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어머니랑 둘이서

( feat. 부처님 오신 날 )

by sommeil


나는 불자다.


어머니랑 남편도 불자라서 우리는 매년 이 날 절에

간다.

이번 석가탄신일은 5월 5일 어린이날과 겹쳤다.

나는 전날인 5월 4일 어머님댁인 망원동에 갔다.

다음 날 절에 가려면 일찍 나서야 하기도 하고 전날

하루 자고 어머니랑 같이 출발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오후 4시쯤 됐을까 애들 집에 음식이 배달오기로 해서 물건을 받은 후 냉장고에 넣고 가느라고

오후 5시 넘어 출발했다. 이미 간다고 톡으로 말씀을 드렸는데 어머니에게 톡이 왔다.


"저녁은 먹었나? 머리 염색해야 하지 않나?"


마침 망원시장에 도착을 했다.


"망원시장이에요. 저녁 안 먹었어요"


라고 톡을 보냈다. 마침 시장 뒷골목 쪽에 찰옥수수가 맛있게 보여서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시기도 하고

대기줄이 길지 않아 흰색 찰옥수수 3개를 사갔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내 머리를 보시고 염색해야

겠다고 하시며 정수리 부분과 귀옆, 가르마 부분을

염색하자고 하셨다.

내가 한국에 올 때마다 어머니는 내 머리를 염색을 해주시곤 하셨다. 방콕에서 11년을 같이 산 세월이 있어서 어머니가 그렇게 어렵거나 하지 않았고 오히려 돌아가신 친정엄마보다 살가우신 편이셔서 나를 잘 챙겨

주셨다. 신혼 때는 어머니가 불편하고 어려웠었는데

나도 결혼생활 29년 차이다 보니 이젠 익숙하고

어머니 심정도 이해가 됐다.


어머니는 내가 저녁을 안 먹었다고 하니 고기를 볶고 계셨다. 제육볶음에 고추를 넣어 매콤하게 해 주셨는데 맛있었다. 밥 대신 옥수수를 먹자 하시며 같이 옥수수를 먹으며 이 얘기, 저 얘기를 하셨다.

내가 최근에 건강검진받은 얘기며 현재 발이 아파 정형외과에서 치료받는 얘기를 하니까 한방 파스를 꺼내

주시고 부치라고 하셨다. 위염이 있는 내게 한방 소화제도 챙겨 주셨다. 그리고 또 말씀이 이어졌다.

내가 와서 잔다고 하니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어머니는 염색약을 들고 와서 내 머리

염색을 해주셨다. 내일 절에 가야 하니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목욕재계하고 머리도 단정히 말리고 정리했다.

방에 들어가서 어머니랑 TV도 보면서 애들 얘기, 친구들 만난 얘기 등을 했다.

중간중간 TV 드라마 배우 얘기도 해 가면서 어머니는 오랜만에 말동무가 생겨서 그런지 계속 말씀하셨다.

남편이 있을 때는 정신없고 바빠서 잔소리처럼 들렸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편안했다.

별 잔소리도 안 하시고. 내 기분 탓인지 계속 이것저것을 챙겨주신다.

본인이 드시는 약 종류를 말씀하시면서 나도 먹으면

좋다고 비타민 C도 챙겨주셨다.

한참 드라마를 보다 보니 밤 12시가 훌쩍 넘어서 나는 잠자리에 들려고 다른 방으로 갔다.

그 뒤로도 TV 소리가 낮게 계속 들렸다.

나는 피곤해서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아침은 내가 가볍게 샐러드를 먹는다는 걸 아시고

어머니도 함께 샐러드를 드셨다. 평소에는 밥도 드시는데 내가 와서 샐러드만 드신 것 같았다.

어머니로서는 며느리랑 절에 가는 것이 나들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이 옷 저 옷을 골라가며 어떠냐고 하셨다. (어머니는 평소에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편이시다.)

나는 좀 무뚝뚝한 편이었지만 성의껏 어울리는 옷을

말씀드렸다. 예전 같으면 나의 착장도 뭐라고 지적하시거나 이런 옷보다 다른 게 낫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는데 오늘은 별말씀을 안 하시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은 꽤 아침 공기가 차가웠다. 날도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싸늘한 공기가 나는 더 좋았다. 상쾌해서.

우리는 전철을 타고 이동했다. 2번을 갈아타야 해서 좀 시간이 걸렸지만 어머니 덕분에(?!) 어른들이 타시는

엘리베이터를 타니 편하고 좋았다. 엘베를 타다 보니 어르신들이 유난히 더 보였다. 지팡이를 짚으시는 어른이나 모자나 마스크를 쓰시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걸음도 불편해 보이고 느리신 분들이 많았는데 어머니는

씩씩하게 잘 걸으시고 지팡이도 짚지 않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절에 도착했다. 우연히 예전 태국에서 살았던 신도분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사는 환경이 다르니 딱히 길게 할 얘기는 없었다. 함께 식사하자고 했지만 그냥 어머니랑 둘이서 먹기로 했다.

우리는 3층 법당에서 큰 모니터로 큰스님 말씀과 법요식을 보았다. 이어서 예불을 모시고 연등행사 시상식

도 보았다. 밖으로 나가서 선원에서 주는 비빔밥과 미역국을 먹었다. 오랜만에 본원에서 먹는 절 비빔밥이 맛있었다. 버섯향기가 향긋해서 더 좋았다.


모든 신도에게 작은 백설기 떡과 건빵, 방울토마토,

제주산 주스도 나눠주었다.



우리는 공양을 다하고 나서(절에서는 식사한다는 걸 '공양한다'라고 한다.) 밖으로 나가서 어머니랑 탑돌이를 했다.(오른쪽 어깨에 탑을 향하도록 하고 탑을 3번 도는 행위) 무사안일과 무탈함을 기원하면서.

어머니랑 도량을 둘러보고서 우리는 절에서 나왔다.

오랜만에 본원에 오니 마음이 더 평안해지고 좋았다.

우리는 다시 전철을 타고 어머니랑 망원동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괜찮다 하시지만 약간은 피곤해 보이

셨다. 나도 왼발 뒤꿈치가 계속 아파 왔다. 어머니는

집에 오시자마자 옷을 갈아입으시고 바로 냉장고에서

나물을 꺼내 무치기 시작하셨다. 내가 온다는 말을

듣고 어제 나물을 삶아 놓으셨다고 했다.

시금치, 취나물, 배추나물도 맛나게 무쳐주시고 냉장고에 있는 장아찌도 싸 주셨다. 특히 취나물은 들기름과 들깻가루에 바로 갈아 넣은 깨를 넣으니 더 고소하고 맛있었다.


어제 염색하던 염색약이 더 있다고 3개나 챙겨주시고 기미 커버에 좋다는 팩트도 홈쇼핑으로 주문해 놓으셔서 여러 개 있다면서 나에게도 1개 주셨다. 내 막내아들이 할머니한테 허리띠가 낡아서 안 좋다는 말을 기억하시고 인터넷으로 주문하셔서 애들 허리띠도 2개나 사다 주셨다. 막내아들이 멸치 볶음을 잘 먹는다고 하니

집에 있는 멸치도 볶아 먹으라고 주셨고 애들 먹으라고 제육볶음 무쳐 놓은 걸 가져가라고 싸 주셨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어머니랑 나는 망원시장에 들러서 과일이 싱싱하고 싸서 딸기랑 대추토마토, 아보카도도 샀다.

애들 집에 참기름이 조금 있어서 온 김에 참기름도 1병 샀다. 어머니가 집에 있는 냉장고에서 애호박 1개랑

고추도 몇 개 주셔서 고기 볶아 먹을 때 같이 넣고 먹으면 맛있다고 또 싸주셨다.


이래 저래 짐을 싸다 보니 엄청 많아져서 내가 메고 온 배낭도 꽉 차고 쇼핑백 2개도 꽉 찼다.

사실 예전 같으면 안 가져가겠다고 실랑이를 벌였을 텐데 어머니가 나랑 우리 애들 생각해서 주신 거니까

가져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또 맛있다고 말씀드리면 좋아서 또 해주시고 그러니까 다 챙겨서 받아왔다.




지금 내 나이 54살

내가 처음 결혼했을 때 어머니가 52세셨다.

그때는 좀 까칠하시고 깐깐하셨다.

워낙 깔끔한 성격에 음식도 잘하셔서 어머니랑 같이

살면서 살림하는데 많이 부딪혔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도 많이 달라지시고 나도 친정 부모님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 어른은 어머니뿐이었다. 특히 3년 전 친정아버지까지 돌아가시니 정신적으로 의지할 만한 어른이 어머니밖에 없었다.

어머니도 나를 많이 이해해 주시고 나도 예전보다는

어른스러워지다 보니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머니에 대한 불편함보다는 안쓰러움이, 노인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아까 집에 와서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 방콕 가기 싫어요. 나도 서울 살래요 "

" 너도 늙나 보다. 서울이 좋다는 걸 보니 "


어머니도 내 마음을 아시는 듯했다.


' 저도 어머니 마음 알아요. '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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