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 여행 - 프린
바이에른의 미치광이 왕 루트비히 2세. 알프스 산골 퓌센에 백조를 닮은 노이슈반슈타인성을 지은 바로 그 국왕이다. 그는 '백조의 성'이 완공되지도 않았는데 더 깊은 산골 오버아머가우에 린더호프성을 지었다. 대인기피증이 극에 달하여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었던, 그 와중에도 성은 최고로 호화롭게 지어야 했던 미치광이 왕은 두 번째 성이 다 완공되기 전 세 번째 성을 짓기 시작했다.
깊은 산 속에 숨어도 어차피 찾아올 사람은 찾아온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택한 피신처는 섬이다. 섬을 통째로 사서 성을 지었다. 앞선 두 성의 공사비도 어마어마했지만 세 번째 성의 공사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 결국 왕실 재산을 탕진하고 빚까지 지는 지경에 이르자 바이에른 의회는 루트비히 2세를 정신병자로 진단하여 폐위하고 그의 "궁전 건축 중독"은 막을 내린다. 바로 그 섬 속의 성을 보기 위해 프린(Prien am Chiemsee)에서 출발한다. 성까지 가는 동안 보게 될 네 가지 장면을 역순으로 소개한다.
Scene 1. 헤렌킴제성
루트비히 2세의 세 번째 성이자 마지막 성인 헤렌킴제성(Schloss Herrenchiemsee)은 노골적으로 파리 베르사유궁을 본떠 만들어졌다. 은신처임에도 불구하고 루트비히 2세는 베르사유궁에 뒤지지 않는 최고로 호화로운 궁전을 짓기 원했고, 베르사유궁의 정원까지 본떠 섬 속에 '미니 베르사유'를 만든 것이다. 베르사유 정원에 있는 라토나 분수와 똑같이 생긴 분수가 성 앞에 있고, 절반만 완성된 성 내부에는 베르사유 궁전을 능가하는 초호화 거울의 방도 있다.
Scene 2. 헤렌킴제섬
넓은 호수에 있는 섬. 배가 없으면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니 대인기피증이 극에 달한 왕이 은신처로 택할 만한 여기는 헤렌킴제섬(Insel Herrenchiemsee)이다. 줄여서 헤렌섬이라고도 부르며, '남자 섬'이라는 뜻이다. 섬 자체는 초목이 우거진 깨끗하고 조용한 곳이고, 수도원만 하나 덩그러니 있었다. 루트비히 2세가 섬을 매입한 뒤 성을 짓는 동안 수도원에서 지냈는데, 이 또한 내부는 궁전처럼 호화롭게 개조하였다. 섬 내부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마차뿐이다.
Scene 3. 킴 호수
헤렌킴제섬이 있는 호수가 킴제(Chiemsee), 즉 킴 호수다. 알프스가 만든 빙하호인데, 그 면적만 약 80km²에 달하여 '바이에른의 바다'라는 애칭이 있다. 바다에 접하지 않은 바이에른 사람들은 바다처럼 넓은 호수에서 레저와 스포츠를 즐기며 휴가를 보내기 때문에 그 애칭이 딱 어울린다. 헤렌킴제섬에 들어가려면 유람선을 타야 하는데, 가는 내내 탁 트인 시원한 전망이 펼쳐진다.
Scene 4. 킴제반
킴제 유람선 선착장은 프린 기차역에서 약 1.8km 떨어져 있다. 걸어가도 부담없는 거리이기는 하지만, 이왕 프린에 왔으면 킴제반(Chiemsee-Bahn)을 타보자. 루트비히 2세가 폐위되고 섭정왕이 된 루이트폴트는 헤렌킴제성을 관광지로 시민들에게 공개하기로 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프린에 몰려들고 선착장까지 극심한 교통혼잡이 빚어지자 기차역부터 선착장까지 전용 철도를 개설한 것이다. 1887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증기기관차가 지금도 다닌다. 많이 덜컹거리고 많이 시끄럽지만 김을 내뿜이며 느릿느릿 달리는 리듬감이 인상적이다. 아무래도 증기기관차는 요즘 기준으로는 대기오염 유발 때문에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약 140년 역사의 킴제반이 언제까지 달릴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퓌센과 오버어마가우도 첩첩산중의 고성을 찾아가는 게 녹록치 않은데, 프린은 그야말로 '꼭꼭 숨은' 궁전과 숨바꼭질하는 것 같다. 기차를 타고, 다시 증기기관차를 타고, 다시 유람선을 타고, 다시 마차를 타거나 걸어서 섬 속에 숨어있는 성을 찾아가는데, 그 비주얼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은둔자의 파라다이스가 될 뻔 했던 헤렌킴제성. 다행히 찾아가는 길에 증기기관차와 유람선의 운치가 함께 한다. 찾아가는 길은 지독히 힘들지만, 힘들어도 운치 있어 즐거운 숨바꼭질이다.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