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대로 내가 된다
방귀 텄니? 한국에서는 부부간에 관계가 편해지는 순간을 두고 "방귀 텄다"라고 한다. 이처럼 방귀는 이슬만 먹고 살아온 것 같은 그녀들에게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다.
건강한 성인은 하루 평균 12회에서 25회 정도 가스를 배출하는 것이 정상이다. 방귀는 장내 미생물이 음식물를 '분해'하는 지극히 능동적이고 건강한 생명의 신호다.
문제는 그 횟수가 비정상적으로 잦거나, 혹은 배출되지 못하고 갇혀서 복부 불편감(Bloating)으로 고민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장에 가스가 차는 현상은 크게 두 가지 원인이다. 첫째, 식사나 대화 중 삼켰지만 트림으로 다 나오지 못하고 장까지 내려간 공기이다. 둘째, 장의 연동 운동(Peristalsis)이 약해져 음식물이 정체되면서 장내 미생물이 과도하게 발효시킨 결과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다. 트림은 위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자연스럽게 위로 올려 배출하는 것에 비해, 장에서 발생한 가스는 소화관의 여러 밸브(괄약근) 때문에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즉, 장 내 가스는 아래로 배출해야 한다.
이 때문에 가스와 정체된 음식물을 아래로 밀어내는 강력한 연동 운동이 필수적이다. 연동 운동이 약해지면 가스는 정체되고 복부 불편감을 유발한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약 5명 중 1명꼴로 소화불량이나 과민성 장증후군(IBS)과 같은 장 기능 문제를 경험한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흔한 현상이다. 이처럼 현대인의 흔한 고민이 된 '배 빵빵' 현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원인은 바로 '장의 움직임'이다.
우리가 음식을 섭취하면, 위를 지나 소장으로 이동하고, 여기서 영양소의 90%가 흡수된다. 이후 소화가 안 되는 섬유질은 대장을 거쳐 배출된다. 그런데 왜 연동 운동이 약해지는가?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 '저작 운동의 부족'과 '섬유질의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자율신경을 깨우는 저작 운동의 감소
소화관의 모든 움직임은 우리가 '명령할 수 없는' 자율신경계(Autonomic Nervous System)가 통제하는 근육 활동이다. 그런데 이처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장의 움직임을 시작하도록 명령하는 가장 강력한 '자발적 트리거' 중 하나가 바로 저작(咀嚼) 운동이다.
현대인의 식탁을 지배하는 정제되고 가공된 식품은 대부분 부드러워 입에서 충분한 저작 운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씹는 행위는 단순히 음식물을 잘게 부수는 것을 넘어, 침샘과 소화액 분비를 촉진하는 소화의 첫 번째 스위치이며, 심지어 장의 반응을 유발하여 인슐린 분비 증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입에서부터 소화 시스템 전체를 활성화하는 이 중요한 신호가 부족하니, 위와 장은 마치 할 일이 없는 근육처럼 연동 운동을 힘차게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또한,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은 소화관 내부를 지나면서 장 벽을 물리적으로 자극하여 연동 운동을 스스로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정제된 음식은 이 내부 자극이 부족하니, 장이 연동운동이 약화된다.
장의 연동 운동이 약해지고 섬유질이 부족해지면, 소화되지 않은 잔여물은 장에 오래 머무르게 된다. 장내에 정체된 섬유질 잔여물은 유해균이 유해성 가스를 만드는 주재료가 된다.
힘차고 규칙적인 연동 운동은 음식물이 장벽과 충분히 접촉하게 하고, 영양소가 소화 효소 및 장내 미생물(Microbiome)과 깊이 접촉할 기회를 만들어 흡수효율이 극대화하는 핵심이다.
* 연동 운동(Peristalsis)
소화 기관 벽의 근육 수축을 통해 음식물을 다음 단계로 밀어내는 물결 모양의 운동을 연동운동이라고 한다. 이 운동이 힘차고 규칙적이어야 영양분 흡수가 극대화되고 노폐물 배출이 쉬워진다. 특히, 분절 운동(Segmentation)과 같은 장 운동은 음식물을 잘게 부수고 소화 효소 및 장내 미생물과 충분히 혼합시켜 흡수 효율을 높이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 장내 미생물(Microbiome)
인간의 장 속에 사는 수많은 미생물 집단이다. 이 미생물 군집의 균형은 소화 흡수뿐만 아니라 면역력, 정서 안정(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의 약 90%가 장에서 생성된다), 그리고 전반적인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연동 운동의 저하는 미생물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며, 이는 곧 장-뇌 축(Gut-Brain Axis)을 통한 정서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소화되지 않는 섬유질이 장에 오래 머물러 이상 발효하게 되면, 장내 유해균이 혐기성 환경에서 암모니아, 황화수소 등 유해 가스를 생성한다. 이 독성 가스가 장점막을 손상시키거나 혈액에 흡수되어 건강 악화를 유발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비싼 음식을 먹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제때, 제대로 '처리'했느냐이다. 장이 게을러지면 아무리 좋은 '생각의 양식'과 '식단의 양식'도 제대로 흡수되지 못하고 정신과 신체에 노폐물만 쌓는다.
기계적 자극 (Mechanical Stimulation)
코어 근육을 사용하거나 몸통을 비트는 동작은 장기를 물리적으로 자극한다. 마치 세탁기처럼 장을 가볍게 흔들고 비틀어 음식물이 장 벽과 잘 섞이도록 돕는다. 가벼운 점프나 런지, 허리 비틀기 같은 동작이 이에 해당한다.
자갈만 가득 찬 비커에 모래를 붓는다고 가정해 보자. 모래는 자갈 표면에만 얹히고, 아래로 쉽게 내려가지 못한다. 하지만 비커를 살살 흔들어주면 어떻게 되는가? 모래가 중력과 움직임의 힘을 받아 자갈 사이의 빈틈으로 자연스럽게 침투하여 공간을 채운다. '흔들어 주기'가 바로 이와 같다. 장의 소화 효소나 미생물이 정체된 음식물과 충분히 섞여서 소화를 보조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식사 직후 격렬한 운동보다는 식후 10분에서 20분 내의 가벼운 활동이 소화에 도움을 준다고 얘기한다.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니라, 복부를 손바닥으로 살살 두드리거나 시계 방향으로 쓸어주며 걷으면 장의 연동 운동을 촉진하고 혈당 스파이크를 완화하는 데 도움 준다. 두드림과 마사지는 산책의 움직임에 더해 외부 마사지 효과를 준다.
스트레스 호르몬 중화 (자율신경계 균형)
격렬하지 않은 적당한 운동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낮추고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부교감신경 우위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소화 기관의 움직임은 자율신경계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스트레스 상황(교감신경 활성화)에서 몸은 소화를 '생존에 필요하지 않은 기능'으로 분류하고 소화 기관의 혈류를 차단한다. 가벼운 움직임은 이러한 '전투-도피 반응(Fight-or-Flight)'을 해제하고, 소화에 집중할 환경을 만들어 준다.
* 코르티솔(Cortisol)
부신 피질에서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장기간 높은 수치를 유지하면 소화 기능 저하, 면역력 약화, 체지방 증가 등을 유발하며, 이는 12화에서 다룬 '부정성 편향'을 강화하는 생물학적 원인이 되기도 한다. 참고로 이 코르티솔이라는 녀석은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 그거 당장 생존에 필요 없잖아!'라며 장으로 가는 길을 차단해 버리는 아주 까다로운 보초병과 같다. 그러니 소화를 잘 시키려면 이 보초병부터 달래줘야 한다.
혈류 재분배 (Blood Flow Redistribution)
식사 후 가벼운 활동은 혈류를 재분배하여 소화 기관으로의 혈액 공급을 원활하게 한다. 충분한 혈액 공급은 소화 효소의 분비를 돕고, 소장에서 영양분을 흡수하는 효율을 높인다.
줄넘기 원리를 활용하여 발 앞꿈치를 중심으로 뒤꿈치를 살짝 들어서 톡톡 튀듯이 가볍게 아래위로 흔들어 주는 동작이다. 이 수직적인 리듬 운동은 장기를 물리적으로 부드럽게 자극하고, 정체된 음식물이 장벽과 잘 섞이도록 돕는다.
특히 이 바운싱은 아킬레스건을 포함한 종아리 근육을 움직여 '제2의 심장'이라 불리는 종아리의 펌프 작용을 촉진하여 전신 혈액 순환에도 도움을 준다. 이는 림프 순환을 활성화해 노폐물 배출을 간접적으로 촉진하며, 복부 근육의 긴장 없이 연동 운동을 보조하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가벼운 운동으로 자율신경계를 자극할 수 있는 바운싱 운동을 추천하려는 의도로 글을 시작했는데 장황하게 멀리 돌아왔다. 100번 정도의 바운싱 운동은 지하철을 기다리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핸드폰에 빼앗긴 우리의 목과 척추 그리고 정신건강을 가벼운 바운싱운동으로 되찾아 오면 어떨까? 2~3분 정도면 충분하다. 건강을 위한 운동은 거창하게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