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나이테가 있다면

독일 소도시 여행 - 크베들린부르크

by 유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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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독일이라는 단일 국가의 첫 탄생을 1871년 독일제국으로 본다. 그러나 '독일 민족(독일어를 사용하는 게르만족)'의 개념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고, 관념상의 존재이기는 하나 '독일 왕'도 있었다. 첫 번째 독일 왕으로 꼽히는 이가 동프랑크의 국왕이자 독일 민족으로는 처음 왕위에 오른 하인리히 1세. 이때가 919년이다.


당시 하인리히 1세가 성을 짓고 수도로 삼은 도시가 어디일까? 정답은 오늘날 기준으로 자그마한 소도시 크베들린부르크(Quedlinburg)다. 독일의 첫 수도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다섯 가지 장면으로 크베들린부르크의 매력을 소개한다.


Scene 1. 슐로스베르크

도시의 출발점은 하인리히 1세의 성이다. 그는 크베들린부르크성(Schloss Quedlinburg)과 성 제르바티우스 교회(Stiftskirche St. Servatius)를 나란히 지었다. 이 부근이 당시 동프랑크 왕국의 동쪽 국경에 가까웠기 때문에 '동벌'의 교두보로 수도를 택한 것이다. 당시 영토 확장은 곧 기독교의 전파와 동의어였기 때문에 왕의 거성보다 더 중요한 교회가 함께 세워졌다. 군사적 목적이 강하므로 가장 지대가 높은 언덕 위에 지었으며, 성과 교회가 있는 언덕을 슐로스베르크(Schlossberg)라고 부른다. 이곳의 존재로 인해 크베들린부르크는 "독일 최초의 수도"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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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크베들린부르크성 | 우: 슐로스베르크에서의 전망


Scene 2. 마르크트 광장

"독일 최초의 수도"는 효능을 다했다. 왕의 사후 성은 더 이상 필요가 없었고, 미망인이 된 왕비가 교회를 수녀원으로 만들고 어려운 이들을 구제하는 데에 힘썼을 따름이다. 그래도 한때 권력이 머물렀던 곳이어서 도시는 작지만 부강했다. 귀족과 상인 세력은 언덕에서 내려와 평지에 그들의 시가지를 형성하였고,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이 그 중심이다. 덩쿨이 뒤덮은 고풍스러운 시청사를 가운데에 두고 중세의 반목조 건축 양식이 광장 주변에 펼쳐진다. 우리가 소도시 여행에 기대하는 가장 모범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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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시청사 | 우: 마르크트 광장


Scene 3. 옛 성벽

중세 시대에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성벽이 있었다. 도시가 확장되고 더 이상 외부의 침입을 염려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성벽도 없어졌지만 일부 구간은 성탑과 함께 옛 성벽을 확인할 수 있게 남겨두었다. 호어탑(Hoher Turm)이 대표적인 곳. 그런데 마르크트 광장을 중심으로 하는 평지의 시가지는 성벽의 보호를 받지만 언덕 위의 슐로스베르크는 성벽 바깥에 있다. 성벽의 위치만 보더라도 크베들린부르크가 어떻게 확장되었고 어떻게 권력의 중심이 바뀌었는지 알 수 있는 셈이다.

호어탑01.jpg 호어 탑과 성벽


Scene 4. 니콜라이 지구

마르크트 광장에서 좁은 골목을 따라 외곽으로 나오면 오늘날 호텔로 사용 중인 큼직한 건물 하겐의 프라이하우스(Hagensches Freihaus)가 나온다. '프라이하우스'란 공을 세운 이에게 도시 경계 바깥에 면세권을 부여한 봉지를 하사하여 지은 건물을 말한다. 따라서 하겐의 프라이하우스가 위치한 곳은 중세에 도시 경계 바깥이었다는 뜻. 성벽이 허물어지고 도시가 확장하면서 이 지역은 더 널찍한 도로와 광장을 갖춘 '신 시가지'가 형성되었으며, 성 니콜라이 교회(St. Nikolai)에서 유래한 니콜라이 지구(Nikolaiviertel)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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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하겐의 프라이하우스 | 우: 성 니콜라이 교회


Scene 5. 성령 거리

니콜라이 지구 외곽은 20세기 초 추가로 확장되었다. 이때 성령 거리(Heiligegeiststraße)에 새로 지어진 건물들은 당시 유행한 아르누보(유겐트슈틸) 양식을 일부 엿볼 수 있어서 시가지의 형성 시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오늘날에도 주거 또는 상업 건물로 사용되고 있어서 가볍게 구경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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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 성령 거리

크베들린부르크 기차역은 가장 외곽에 있다. 기차역에 내려 여행을 시작하면 성령 거리부터 시작하여 점점 오래 된 시가지로 걸어들어가게 되고, 마지막에 슐로스베르크에 도달한다. 물론 몇십분만 걸어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도달할 아담한 도시지만, 그렇게 시대를 거슬러올라가는 경험은 흥미롭다.


만약 도시에 나이테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가장 바깥에서부터 안쪽까지 나이테를 거슬러 간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는 "독일 최초의 수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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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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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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