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 여행 - 다하우
독일은 전범국이다. 나쁜 짓도 많이 했다. 이성이 사라진 흉포한 전쟁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용인하기 어려운 지독히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다. 이것은 불가역적인 팩트다. 하지만 전후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적어도 독일의 과거를 들추어 힐난하며 책임을 추궁하는 이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전혀 없다고 하지는 않겠다). 왜? 독일은 전범 행위에 대하여 철저히 사죄했기 때문이다.
말뿐인 사과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였다.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배상하는 건 기본이고, 자신들의 끔찍한 행위를 낱낱이 밝히고 공개한다. 그들의 사죄에 진정성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 과거의 죄를 캐묻지 않게 되는 것. 그런 현장은 독일 내에 셀수없이 많은데, 가장 임팩트 있는 곳은 뮌헨 근교 다하우(Dachau)에 있다. 다하우 강제수용소(KZ-Gedenkstätte Dachau)가 바로 그곳. 여기서 보게 될 독일의 진심을 다섯 가지 장면으로 소개한다.
Scene 1. 박물관
옛 수용소 본관은 거대한 박물관이 되었다. 전시실을 하나하나 지나갈 때마다 끝없이 전시자료가 이어지는데, 방대한 전시자료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로 표현할 수 있겠다. 당시 국제정세부터 시작해 어떻게 나치가 독일인의 지지를 얻어 집권했는지, 왜 강제수용소를 만들고 어떤 사람들을 이송했는지, 수용소 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피해자는 어떤 환경에 놓였는지 등을 충실한 시청각 자료와 함께 보여준다. 넓은 박물관을 메운 독일의 청소년들이 설명을 경청하는 모습이 이곳의 존재 이유를 직관적으로 설명해주는 듯하다.
Scene 2. 감옥
박물관 뒤편에 감옥동이 있다. 문자 그대로 감옥으로 사용된 벙커인데, 감옥에 수감된 주요 인사들의 인적사항이나 피해자를 기리는 기념물을 발견할 수 있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당시 강제수용소에 근무하며 가해를 저지른 자들의 사진과 인적사항을 상세히 고발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여기 악인으로 기록된 이들도 명령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나쁜 짓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자기 목숨이 달아날 테니. 하지만 그런 사정을 하나하나 들어주다보면 빠져나가지 못할 이들이 별로 없을 터. 좋아서 했든 억지로 했든, 하여간 나쁜 짓을 한 이들에게 일말의 자비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처절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역사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법이다.
Scene 3. 막사
다하우 강제수용소에는 34동의 막사가 있었다. 강제수용소 운영 기간 중 연인원 20만명 이상이 수용되었다고 하니 막사 수십동에서 다 수용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피해자들은 질병과 굶주림에 버티기 어려웠다. 2차대전 후 연합군은 강제수용소 막사를 모두 허물어버렸지만, 훗날 기념관을 만들면서 막사 2동을 다시 복원하여 당시 모습을 보여준다. 닭장 같은 침실, 열악한 화장실,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휴게실 등 모든 가해의 현장을 되살렸다.
Scene 4. 가스실과 화장터
여기까지만 해도 야만이 도를 넘는데, 그것을 아득이 초월하는 최악의 현장은 따로 있다. 대량학살을 위해 설계된 가스실, 그리고 산처럼 쌓인 시신을 처리하는 화장터가 있다. 가스실 입구에는 목욕탕(Brausebad)이라고 적혀있다. 웬일로 씻을 기회를 주는 줄 알고 자발적으로 가스실에 입장하도록 만든 목적이라고 한다. 화장터 뒤편으로 공동묘지가 있다. 묘지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화장 후 재를 처리한 것이다. 걸을 때마다 실시간으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Scene 5. 기념비
강제수용소 부지 곳곳에 기념비가 많이 보인다. 이런 기념비는 크게 둘 중 하나다. 독일이 피해자에게 사죄하며 만들었거나 또는 피해자가 독일을 용서하며 만들었거나. 아무튼 분명한 것은, 다하우 강제수용소는 끔찍한 가해의 현장이었지만 그걸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피해자에게 사죄한 독일의 진정성이 "쇼"가 아닌 건 확실하다. 피해자도 마음을 열었으니까.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보며 느낀 감정은 크게 두 가지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악해질 수 있나" "그래도 이렇게까지 반성을 하는구나".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미래 세대가 기념관 곳곳에서 무리지어 진지하게 설명을 듣고 자료를 학습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가뜩이나 SNS를 통해 가짜뉴스와 극단적 가치관에 무방비로 노출된 미래세대가 자기 두 눈으로 진실을 볼 수 있는 경험을 한다는 건 매우 뜻깊다.
이 넓은 "악행의 현장과 기록"은, 사실 독일 입장에서는 감추고 싶은 치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공개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죄한다. 독일의 미래세대가 이것을 보도록 만든다. 이 모든 목적은 하나로 귀결된다. 그래야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니까. 이게 독일이 부끄러운 현대사를 다루는 핵심이다. 변명하지 않고 합리화하지 않는다. 전쟁 중 독일의 무고한 민간인도 큰 피해를 입었지만 자신들의 피해를 동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피해자가 마음을 열었다. 반성을 하려면 이들처럼 해야 한다. 그래야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Nie Wieder)"는 게 독일의 올곧은 믿음이다.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