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 여행 - 에센
에센(Essen). 독일어로 '먹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도시 이름이 되었다. 물론 진짜로 "먹보의 도시"라서 그런 건 아니지만 하필 우연히 '먹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에센은 독일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이며, 따라서 아기자기한 매력과는 살짝 거리가 멀지만 현대에 들어 꾸준히 정비한 문화와 생태의 성취로 그 어느 도시보다 풍부한 영감을 공급해준다.
인구 57만 명의 공업도시를 소도시라 부르기는 어렵지만, 마치 소도시 여행하듯 대도시 뒤셀도르프나 쾰른에서 원데이투어로 여행하기 좋은 에센의 매력을 다섯 가지 장면으로 소개한다.
Scene 1. 촐페라인 광산지대
풍부한 석탄이 매장된 광산부터 코크스를 만드는 공장까지 거대한 산업단지를 이룬 촐페라인 광산지대(Zeche Zollverein). 1847년부터 가동하였고 1930년대에는 바우하우스 정신에 입각한 12번 갱도를 새로 건설하였으며, 1986년 폐광할 때까지 유럽 최대의 탄광이었다. 에센에서는 문 닫은 광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각종 문화, 레저 시설로 재단장하였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2번 갱도의 권양탑은 지금도 산업유산으로서 촐페라인 광산지대의 상징. 여담이지만, 1970년대에 한국에서 서독에 광부를 파견하던 시절, 한국인 노동자가 주로 여기에 배치되었다. 한국의 현대사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다.
Scene 2. 레드닷 디자인 박물관
촐페라인 광산의 대형 보일러실은 박물관이 되었다. 산업디자인계에 몸담은 분이 아니더라도 이름은 들어보았을 레드닷 어워드의 메인 박물관이 바로 여기. 레드닷 디자인 박물관(Red Dot Design Museum)은 그해 수상작을 전시한다. 다시 말해, 동시대 가장 빼어난 디자인이 모인 곳이며, 우리가 실제 사용하는 제품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몰입감을 준다. 물론 한국 기업의 제품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Scene 3. 폴크방 미술관
한 개인에 의해 만들어진 미술관을 지금은 에센 시당국이 공동 운영하며 시민에게 무료로 개방하는 곳. 폴크방 미술관(Museum Folkwang)은 상당히 방대한 미술 컬렉션을 자랑한다. 인상주의, 표현주의, 추상주의, 현대미술까지 풍부하게 갖추었으며, 고흐, 고갱, 마네, 피카소, 백남준까지 라인업이 상당하다. 조금의 과장을 보태지 않고 입장료 10~15유로 받는 미술관에 하등 꿀리지 않는다. 중정을 기준으로 채광이 좋은 전시실과 통로의 분위기도 평화로와서 조용함 속에 미술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Scene 4. 시립 정원
시립 정원(Stadtgarten)은 에센 중앙역 뒤편에 아지트처럼 펼쳐진 적당한 규모의 시민 공원이다. 그 자체로도 잠시 거닐며 쉬어가기 좋은 상쾌한 공원이며, 울창한 나무와 넓은 잔디밭, 시원한 연못 등의 콤비네이션이 빼어나다. 뿐만 아니라 공원에 공연예술이 펼쳐지는 극장 두 곳이 있어 시민의 문화생활도 책임지는데, 그 중 알토 극장(Aalto Theater)은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하였다.
Scene 5. 대성당
에센에 현대적인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도시 중심부에는 여전히 옛 모습이 드문드문 남아있으며, 대성당(Essener Dom)은 850년에 설립된 수녀원을 기원으로 하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거대한 건축미를 보여준다. 대성당에서 생산 및 수집한 보물을 따로 모아둔 박물관도 별도 운영 중이다.
삭막한 공장과 광산에서도 문화를 꽃피우는 도시. 깨끗한 자연 속에서 쉬어가는 도시. 현재와 과거의 우수한 건축을 마주하는 도시.
'먹다'라는 이름을 가진 에센에서 우리가 맛볼 수 있는 것은 문화와 예술, 생태, 건축이다. 그야말로 영감을 맛보는 여행. 에센이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