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 여행 - 하이델베르크
독일 소도시 중 '네임드'로 따지면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유럽의 관문" 프랑크푸르트에서 가까운 덕분에 많은 여행자가 찾아간 덕도 있겠지만, 어쨌든 도시 자체가 소도시의 낭만적인 매력을 지닌 강력한 경쟁력이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굽이쳐 흐르는 강, 산 위의 고성, 그 사이 소위 "배산임수" 지형에 올망졸망 모인 작은 마을. 대학도시의 젊은 에너지와 관광도시의 활기가 공존하는 하이델베르크의 매력을 네 가지 장면으로 소개한다.
Scene 1. 하이델베르크성
하이델베르크의 상징적 존재는 산 위의 고성이다. 마을에서 올려다보아도, 강변에서 올려다보아도, 맞은편 산등성에서 바라보아도, 하이델베르크성(Schloss Heidelberg)은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그런데 이 성, 자세히 들여다보니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 30년 전쟁 당시 파괴되었고, 이후 복원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실패하여 더 이상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쯤 부수어진 듯한 그 페허 같은 모습이 오히려 더 낭만적인 자태로 다가오는 것이 흥미롭다. 여담이지만, 하이델베르크성의 군주가 왕비를 맞이하던 날 왕비를 위해 하루만에 문을 만든 일화가 전해진다. 왕비의 이름을 딴 엘리자베트문(Elisabethentor)은 하이델베르크성의 낭만의 농도를 짙게 한다.
Scene 2.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역사적인 낭만의 사례는 또 있다. 하이델베르크는 오늘날 독일 영토로 한정했을 때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대학교(Universität Heidelberg)가 있는 곳이다. 그런데 중세까지 학생들의 연애를 금지하였고 여성은 입학이 불허되었다. 하지만 불타는 청춘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 남학생들은 기숙사를 나와 마을의 젊은 여성들과 몰래 연정을 나누었다. 사감 몰래 마음을 주고받기 위해 고안된 초콜릿 슈투덴텐쿠스(Heidelberger Studentenkuß)는 오늘날까지 하이델베르크의 '시그니처'와 같은 명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만약 이렇게 규율을 어기다 적발되면 학생감옥(Studentenkarzer)에 들어가야 하는데, 무시무시한 이름과 달리 술도 반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낭만을 즐기는 일종의 훈장과도 같았다고 한다. 지금도 낙서가 빼곡한 학생감옥이 박물관으로 공개되어 있다.
Scene 3. 춤 로텐 옥센
하이델베르크 대학생의 연애사는 허구의 세계에서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등장하였다. 20세기 초 발표된 희극으로, 그리고 이를 각색한 헐리우드 뮤지컬 영화로 큰 사랑을 받은 <황태자의 첫사랑>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 유학 온 왕자의 러브스토리를 주제로 한다. 특히 뮤지컬 영화는 실제 하이델베르크에서 촬영하여 익숙한 장소가 여럿 등장하는데, 오랫동안 부담없는 가격으로 학생들에게 푸짐한 먹거리와 맥주를 공급한 춤 로텐 옥센(Zum Roten Ochsen)도 그 중 하나다. 지금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운영하는 '노포' 춤 로텐 옥센은 하이델베르크의 러브스토리를 보여주는 좋은 장소다.
Scene 4. 카를 테오도르 다리
간단히 옛 다리(Alte Brücke)라고 부르기도 하는 카를 테오도르 다리(Karl-Theodor-Brücke)는 낭만적인 구시가지의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다. 다리 위에 옛 성문이 그대로 남아있고, 다리 위에서 하이델베르크성이 바로 올려다보이며, 성문 바로 옆에 있는 원숭이 조각상을 어루만지며 소원을 비는 여행자들로 가득한 이곳에서 로맨틱한 분위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낭만적인 풍경이 전부가 아니다. 왕비를 위해 하루만에 성문을 만든 군주에게서, 감옥을 불사하며 연애에 불타오른 학생들에게서, 로맨틱 영화의 배경이 된 노포에서, 하이델베르크의 낭만은 몇 겹으로 드러난다. 그야말로 낭만에 낭만을 더한 이 작은 마을에서 많은 여행자가 재미와 감동을 얻는다.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의 인구 대부분이 학생이고, 그 인구수보다 많은 관광객이 연간 찾아온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낭만치사량"의 매력은 과연 '네임드'의 자격이 있다.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