, 텅 빈 방 안에 혼자 주저앉아 서럽게 목놓아 울기도 했다.


그렇지만 때때로, 내 안에 있는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쉽지 않게 느껴졌다. 어떤 때는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을 실컷 울면서 쏟아내고 싶은 순간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건 아니었다.


너무나 슬픈 상황 속에 있으면서도,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느라,

혹은 감정에 몰입할 수 없어서 마음속 슬픔 감정을 충분히 표출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꽤 힘든 일이었다.


“나는 왜 나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다뤄주지 못할까?

슬프고 아픈 감정을 왜 충분히 표현하지 못할까?

어쩌면 내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상담을 받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해 봤던 것은 바로 내 ‘감정’에 대한 문제였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부정적인 감정을 외면하고 회피하려고 노력해 왔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에 검은 양복을 입은 법원직원들이 들이닥쳐 빨간색 차압딱지를 집안 곳곳에 붙였을 적에, 나는 그 상황이 너무나도 무섭고 두려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미술학원에 갔다.


초등학교 6학년 그 꼬맹이는 미술학원 상가건물에 있는 화장실에서 눈물을 닦고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시 그림을 그렸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로는 것은,

상가건물 어두운 화장실 거울에 비친 충혈된 붉은 눈이 여전히 기억나는 것은,

아마도 그날 그 꼬맹이에게 충분한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는 의지도 있었고, 희망도 있었고, 그 모든 상황을 이겨낼 용기도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위로해 줄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어쩌면 나 자신을 위로하고 토닥이는 법을 잊은 채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을 위로하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

슬픈 감정을 쏟아내기가 힘든 나 같은 사람을 슬픔에서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누군가의 진심 어린 위로였다.


“그동안 정말 힘들었겠다. 진작 이야기해 주지 그랬어, 네가 그렇게 힘들었는 줄도 모르고...

어쩜 그럴 수가 있냐, 내가 더 화가 나고 속상하다. 네 잘못이 아니야. 절대로 자책하지 마. “


가족들에게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그들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었고, 때로는 대신 화를 내주기도 했다.

나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진심 어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누군가의 따듯한 위로 덕분에 나는 실-컷 슬퍼할 수 있었다.

굳이 눈물을 쏟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주체하기 힘들 만큼 눈물이 쏟아졌다.


슬픈 감정을 게워내고 나면, 한동안은 홀가분하게 지낼 수 있다.

때로 그 감정을 나 혼자 풀어내기 벅차다면, 기꺼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나는 이번에 배운 것이 하나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때로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일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럴 때는 가족이나 가까운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아야만 한다.

good have to가 아니라 must다. 나 혼자서는 그 감정의 늪을 빠져나올 수 없다.

굳건한 땅 위에 서 있는 누군가가 내 손을 잡고 당겨줘야 한다.


삶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에,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내 삶에 주어지는 인연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언젠가 나의 구원자가 되어줄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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