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독수리는 뱀을 이겨야 하는가. 멕시코시티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좀 잔인하다.
동물애호가나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들에겐 분명 아름답지 않을 것이 뻔하다.
뱀과 독수리가 등장한다
그런데 둘이 싸운다. 독수리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뱀을 제압했다.
그리고 역시 날카로운 부리로 뱀의 몸통을 물고 있다.
뱀은 힘든 표정으로 독수리를 보고 있다.
이 이미지는 멕시코 국기에도 그려져 있다. 멕시코 시티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에도 여러 번 이 이미지의 그림이나 구조물을 만나게 된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14세기 초의 일이다. 아직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오기 전이다. 아즈텍 왕이 신탁을 받았다. ‘선인장 위에서 독수리가 뱀을 물고 있는 곳에 큰 도시를 세우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테모치티틀란’이란 이름의 도시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멕시코시티이다.
태양신을 숭배하던 아즈텍 사람들에게 독수리는 신성한 동물이었을 것이다.
독수리는 하늘을 난다. 그들이 숭배하는 태양에 인간보다 훨씬 더 가깝게 갈 수 있다.
안데스 높은 산속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도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지 않는다. 그냥 산 위에 놓아둔다. 새들이 죽음 사람의 몸을 조각내어서 하늘로 옮겨 준다고 믿는다
새는 메신저이다. 인간과 태양 사이 소통자이다.
그 독수리가 뱀을 제압했다.
정화淨化된 땅. 정토淨土이다. 깨끗하고 신성한 곳이다;.
신은 아즈텍 사람들이 거기에 가기 전에 독수리를 먼저 보낸다. 그리고 아즈텍 사람들이 오기 전에 독수리가 그 땅의 뱀을 제압한다. 아즈텍사람들은 준비된 땅. 그 정화된 땅에 도시를 건설한다.
세상은 독수리와 뱀이 존재한다. 뱀은 지상을 지배하고 독수리는 하늘을 지배한다.
싸워라. 뱀과 싸워라.
그 독이든 이빨. 속이는 혀. 땅에 숨어 민첩하게 이동하는 속임수를 경계하라.
독수리가 도와줄 것이다.
그 땅에 가면, 나의 메신저인 독수리가 너희 편이 되어 줄 것이다.
독수리가 뱀을 이긴 것처럼 너희도 뱀을 이겨라.
그런 메시지였을지도 모른다
선과 악이 대립하는 세상에서 선의 편에 서서 악과 싸워라. 싸워서 이겨라.
그런 분위기가 다분하다.
우리에게도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공교롭게도 멕시코의 독수리와 비슷한 1390년대의 일이다.
무학대사가 도읍을 정하기 위해 부지를 물색 중이었다.
길을 가다가 한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의 대답은 왕십리 往十里라는 것이다. 십리를 더 가라는 것이다.
사실 개성에서 한양은 먼 길이다. 그 먼 길을 왔다.
십리이면 4km이다. 그리 먼 길이 아니다. 젊은이는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인데, 4km는 그리 큰 오차가 아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가라는 것이다. 다 왔지만 온 김에 조금만 더 가라는 것이다
서울을 천도하는데 대한 신탁은 왕십리이다. 10리를 더 가라.
조금만 더 가라.
한양은 그렇게 서울로 이름을 바꾸면서. 800년을 한반도의 수도로 영광을 이어가고 있다. 번성하고 있다. 조금만 더 가자는 마음은 아직도 서울 시민의 인생 지침이다.
선과 악이 싸우면 정말 선이 이기는가? 아니다. 이기는 것이 선이다..
지면 악이다.
누구든 이기면 독수리이고, 지면 뱀이다.
그러나 나에겐 헛된 믿음이 있다. 예를 들자면, 선은 마침내 이길 것이다. 독수리는 뱀을 제압할 것이다. 그런 것들이다.
살다 보면 나는 뱀도 되고, 독수리도 된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이기면 좋다. 지면 나쁘다. 이기면 이익이고 지면 손해를 보게 된다.
혹은 승자독식이다. 승자가 다 갖는다.
자본주의도 민주주의도 그렇다. 다수결이 그렇다. 이기면 다 갖는다. 지면 다 잃게 된다. 아프리카 밀림의 사자들과 현대인의 인생이 그리 다르지 않다.
나는 ‘오징어 게임’을 보지 않았다. 누구에게 권한 적도 없다.
이정재 님을 가장 좋아하는 연기자 가운데 으뜸으로 꼽지만,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나는 오징어 게임을 증오한다.
456만 달러를 놓고 456명이 싸운다. 살아남은 1명이 456만 불 약 65억 원을 독식하는 구조라고 한다. 나는 드라마라고 하지만 그런 설정이 싫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또는 돈을 위하여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그런 상황을 미치도록 증오한다.
456명이 모여서 회의를 한다.
그리고 주최 측을 설득해서 모든 참가자가 만 불씩 손에 들고 집에 간다. 얼마다 훈훈한 해피앤딩인가.
456명 가운데 1명이 될 확률은 0.0021%이다. 그냥 살아서 만 불에 만족하는 것이 낫다.
독수리와 뱀이 사이좋게 지내는 땅을 만나거든
거기에 도시를 세워라.
혼자 먹겠다고 남을 죽이지 않는 곳. 다툼과 미움이 없는 곳.
그런 세상은 언제쯤 올 것인가?
06 Mar 2025